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South Bound , 2012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는 '오쿠다 히데오'의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아나키스트 가장 최해갑(김윤석)을 중심으로 운동권출신의 아내 안봉희(오연수), 디자이너를 꿈꾸고있는 큰딸 민주(한예리), 아버지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며 불만이 가득찬 아들 나라(백승환), 막내딸 나래(박사랑)를 등장시켜 국가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소시민의 진정한 용기와 자유로운 생각들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이나 <와이키키 브러더스>를 통해 우리들의 세상 살아가는 모습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내던 임순례 감독은 이번작품에서는 이전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게 일본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연출방법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극중 해갑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들을 동경하는 모임이 등장하는 것이나 고등학교를 중퇴한 큰딸 민주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선생님이 그러하고 국가정보원 소속의 두 형사를 등장시켜 일본식 웃음코드를 잡아내는 것도 전형적인 일본영화의 기본 틀을 따라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이질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일본의 1970년대와 1980년대 우리나라 운동권 세대들이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세대의 아픔과 속내를 들여다보는데 있어서 배우 김윤석이 연기한 최해갑 이라는 인물은 가장 적합한 케릭터로 섬 개발을 둘러싸고 이권을 행사하려는 정치인과 자본가들을 등장시켜 용산참사나 제주 강정마을을 연상시킬수 있는 효과를 주기도 하였다.
일명 '최게바라'로 통하는 해갑은 더 잘 살기위해 노력하고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반기를 들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의 아내 봉희 역시 남편의 생각을 존중하며 곁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준다.
반정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감독으로 경제적인 능력은 없지만 누구를 만나고 어떤 장소에 가더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성격으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시비가 붙어 수 없이 파출소를 들락거리기도 하였다. 국민연금공단 과의 마찰, 학교급식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거부하며 주민등록증을 잘라버리던 이 남자에게 고향후배 만덕(김성균)이 찾아오면서 삶의 변화를 겪게 된다.
만덕이 고향에서 서울로 온 이유는 용역깡패를 동원해 섬 마을 사람들을 쫒아내고 리조트를 건설하려는 국회의원 김하수를 처단하기 위함이었다. 만덕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교도소에 수감되자 해갑은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섬마을에 가족과 함께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아름다운 남해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작은집은 현대문명의 편안함을 즐길 수는 없지만 해갑이 원하던 이상적인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족들 또한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처음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섬마을로 이사한 후 한가롭게 일상을 즐기던 해갑의 가족은 리조트를 건설하려는 기업과 권력에 맞서 한바탕 전쟁을 치루게 된다. 그 상대는 바로 고향후배 만덕이 처단하려고 했던 여당의 국회의원 김하수로 절대 물러서지 않고 집을 지키겠다는 해갑과 중장비를 동원한 권력의 하수인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기득권에 대항하는 소시민의 힘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그 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 그동안 해갑에 대해 냉소적 이었던 세 자녀들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부당한 것에 대하여 자신의 신념을 밝힐 수 있는 개념있는 인간으로 변모해간다는 것이다.
영화속 해갑이 주장하는 모든 것들은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하야(下野)를 촉구하는 현 정세를 비판하는데 있어서 딱 맞아떨어지는 말 인지도 모른다.
