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
HAEWON, 2017

2004년도에 개봉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싸웠던 한국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해당 영화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함께 전쟁터로 끌려가 최전방에서 싸운 진태, 진석 형제였다. 하지만 이 작품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치열한 전쟁터의 참상 때문만이 아니었다. 바로 군인이 아닌 민간인, 여자와 노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자행된 민간인 학살 때문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의 약혼자였던 영신은 가족들이 전쟁터로 끌려가고 나이든 노모와 동생들을 부양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전시에 먹고 살 길이 여의치 않자 군인들의 밥과 빨래를 해주고, 보리쌀을 배급해준다는 말을 듣고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는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빨갱이들에게 협력했다는 증거가 되어 영신은 부역자가 되어 총살당한다. <해원>에서는 바로 이렇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해원>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천안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은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파헤치려면 대한민국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직후, 미군은 당시 대한민국 지도층 인사였던 친일파를 대부분 그대로 기용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일제에 부역했던 방식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명예와 부를 위협할 수 있는 항일독립 인사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상당수 독립 운동가들이 친일파들의 위협을 피해 북으로 건너갔다. 미군에 협력한 친일파들은 안정적으로 정권을 잡았고, 이들이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정계 지도층에 남아있다.

당시 친일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자신들의 일제에 협력했다는 사실이 대중에 알려지는 것이었다.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빨갱이라는 단어는 이런 이유로 생겨났다. 응당 친일파들에게 쏠려야 할 국민들의 분노와 원성을 같은 동포들, 힘없는 국민들에게 돌린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은 시기별로 세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다. 이 시기에는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가 아직도 정권을 잡고 있다는 사실에 반발하여 반정부 인사가 된 독립 운동가들이 주로 처형당했다. 두 번째는 한국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과 형무소 재소자들이 주 대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다. 인민군이 장악한 서울을 다시 되찾은 서울 수복 직후. 이 시기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군인들은 이 사람들을 부역자라고 불렀다. 빨갱이들에게 협력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해원>의 구자환 감독은 아산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처럼 끔찍하고 비참한 현장은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산 학살 사건 피해자의 80퍼센트 이상이 20대 전후 기혼 여성이었다.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고 먹고 살 길이 요원하자 군인들이 나눠주는 쌀을 배급받고,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해주는 등 노동력을 제공했던 여성들이 부역자로 몰려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개중에는 아이를 가진 여성도 있었다. 또한 학살은 가족 단위로 이루어졌는데, 인민군이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갔다는 이유만으로 일가족이 총살당하기도 했다. 고발한 자에게는 포상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웃이 이웃을 고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해원>은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룸으로서 한국전쟁의 또 다른 참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이다. 오늘날까지 청산되지 않는 친일파의 잔재를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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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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