고산자, 대동여지도

이순신, 세종대왕 등 우리나라의 수많은 위인이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이런 사람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리뷰 할 영화는 우리나라의 강토와 산하를 담은 위대한 지도를 만든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인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일생을 보여주는 작품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이다.

우선 영화를 소개하기 전 김정호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보통 김정호라고 하면 대동여지도라는 지도를 만든 조선시대의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고 한다. 김정호의 호는 고산자(古山子)이며 옛 산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승하한 후 세도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순조 4년인 1804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중인이라는 설도 있고 몰락한 잔반(조선시대 몰락하여 농민과도 같은 생활을 한 양반)이라는 설도 있고 평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김정호는 초기에는 지리지(지역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지리책)같이 인문학적인 성격을 띤 지리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지도에 전념하게 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에 청구도나 동여도 등을 제작하였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 철종시기에 초간본이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고종 원년에 재간본이 발행되었다.
대동여지도는 이전에 만들어졌던 여러 지도들과는 다른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정확성도 물론 뛰어나지만 목판으로 인쇄하여 지리 정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분첩절첩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휴대가 간편한 장점이 있다. 실제 대동여지도는 가로 3.8미터, 세로 6.7미터의 크기로 휴대하기 불편하지만 남북으로 22첩, 동서로 20센티미터 간격으로 접을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에 비교적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은 강우석 감독의 20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의미 있는 순서의 영화에서 왜 김정호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강우석 감독은 아마도 한국 영화에서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의미 있는 인물을 다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김정호가 지도를 그리기위해 돌아다니는 조선의 산천과 강토의 사게 절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과 같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이 어떻건 배우들의 연기가 어떻건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풍광을 담아낸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은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인 고산자이며, 계간 문학 동네에 2008년 가을 호부터 4회동안 연재했던 소설이다. 김정호에 대한 역사적 사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탓에 우리는 그의 생애를 추측만 할 뿐이다. 생종시기나 고향, 본관, 신분 등도 모두 추측에 가깝고, 대동여지도를 만들 당시의 상황이나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도 어느 하나 정확한 것이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박범신 작가의 원작 소설은 지도 쟁이 김정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구성되어 있고, 역사적으로 비어있는 공백들은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채워나갔다. 어려서부터 눈썰미가 뛰어났던 김정호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지도를 그리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이 땅의 백성들이 모두 땅을 잘 알아가고 그를 통해 백성들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공들여 지도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세력의 음모가 도사리게 되고, 김정호는 위기에 빠진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소설을 강우석 감독 나름의 연출력을 통해 스크린으로 옮겨온 것이다.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도 많은 논란에 빠지기도 했다. 개봉 직전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식민사관의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이런 논란은 영화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실제 일제 강점기에 육당 최남선은 조선을 빛낸 인물을 꼽는 과정에서 지리 분야의 김정호를 손꼽았다. 1925년 동아일보에서 김정호에 대한 기사가 실린바 있는데, 김정호가 조선의 방방곡곡을 답사해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고, 백두산은 일곱 번이나 올랐다고 전했다. 하지만 완성된 목판은 조선 정부가 몰수했다고 기사를 실으면서 지도의 정확성과 김정호의 헌신에 대해 역설했다.
하지만 1930년대 조선인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일본이 만든 교과서인 조선어 독본에는 이 기사를 왜곡하여 수록함으로서 조선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런 정황에서 한편에서는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주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의 이런 시각에 대해 영화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은 의혹을 전면적으로 부인한 바 있다. 영화 개봉 전 불거진 이런 의혹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는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이런 의혹뿐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하는 한국 영화의 특성상 영화 자체의 흥미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료에도 많이 남아있지 않은 김정호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면서 강우석 감독이 얻으려고 했던 것은 큰 흥행작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무도 다루지 않은 위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처럼 김정호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하고 힘 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 것 같다. 주연을 맡은 차승원도 이에 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의 인생이 언제나 드라마틱한 것은 아니지 않나. 잔잔한 것도 인생이다라는 차승원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영화는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만큼 영화 제작 전 박작가는 강우석 감독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고 한다. 고산자 김정호를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달라는 요구였다. 김정호에 대한 역사적 사료가 부족했던 만큼 박범신 작가가 소설을 쓰던 당시에도 이야기를 구성해나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박범신 작가는 일전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호는 국가 권력이 장악하고 있는 국토에 대한 정보를 한 장의 지도로 완성해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다. 완전한 민주화를 꿈꿨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정신 속에 위대함이 있다라고 밝힌 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돋보였다. 영화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아쉬운 부분들이 보인다. 하지만 심심한 스토리나 논란을 제쳐두고라도 영화의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스크린으로 옮겨진 조선의 강토와 산하이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대한민국 팔도강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화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광도 감상하고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이해도 조금 더 넓힐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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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에 대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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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현아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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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박범신 작가의 소설 <고산자>를 원작으로 조선 최고의 고지도인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삶을 다룬다. 영화는 그야말로 ‘지도 덕후’라 할만한 김정호의 지도에 대한 숭고한 열정과 함께, 지도를 독점하려던 권세가들의 탐욕과 시대의 풍랑에 휩쓸린 가족의 비극을 덧붙인다. 무엇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강우석식 드라마다. 김정호의 진한 삶에 유머를 섞어 농도를 낮추고,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직설적이고 투박한 화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머의 타율이 다소 낮은 편이고, 곁가지 이야기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정작 지도를 만드는 김정호의 삶이 진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카메라에 담긴 백두산, 황매산, 북한강의 수려함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엽서처럼 끼워져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영화 후반부의 뜨거움은 무언가에 삶을 내던졌던 사람의 삶에 기인하기에 여전히 울림이 있다. 추석시즌 전체관람가 영화로서 깊이보다 넓이를 택한 상업영화다.
2016년 9월 1일 목요일 | 글_류지연 기자 (jiyeon88@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