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 꽃의 고백

기생 : 꽃의 고백은 20세기 초 문화예술계를 주름잡았다가 소리 없이 사라져간 여성 예술가인 기생에 관한 이야기로 기생의 역사, 편견, 예술혼이 있는 기생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세기 초 춤, 노래, 시조, 악기연주 등 대중예술인으로 화려하게 피었다가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으로 사라져간 여성예술인, 그들을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 즉 기생이라 불렀다. 기생학교인 권번에서 전통교육을 받은 기생을 찾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지역문화재 확정을 앞두고 있는 군산권번의 마지막 예기 장금도 명인의 삶과 우리가 몰랐던 대중문화예술인 기생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기생학교 권번은 남자출입금지 구역으로, 악사와 선생님 남자 몇 사람만이 권번에 출입이 가능했다. 1930년대 후반 종로권번에 등록된 기생의 사진은 뛰어난 미모에 세련된 옷을 입고 백화점꼭대기에서 와인과 원두커피를 마시고 연미복을 입고 서양식댄스인 레브댄스를 처음도입을 해서 허슬처럼 똑같은 동작을 했는데 이런 것들이 기생의 시초다.
기생들은 영화, 음악, 레코드 주유, 연극배우, 가수, 요즘 하는 엔터테인먼트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했었다. 기생들은 스캔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대중들은 이 사람들을 스타로 여겼다. 극장을 제일처음 접한 예술인도 사실은 기생이었다. 1902년 협률사가 개장했을 때 기생들이 제일먼저 무대에 올라가 춤을 췄고 서양의 포크댄스, 소셜댄스, 사교춤 이런 것들이 들어오면 기생에게 가서 춤을 배우고 기생이 공연을 했었다. 기생은 가와 무를 습득하는 것을 본업으로 했고, 우리나라 예술의 주인공으로 새로운 연극, 음악, 신민요, 영화를 만들 때 제일먼저 섭외가 되는 건 기생들이었다.
최고의 기예를 가진 조선의 한국제일최고의 명인들이 기생들이다. 시 잘 쓰고, 글 잘 짓고, 글도 필이 아주 빼어났고 그림도 잘 그리고 소리도 잘했고 춤도 잘 췄다. 기생을 나눌 때 1패2패3패로 나눠졌는데 1패는 고급기생으로 왕실에서 활동하는 기생이고, 시서화가 가능한 기생들 2패는 일반대중들을 상대로 가무를 하는 기생, 3패기 생이 몸을 파는 기생이었다. 예술 활동을 하는 기생을 예기라고 했고, 국산장려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물건으로 옷을 지어 입고, 고아들을 위한 기생연주회를 열만큼 애국자들이었다.
군산 소화권번 기생이었던 90세 장금도 할머니!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급하게 결혼을 했고, 또 그 결혼이 순탄치 않아 아들하나를 홀로 키우게 됐고, 그 당시에 여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결국 춤을 통해 생활을 엮어갔다. 권번에서는 선생님을 초빙해 오전 오후시간 학습을 하게 되는데, 권번들은 자체의 교육학습프로그램들이 있어 철저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예전 기생은 왕만이 볼 수 있었다. 왕의공연인 진연이라든지 왕 앞에서 춤을 추는 게 기생이었지 민간들이 볼 수는 없었다. 왕만 먹던 음식, 왕만 봤던 공연을 요릿집이 대신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정 가격 명월관이다. 당시 조선의 명월관은 단순한 요릿집이 아니고 상류층들이 주로 갔던 곳으로, 유학파, 독립투사들, 다양한 지식인들이 식사를 하고 정보를 교환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명월관이라는 브랜드가 많이 알려져서 많은 기생들이 거기에 종사하게 되었고, 1931년 7월 7일자 자료에 명월관이라는 장소가 신주쿠에도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서로 상호교류가 일어나면서 기생문화가 일본의 게이샤와 섞였다고 할 수 있다. 옛날에는 기생이 고급예술을 담당했었고 문인이나 학자들과도 문학적 예술적 교류를 했었는데, 그런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굉장히 소비적이고 대중적인 접대방식들이 들어왔고, 1942년에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본이 총동원령이 내리면서 기생들에게 가무를 금하고 접대부 역할만하라고 명령했고 기생에 대한 이미지와 역할은 접대하는 것으로만 대중들에게 인식이 박힌 것이다.
현대무대에 정착되어있는 전통춤이 근대적인 전통춤으로 성립되었는데 그 이전에 춤은 권번에서 이뤄져서 그게 무대로 올라오고 무대에서 제도화한 것들이 또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기생들이 전통예술의 명맥을 지키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권번 춤을 추셨던 마지막 예인은 장금도 선생님! 당대의 스타였고, 대중의 스타였으며 우리전통예술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달했던 역할을 한 장금도 선생님의 춤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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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예술인 기생의 역사에대해 궁금하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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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ap사랑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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