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In Between Seasons , 2018

환절기. 계절이 변하는 시기. 계절이라는 것은 아주 천천히 변하지만 어찌 보면 눈 깜짝할 새에 변하기도 한다. 어느새 소리 없이 봄이 우리 주변에 와 있는 것처럼 정신을 차려보면 바뀌어있는 계절이지만,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은 언제 지나가나 싶을 정도로 천천히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아주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가 있다. 마치 계절이 변하듯이 우리에게 소리 없이 스며드는 영화. 오늘 소개 할 작품은 영화 <환절기>이다.
외국에서 근무하는 남편 때문에 아들 수현과 단둘이 살아가는 엄마 미경은 어느 날 아들이 집에 데려온 친구 용준을 마음에 들어 한다. 아들 수현은 마치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지만, 그의 친구 용준은 무거운 짐을 들어 주기도하고 수현을 더욱 수다스럽게 만드는 친구인 것 같다. 마치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 같은 용준이 더욱 맘에 든 미경은 세상을 떠난 용준의 엄마 대신 그를 챙겨주고, 아들 수현이 군에 입대하는 날에도 용준과 함께한다.
시간이 흐르고 아들 수현이 제대하던 날 수현과 용준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리고 미경은 수현과 용준이 오래된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해 누워있는 아들과는 달리 멀쩡해 보이는 용준. 그리고 아들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알고 있었던 아이가 아들의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경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아들의 병실을 찾아오는 용준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삼각관계의 틀을 깨는 작품이다. 엄마인 미경을 중심으로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그리던 삼각관계는 아들과 아들의 연인이 그리는 삼각관계로 바뀌어나간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려진다.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대사도 없고 명확하게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도 없지만, 어떤 과장이 포함되어있지도 않고 서정적으로 그려나가는 화면 속 이야기에 관객이 물들 듯이 천천히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마치 한 권으로 되어있는 책을 읽는 것과 같이 이 영화는 차분하지만 강렬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미경은 용준을 피해 혼수상태인 아들과 자취를 감추게 되고 용준은 그런 미경과 수현을 찾아 다닌다.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읽히기 시작했던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관객들은 이제껏 눈치 채지 못했던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퀴어라는 장르는 한국 영화사를 통틀어서 얼마 다루지 못한 소재일 것이다. 관객들에게도 낯설기만 하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는 전적으로 이동은 감독에게 달려있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보면 정서적으로는 퀴어 영화라기보다는 가족 드라마에 가까운 형식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런 장르를 낯설어하는 관객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엄마인 미경의 시점으로 자신의 주변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성소수자라는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이것을 이용해 자극적이고 민감하게 사건을 풀어나가지 않고, 서정적이고 섬세하게 캐릭터를 그려나감으로써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영화에서 보여 진다고 할 수 있다.
이동은 감독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생각이 영화 <환절기>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
|
 |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이 궁금하다면
가족 중심의 퀴어 영화가 궁금하신 분 |
|
| 글: 이현아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
내 아들이 성 소수자라면. 내 집 놀러와 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내가 사준 속옷을 입고, 하루씩 자고 가기도 하던 아들의 절친한 친구가 사실은 내 아들이 오랫동안 사귀어온 동성의 연인이라면. 부모가 되어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환절기>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아들이 성 소수자라는 걸 알게 된 엄마가 맞닥뜨린 고통스러운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아들에게는 정작 어떤 질문도 할 수 없는 상황, 복잡하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돌아보고 자신을 가다듬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계절이 바뀌고, 아들의 연인과 여러 차례 마주하면서 천천히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엄마 ‘미경’역의 배종옥이 작품 전반에 깊은 숨결을 불어넣는다. 장면 장면에 스며든 그의 호흡과 감정이 관객의 마음을 완전히 적신다. 성 소수자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많지만, 성 소수자를 자식으로 둔 엄마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본 작품은 흔치 않다는 데 <환절기>의 의미가 있다. 소재 자체가 무거운 만큼 시나리오는 자극적이지 않은 쪽을 택했다. 지윤호가 아들로, 이원근이 아들의 연인으로 분한다.
2018년 2월 14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