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
Ordinary People , 2015
깐깐하고 억지스러운 상사의 닦달 속에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가는 직장인 구재필. 별거 중인 아내와의 재결합을 꿈꾸지만, 아내를 찾아간 그의 눈앞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져 있다. 바로 아내의 죽음.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아내는 이미 숨진 뒤였다. 별거 중인 부부라는 이유로 곧장 용의선상에 오른 구재필은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언제까지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 줄 알았던 구재필의 일상은 그렇게 어긋난다.
포스터의 인상적인 문구 출근의 사명을 띄고 이 땅에 왔다는 문장만큼 구재필의 삶에서는 회사, 그리고 출근이 막강한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상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잠을 자고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억지를 부리고 무리한 업무를 떠넘기는 상사 앞에서도, 빠듯한 직장생활로 인해 많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구재필에게는 회사가 전부다.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느라 어느 순간 그의 삶에서는 일이 전부가 되어버린 것. 영화에서는 다소 과장해서 표현되었지만, 사실상 구재필의 모습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직장인들과 흡사하다.
구재필이 그토록 회사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가족을 위해서다. 가족을 위해서 그는 돈을 벌어야 하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딘다. 하지만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동안 구재필의 가족은 깨져 버렸고, 아내는 이유 모를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구재필은 경찰의 용의선상에 올라 아내를 죽인 살인범으로 지목된다.
그는 자신의 삶을 위해서 노력했고, 매일같이 고군분투했다. 그런데 결국 돌아온 결과가 아내를 죽인 남편이라는 의심이다. 불합리한 조사를 받으면서도 격분하지 않는 구재필에게서는 어느 순간,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에 무감각해져버린 허무함이 묻어난다.
용의자로 몰린 순간에서도 구재필의 머릿속에는 회사가 있다. 악덕 팀장이 시킨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한다면 그는 실직자가 된다. 실직자가 된다는 생각에 구재필은 필사적으로, 그리고 최선을 다해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경찰에게 내일 출근할 수 있으냐고 묻는 구재필의 모습이 안타깝고 또 애잔하다. 가족을 위해서 온갖 굳은 일을 견디며 직장생활을 하지만, 이미 가족이 직장의 뒷전이 되어버린 상황.
구재필에게는 어머니의 발인 때에도 가게의 문을 열고 영업을 하던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하루라도 가게 일을 미루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경험. 하지만 지금 구재필의 모습은 과거에 그가 원망했던 아버지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구재필을 탈출을 계획한다. 그에게는 별다른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내일 당장 말이다. 구재필이 경찰과 대치하며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행동들과 그 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상당히 코믹하게 표현되지만, 사실 마냥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은 아니었다. 코미디보다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이다.
현대사회에서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매일같이 제기된다. 턱없이 길고 고된 근무시간, 정해진 시간 외에도 주어지는 연장근무 등.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현대인들과 <소시민>의 구재필은 몹시 닮았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 어느새 일이 자신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상황. 이 슬픈 아이러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씩은 경험해 본 일이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구재필은 팀장이 시킨 무리한 업무를 걱정하고, 용의자가 된 와중에도 내일의 출근을 생각해야 한다. 코믹하면서도 슬픈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또 안타까워했다. 극중 구재필의 상황은 작은 사건에 또 다른 사건이 겹쳐지면서 계속 꼬이기만 한다. 업무 위에 또 업무가 쌓이는 직장생활을 닮았다. <소시민>은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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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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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은 직장인 ‘구재필’의 가장 긴 출근길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는 군대식 조직문화와 쥐꼬리만한 월급에 찌들고 자신을 몰아 붙이기만 하는 아내와 장모의 닦달에 시달리는 가장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이지만, 가족애라는 보편적인 코드를 주재료로 삼는 영화이기에 관객이 공감할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한데 이야기를 직조하는 방식이 그 공감을 깎아먹는 측면이 있다. 피 흘리며 쓰러져있는 아내를 보고도 상사의 지시 때문에 사무실로 향하는 주인공이 감내하는 비극은 너무 과도한 반면, 그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술집 여자와 동네 건달과 합세한다는 상황은 뜬금없이 코믹함을 안겨 부조화한 느낌을 주고 만다. 또다른 주인공 동생 ‘구재숙’과의 에피소드도 이야기에 긴밀하게 섞이기보다는 가족애를 강조하는 장치로 활용되는 편이다. 다만 기어코 사표를 집어 던지는 장면만큼은 인상적이다. <개똥이>(2012)를 연출한 김병준 감독의 두 번째 독립영화이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다.
2017년 1월 3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 ( pgot@movis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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