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New Trial, 2016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 정우는 응사 이후 보다 이전의 프로필이 더 많다. 물론 조연급의 단역으로 얼굴을 알리는 수준이었지만 분명 그 정우만의 캐릭터 찾기에 좋은 표준안이 마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응사 이후로 정우는 180도 달라졌다. 쓰레기 캐릭터의 그늘은 여전했지만 점차 달라지는 모습은 <쎄시봉>과 <히말라야>로 이어지면서 보다 견고해지고 확연히 진지해졌다.
그에 대한 방점을 찍는 영화가 바로 이 <재심>이다. 변호사라는 직업도 그렇지만 정의와 법을 주시한 이준영 이라는 역할은 옳고 그름의 가치를 너머서 어느 길로 가야할 지를 정확히 알고 가는 이의 선명한 발자국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고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뤄서 크게 국민들의 큰 관심을 가진 사건이었기에 쉽게 지나갈만한 변호사 스토리가 아니다. 게다가 영화가 제작되어 상영된 이후로 본 사건의 재판에서 당사자가 무죄로 판결되었기에 마치 영화와 현실이 하나가 되어 어울어지는 관람 재미도 있다. ‘약촌오거리 택시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처음과 끝을 영화와 현실에서 제대로 알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영화로 볼 수 있는 말이다.
하나의 사건이지만 영화는 두 인물의 큰 축으로 구분하면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가는 게 편리하다.

우선 16세의 껄렁껄렁한 청소년 조현우(강하늘).
약촌오거리 한쪽에 세워져 있는 택시기사가 사망한 상태에 있는데 그 길을 현우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칠 뻔한다. 한밤중이라 보는 사람도 없는 와중에 그 사람은 그냥 지나가 버린다.
공교롭게도 살인사건 현장에 있었던, 현장부재증명이 안되는 상황에 처한 현우.
현우의 오토바이에는 또 칼까지 발견된다. 하지만 현우는 이 사건에 결백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형사 백철기는 현우를 폭행하는 불법 수사를 하며 거짓된 진술서를 받아낸다. 현우가 갖고 있던 칼은 택시기사의 살해에 쓰인 칼이 아니라는 동료 형사의 의견도 무시하며 그대로 밀어부친다.
그렇게 이 억울한 사건은 현우가 억울하게 10년을 감방에서 복역하면서 끝나는 듯하다.

그런데 변호사 이준영(정우)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로펌에 입사하고 싶은 그가 이 사건을 맡은 것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때문이고 로펌은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서로 맞은 것.
그리 정의롭지 않은 의도로 맡았지만 사건을 알아갈수록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준영은 사건의 처음부터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여러가지 사실 확인 조서를 보면서 백철기의 불법 수사와 사건 진술의 모순 등에 분노하고 현실의 벽에 절망하기도 한다.
과연 준영은 이 사건을 다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현우는 억울한 세월을 보상 받을 수 있을까.

일단 영화는 제목 ‘재심’처럼 법정에서 주요 장면이 일어날 것이라 보이지만 법정 장면은 마지막에만 보이고 대부분은 법원 밖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구성된다. 현우가 10년을 온전히 억울하게 복역을 했으니 10년 전부터 10년 후의 사건을 살펴보는데 영화는 일정한 줄기를 가지고 통일된 시선을 갖추고 있다.
현우의 알리바이가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의 가장 큰 악인은 바로 백철기일 수 밖에 없고 그로서 끝나게 된다. 사건을 조작하는 것도 모자라 현재에 와서도 폭행 감금 수사를 한다는 것은 법 집행의 정반대에 선 것이니 백철기는 이 사건의 가장 큰 핵심이다. 돈에 매수되어 준영을 속이는 모창환(이동휘)가 영화 중후반으로 갈수록 악인으로 낙인 찍히지만 그런 캐릭터는 오히려 돈맛을 아는 변호사 캐릭터를 보여주는 수단일 뿐 사건 자체로 봤을 땐 준영의 정의로움을 더 부각시켜주는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점점 꼬여가고 해결책은 멀어지는 와중에 결정적 증거, 핵심 목격자 하나만 있어도 되는 그 상황에 한줄기 빛처럼 상황을 뒤집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을 위해서 남겨놓는다.
미리 알아도 상관없지만 현우의 진심을 미리 알게 하고 사건에 대한 공감을 하게하는 중요한 인물이니 영화를 볼 때 그의 심리 상태를 잘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심>은 <변호인>이나 <부러진 화살>, 또는 멀리 헐리우드 영화 <더 헌트> 와는 달리 법정 다툼보다 사건의 전체 흐름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중시한다. 즉, 사건 자체의 맥락을 짚는데 전체 흐름을 맡기고 있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많은 의문과 답답함이 이어졌단 국민들의 마음을 그나마 위로해주고 해소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앞으로 이런 억울한 사건이 더 이상 이어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서 약속할 수 있는가. 약자에 대해서 국가가 해줘야 할 책임은 선명히 제시할 수 있는가 이다.
<재심>은 그런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 위와 같은 질문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이다.
좋은 배우들의 호연과 정의로운 결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박수를 보낼 수 있도록 이 영화가 널리 알려지고 많이 보여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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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촌 택시기사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졌던 모든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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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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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한 후 세상에 나온 청년을 기다린 건 국가의 구상권 청구였다. 바로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청년을 대신해 보험금을 지급했으니 지난 10년 간의 이자를 더해 갚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재심’의 발단이었다. 아마 구상권 청구가 없었더라면 그의 사건은 방송을 타지도 못했으며 그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이름 모를 사람 중의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일명 ‘약촌 5거리 살인사건’이라 불리는 익산에서 발생한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은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두 차례나 방송된 후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 아직도 현재진행중인 사건이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김태윤 감독은 실제 사건의 주인공이 무죄라고 확신한 후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감독은 극 중 변호사 ‘준영’의 의식 변화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이익만을 추구하던 변호사에서 어느새 의뢰인의 무죄를 믿고 정의를 선택하게 되는 그의 행보에 집중한다. 다만 강약과 고저 없는 전개는 다소 밋밋하기도 하고, 감동의 강요로 느껴질 요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정의에 외면당하는 혹은 정의를 외면하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정의’와 ‘믿음’에 대한 메시지가 선명한 작품이다. 친근한 변호사로 분한 정우와 독기 품은 청년을 연기한 강하늘의 힘뺀 연기가 좋다. 김태윤 감독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사망을 다룬 전작 <또 하나의 약속>(2013)에서도 실제 사건을 극화한 바 있다.
2017년 2월 8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