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2017
The Way, 2017

영화 속 순애(김혜자)의 대사다.
“늙으면 쓸 데 없어지는 게 죽는 것보다 더 두렵거든요.”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서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그리고 어른에서 노인이 되어 간다. 시간이란게 참 야속하기만 하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서 새로운 것들이 발명되고 발달되면서 내 자신은 그러한 새로운 것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낡은 구닥다리가 되어 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직 나는 30대 중반이지만 10대 아이들의 말투나 행동,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신기기들을 볼 때마다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라고 생각 하게 된다. 10대 20대 때는 몰랐다. 아니 알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나이가 들고 어느 덧 내가 내 어린 시절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서야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지금 내 나이에 부모님은 나와 내 동생을 키우셨다. 나는 아직 철이 없는 것 같고 아직도 마음은 10대인 것만 같은데 말이다. 아마도 나이가 드는 것을 떠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야 비로소 책임감으로 인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부모님이 모두 맞벌이를 해서 할머니가 키워주셨는데, 어린 치기에서 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에게 못되게 굴었던 기억만이 남는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과 어린 시절 잘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는 동물인 것 같다. 잘해 드리지 못하고 따뜻한 말도 자주 건네지 못했던 내 자신이 왜 그렇게 못나게 느껴지는지, 그때서야 느끼게 된 것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작별의 시간이 다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내 주위의 누군가를 떠내 보내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화 "길"은 참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이다. 영화 속 순애는 가족 모두를 이민 보내고 홀로 아파트에 살면서 누군가와의 소통을 간절히 원한다. 대화 할 수 있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돋보기를 쓰고 공부를 해서 가전제품을 만져보지만 고장이 나 A/S기사를 부른다. 바쁜 수리기사를 붙잡고 식사를 대접한다. 그 순애는 식사를 만드는 동안 행복에 빠진다.
상범의 어린 딸은 집을 나갔다, 그러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상범에게 맡기고는 또 다시 집을 나갔다. 상범은 그런 손녀를 키우며 살아간다. 잘 들리지 않아서 보청기를 달고 살아야 하지만 상범은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제2의 청춘을 즐길 준비를 한다.
수미는 교통사로고 아들을 잃고 만다. 아들이 먼저 저세상으로 간 것이 마치 자신의 업보인 것 같아 괴로움에 시달린다. 그렇게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지만 현실에서 오는 상실감은 수미를 숨 막히게 한다. 수미는 굳은 결심을 하고 아들 곁으로 갈 준비를 한다. 죽기 위해서 수면제를 사고 영정사진을 찍는다. 죽기 전에 여행을 떠난 수미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삶과 죽음, 그 경계가 참 아이러니 하다.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과거가 된다. 나이가 들면서 얻는 경험도 많아지고 사람들과의 인연이 어느 순간엔 독이 되고 어느 순간엔 행복이 된다. 내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내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영화 "길"은 점점 노령화 사회로 가는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준다. 나이가 들면서 얻는 경험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면, 우리들은 잔소리라며 듣기 싫어한다. 아마도 나도 나이가 들면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 그리고 노년의 시간들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
|
 |
가족영화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싶다면 |
|
| 글: 이상욱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
정인봉 감독은 앞서 김혜자를 주연으로 노년의 삶과 고민을 조명한 15분간의 단편영화 <순애>(2016)를 연출한 바 있다. <길>은 그 이야기에 송재호, 허진을 중심으로 한 두 노년의 이야기를 덧붙여 만든 옴니버스식 장편 드라마다. 마음 아픈 사연을 품고 사는 세 노인의 이야기를 차례로 보여주며, 그들의 삶을 끝 없이 이어진 ‘길’이라는 이미지에 꿰어 넣고자 한다. 아쉽게도, 애초 단편 <순애>(2016)가 보여준 짧고 강렬한 인상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주제의식의 확장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허무해 보이는 세 노인의 사연을 병렬식으로 이어 둔 데 그친 까닭이다. 세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꼭 맞아떨어지지 못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각 단편을 이끌어 나간 김혜자, 송재호, 허진의 색깔만큼은 짙게 녹아있다. 온주완, 박혁권, 안혜경, 지안 등 다양한 조연이 작품 속에서 함께 호흡한다.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2017년 5월 2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