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하고 싶은 건 기억하도록 되어 있다.
건망증이 심한 수진(손예진)은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놓고도 금세 잊는다. 때마침 철수(정우성)가 편의점에서 산 콜라가 수진이 샀던 콜라와 같은 콜라. 수진이 철수의 콜라를 자신의 것으로 오해하여 닁큼 빼앗아 먹고, 둘은 그렇게 처음 만난다. 수진이 철수를 다시 만난 건 자신의 아버지의 일터를 따라 갔을 때. 수진은 철수를 눈 여겨 보고 그에게 묘한 호감을 갖는다. 소주 한 잔을 마시는 걸로 둘의 연애는 시작. 신분의 차이가 잠시 둘의 결혼을 막지만, 수진이 갑자기 쓰러지는 통에 이마저 손쉽게 넘어간다. 둘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다 때 아닌 위기를 맞는다.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 이를 지켜봐야 하는 철수. 수진이 철수에게 쓴 마지막 편지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기억하고 싶은 건 기억하도록 되어 있다.’고....
슬프다. 한 번 쏟은 눈물이 여간해서 멈추지 않는다. 슬픔의 강도와 흘린 눈물의 양이 영화평가의 기준이라면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단연 최고의 최루성 멜로영화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다’ 라는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한 없이 울고 싶은 사람에게 이만한 영화는, 없다. 눈물샘의 용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은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손예진)이 써내려간 편지. 편지를 부여잡은 철수(정우성)의 얼굴 위로 수진의 울음 섞인 내레이션이 들린다. 철수는 몸을 비틀며 오열하고, 관객도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눈물, 콧물 훔치느라 정신없다. 그만큼 이 영화, 참 슬프긴 슬프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영화의 완성도적인 측면에서 재단하면 답답한 부분이 많다. 이 영화, 매우 전형적이고 안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국 멜로 영화에서 숱하게 써왔던 흥행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우연히 만나는 두 남녀, 둘은 서로에게 반하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그들 앞에는 익숙한 장애물이 놓인다. 인적 장애물의 요소가 철수를 반대하는 수진의 아버지와 수진이 사랑했던 유부남이라면, 환경적 장애물은 철수의 가난과 그의 비정한 가족사다. 멜로 영화에 빠지지 않는 이같은 장애물은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이런 진부한 설정을 곳곳에 설치하고 수진이 기억을 완전히 잃어가는, 마지막 한 방의 슬픔만을 위해 달려간다.
진부한 설정은 작위적인 대사와 종종 세트를 이룬다. 가만히 듣다보면 오글거리는 대사가 한 둘이 아니다. 오글거리는 대사의 문제는 배우의 딕션에도 있다. 특히 정우성의 연기는 내내 불안하다. 공사판과 어울리지 않는 비주얼부터 몰입이 쉽지 않은데 그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공사 용어들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기 그지없다. 수더분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외양의 디테일은 나름 신경 쓴 흔적을 보이지만 진짜 그 인물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투, 행동거지의 디테일은 챙기지 못한 모습이다. 그가 뱉는 말이 그가 정확한 뜻도 모르고 뱉는 대사란 것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재한 감독은 곳곳에서 세련된 연출을 선보이면서도, 별 중요치 않은 장면은 성의 없이 처리하곤 한다. 몽타주의 과잉이 대표적이다. 둘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 연애하는 장면, 결혼하는 장면, 철수가 첫 계약을 따내고 공사하는 장면. 모두 몽타주다. 달달한 보사노바풍의 음악을 배경에 깔고, 디졸브로 몇 장면 넘기는 식이다. 몽타주가 일련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연출법임에도 이 정도로 과하게 쓰이면 본래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영화가 아닌 2시간짜리 뮤직비디오를 보는 느낌이랄까? 감독이 영상미와 음악에 유독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아는데도, 때때로 그런 성향을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아 불편한 구석이 있다.
수진이 소매치기를 당하자 철수가 멋있게 소매치기를 잡고 가방을 돌려주는 장면. 철수가 결혼을 반대하는 수진의 부모님과 만날 때 마침 빈혈기가 돌아 쓰러져주시는 수진의 장면. 그리고 이내 쓰러진 수진을 업고 병원으로 냅다 뛰는 철수, 반대하던 아버지의 쏜살같은 결혼 승낙. 이렇게 둘을 엮기 위한 상투적인 상황들은 극 중 수진의 말처럼 ‘자신만만’이다. 철수는 두려운데, 수진과 영화는 자신만만하게 이런 상황들을 밀어붙인다.
애당초 만나지 않았다면 시작되지 않았을 안쓰러운 연인. 오롯이 사랑 하나로 살아간다는 둘의 가치관은 현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이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곁눈으로 한 번 바라본다면 스스로의 감수성을 채우기에는 충분할 영화라고 생각하다. 또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랑을 꿈꾸는가?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는 영화로서 손색 없지 않을까... 슬픈 영화로 홍보된 영화가 정말 슬프다면 일단, 성공이다. 그러므로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성공적인 멜로영화라 할 수 있다. 다만, 위에 열거 해놓은 빈틈들이 아쉽다. 저 빈틈만 메웠더라도...메웠더라도...조금 더 맑은 눈물을 흘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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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영화를 찾는 사람!
손예진 연기력의 시작을 보고싶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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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JK SOUL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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