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The Spy Gone North, 2018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 악수를 하고, 이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폴에서 만나 기념 사진을 찍은 올해 2018년은 세계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해일까.
과거에 어떤 사건이 있었고 어떤 공작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역사는 올해 2018년을 어떻게 정의할까.
올 여름, 그토록 뜨거운 여름날 개봉했던 이 영화 공작은 9월이 되어서도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간직한 듯 극장에서 볼 수 있다. 배우들의 호연과 내용의 묵직함으로 영화는 쉽게 잊혀질 무게는 아닌듯하다.
때는 199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면서 핵무기를 개발할 것으로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된다. 정말 북한은 핵무기 개발 여력이 있는 것일까.
육군정보부에서 근무했던 박성영(황정민)은 안기부 요원이 되어서 신분 세탁이라는 과정을 거쳐 블랙요원이 된다. 블랙 요원이란 신분을 숨긴 채 활동하는 요주의 조직원. 중국에 가서 북한 고위급과 접촉하라는 명령을 받은 박석영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베이징으로 가서 북한 대외경제위 리명운(이성민)과 만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고 속이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첩보 영화와 실제 역사 영화의 경계가 아슬아슬 줄타기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서로 믿는 척하면서 내심 의심하고, 의심하는 걸 보여주면서 진심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령 가짜 고려청자를 주면서 남한에서 처분해달라고 일부러 곤란한 테스트를 하거나, 롤렉스 시계를 선물로 주지만 그것도 실제로는 가짜여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과정 영화 전반을 차지한다.
한편 남한에서는 실제로 북한에서 보고 싶은 곳은 영변의 핵제조기지였다. 핵시설이 있을 것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영변에 가서 실제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할 임무가 박석영에게 밀려온 것.
결국 영변으로 간 박석영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은 북한 인민의 참혹한 실상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북한의 모습들은 90년대 당시의 북한 체제와 거의 같다고 보여진다. 인터넷도 없던 그 때 그 시절의 남한과 북한의 모습은 굶어죽거나 혹은 오렌지족들이 해외여행 자유화를 만끽하거나 하던 양극의 시절이었던 것. 그리고 찾아온 1997년 대선. 남한의 세력들은 북풍을 조작해서 선거를 유리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흑금성의 존재를 발표하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스파이로 만들어버린다. 남한에서 공식적으로 박석영을 스파이로 지목하자 박석영의 운명은 바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국가의 배신, 그리고 오히려 이제는 북한의 신뢰를 받게 된 이중간첩. 박석영은 이후로 어떻게 살아남게 될 것인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또한 그 내용이 지금 2018년과 완전히 무관한 역사라고 할 수 없기에 영화는 설명이 길고 배경에 대한 지식을 줄곧 일깨워준다. 90년대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 지금, 그러나 당시의 모습을 재연한 것을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개념과 사상이 자유로워졌다고 해도 아직은 좀 경직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특별 출연한 이효리뿐. 깜짝 출연으로 다소 길게 늘어지던 영화의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휴대폰 광고 촬영 재연 장면의 이효리는 당시 실제 역인 이효리역을 본인이 맡았기에 영화는 마치 웰메이드 다큐로 등극한다.
남한과 북한의 긴장과 스릴를 다룬 첩보영화이지만 90년대 당시의 모습을 소환한 장면들은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복고의 향수를 가져다주는 재미가 있다.
최근 중년배우 중 대세 중의 대세인 이성민은 <목격자>에서 스릴러의 정수를 맞보게 할 아파트 주민의 심리를 잘 연기했는데 이 영화 <공작>까지 무르익어 안정된 연기를 과감하게 보여주었다. 황정민과의 심리 대결 장면에서 화면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긴장과 살 떨리는 의심과 의심의 시간 사이에서 이성민이 보여주는 배역의 균형은 잘 만들어진 영화는 진정 배우의 힘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후로 남과 북은 끝없이 반목과 질시를 거듭하고 개성공단까지 폐쇄하며 대화를 완전히 닫기까지 했지만 이제 다시 종전선언을 이야기하며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함께 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반복되는 역사를 막으려는 노력도 분명 존재해왔다.
전쟁 위기까지 가면서 마주했던 남과 북, 그리고 실리에 맞춰 움직였던 위정자들의 사이에서 이도저도 못하는 스파이 아닌 스파이, 애국자 아닌 애국자의 역사는 이렇게 영화로라도 만날 수 있어서 한편 다행이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나마 웃을 수 있는 여력을 남겨둔 것도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스릴을 <공작>에서 만나보시길…
 |
|
 |
첩보영화를 좋아하는 분
남북관계 영화를 좋아하는 분 |
|
|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장훈 감독의 <고지전>(2001)이 대립하는 체제 속 개인의 교류를 다루며 우리나라 남북관계 영화에 새 장을 열었다면, <공작>은 앞선 두 작품의 공통 맥락을 계승하면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한에 침투한 남한 공작원을 연기한 황정민과 그의 심중을 의심하면서도 기회를 주는 북한 고위급 간부를 연기한 이성민의 ‘찐득한’ 관계가 작품의 핵심이며, 영화는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동안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 사고를 촘촘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변화하는 상황 앞에서도 인물의 감정은 섣불리 낭비되지 않고 극을 진전시키는 데 치밀하게 활용된다. 스파이물하면 흔히 떠오르는 액션은 전무하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의 의중을 간파하고 예상치 못한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안기는 쾌감은 충분한 편이다.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북한 사회를 마치 실제인 듯 구현해낸 능력도 탁월한데,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군도: 민란의 시대>(2014) 등 다수의 전작에서 영화가 천착한 시대와 공간을 현실감 있게 묘사해낸 윤종빈 감독의 능력이 다시금 돋보인다. ‘흑금성 사건’을 모티브로 했으며 제71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다.
2018년 8월 6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