권력자와 자본가가 결탁하여 가진자들의 배불리기에만 열중하는 이 나라의 현실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임순례 감독은 국회의원 김하수와 동네이장 도윤태를 등장시켜 사회적인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비판적인 메세지를 가족간의 화해와 따뜻한 감성위에 살며시 얹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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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하게 사회를 풍자한 코미디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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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JC PARK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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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따져 묻지 않는다. 그건 마치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대항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공명정대하고 명확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따져 물어야 한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로잡겠다고 나설 때엔 그만한 각오가 필요한 법이다. 어쨌든 아나키스트, 즉 무정부주의자란 말은 있어도 무정부인, 비국가인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남쪽으로 튀어>는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둔 작품이다. 그리고 원작처럼 어느 아나키스트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아들의 1인칭 시점 대신 객석의 시점과 동일한 3인칭 시점으로 영화를 목격하게끔 만든다. 국민 같은 거 하지 않겠다며 주민등록증은 찢어버린지 오래이고, 당연히 세금도 내지 않는 최해갑(김윤석)은 <남쪽으로 튀어>의 핵심이다. 그는 이 영화가 존재하도록 이끄는 필요조건 같은 존재다. 무정부주의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연출하는 그는 한량과도 같지만 불의 앞에선 불처럼 뜨겁다. 그럼에도 최해갑 못지 않은 운동권 경력을 자랑하는 그의 아내 안봉희(오연수)는 그의 이상을 응원하는 강력한 아군이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이런 면모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미워하진 않는다.<남쪽으로 튀어>는 일종의 계몽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는 우화다. 최해갑의 삶은 객석을 찾은 관객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생경한 태도에 가까울 게다. 이는 단순히 캐릭터가 지닌 고차원적인 이상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태도로서 드러나는 삶의 방식이 그렇다. 누구나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결코 실행할 수 없는 행위들을 최해갑은 한다. 불합리한 시스템의 오류를 순응하며 편하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달아난다. 엄밀히 말하자면 최해갑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란 자립에 가깝다. 투쟁이나 싸움이라기 보단 체제로부터의 독립이자 현대적인 사회제도로부터의 자립을 의미한다. <남쪽으로 튀어>는 사실 그러한 삶이 행복하다고 설득할 수 있다면 보다 나은 영화다. 하지만 영화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때때로 그러한 삶이 국가관에 길들여진 대부분의 삶보다 나아 보이고 행복하게 다가오는 풍경들이 목격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태도를 제시하고 권유하기 보단 일종의 전시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치열한 현실감보단 현실성을 염두에 두고 그린 이상에 가까워 보인다. <남쪽으로 튀어>가 계몽적인 영화라기 보단 우화에 가깝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에 밀착하는 대신 현실을 연상시키는 어떤 상황들을 수집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기워 넣는다. 수집된 상황들은 대부분 권력화된 정책과 제도 안에서 발생하는 갖은 불합리들이다. 최해갑은 이에 저항한다. 그 저항은 대부분 통쾌하지만 결국 실패한다.영화는 웃고 있지만 사실상 씁쓸한 이야기다. 영화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인상을 유지하지만 영화가 전시하는 비극의 강도는 사실상 현실의 파괴력을 따라잡지 못한다. 쉽게 말하자면 <남쪽으로 튀어>는 현실보단 이상으로 기운 영화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캐릭터의 결기를 지켜보는 재미는 유쾌하지만 사실상 영화가 제시하는 청사진이란 그리 희망적인 인상이 아니다. 현실에서 얻어지는 무력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감상 또한 영화와 완벽하게 밀착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쪽으로 튀어>는 대한민국 국민 엄밀히 말하자면 서민들의 불만과 분노의 뿌리를 살피는 진단으로서 유효하다. 좀처럼 명확한 출처를 규정하기 어려워서 막연하게 분노를 삭히고 현실에 수긍하듯 살아가는 당신에게 어떤 근거들을 제시한다. 선동하기 보단 자각하게 만든다. 물론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자각해온 이들에겐 빤한 난장처럼 보일 가능성도 농후하지만.확실히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다.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지닌 아나키스트 최해갑을 연기하는 김윤석의 캐릭터 소화력과 담담하고도 결연하게 최해갑을 내조하는 안봉희를 소화해내는 오연수의 의외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역 배우들의 기똥찬 연기는 물론. 이처럼 저마다 살아있는 캐릭터들은 영화가 다루는 날선 소재와 논조를 유쾌하게 중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2013년 2월 7일 목요일 | 글_민용준 ( siwoorai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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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사회를 풍자한 코미디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