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L Abri , 2001

영화 <버스,정류장>은 열일곱살 여고생과 서른두살 학원강사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이다. 15살이라는 나이차이만 보더라도 이들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님을 의심케 하는데, 여고생과 학원강사라는 설정 또한 섣불리 이들이 위험한 관계임을 짐작하게 만든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부적절한 관계의 틀 속에 이들의 관계를 끼워 맞추려 한다면 영화를 보는내내 불편할 수 밖에 없겠지만, 결코 평범하지 못한 남녀가 소통하게 되는 과정을 눈여겨 볼 수 있다면 통속적인 관념에 물들어 야릇한 상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수도 있는 영화이다.

춘향전을 왜곡하는 재섭
재섭(김태우)은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강사이다. 모두가 핸드폰을 사용하는데도 아직도 삐삐를 사용하고 학원 선생님들과도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폐쇠적인 인간으로 넓은 세상속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그 누구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라면 몸을 팔아 생활하고 있는 혜경이라는 여인으로 이 이름은 재섭만이 그녀를 부를때 사용하는 이름이다. 재섭은 또 한명의 혜경을 알고있는데 대학시절 켐퍼스커플로 임신까지 시켰던 여인의 이름도 혜경이었다. 왜 옛 애인의 이름을 창녀에게 붙여줬을까에 대한 궁금증은 재섭이 강의중 춘향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때 어렴풋이 드러난다.

기생인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한 이유는 이도령이 장원급제하면 정실부인이 되고 그로인해 신분상승을 꾀했다는 것이다. 모진 억압을 받으면서도 춘향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출세를 상징하는 사 자로 끝나는 직업을 가진 남자를 잡기위해 발버둥치는 여자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게 재섭의 생각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옛 애인 혜경의 남자를 향한 심각한 열등감 일수도 있고 아직도 파트타임 강사직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향한 자책 일수도 있다. 어떤 기대나 바램이 없이 사람들과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있는 창녀 혜경에게 가식적인 사람들의 역겨운 행동들을 토로할 수 있는 이유도 그녀는 상대로 인해 어떤 이득을 취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희의 방황
소희(김민정)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공부도 잘하는 17살 소녀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 부모님으로 부터 간섭받기 싫어서인데 공부만 잘하면 늦게 들어오는것도 웬만한 실수도 다 용서가 되기때문이라고 한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뇌물을 받고, 가정주부인 엄마는 수영강사와 바람이 났다. 거기다 한심해 보일정도로 모범생인 언니까지, 소희의 눈에 비친 가족의 모습은 하나같이 삐뚫어진 욕망과 위선으로 가득찬 속물들인데, 더 큰 문제는 꼬일데로 꼬인 이 가족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듯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정작 가족들의 문제보다 중년남자와 원조교제를 하고있는 소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남자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끈임없이 소희의 환심을 사려하는데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지하철에서 눈물을 보이며 자신의 사랑이 진실임을 고백 하기도 한다. 원조교제로 인한 후유증은 소희 혼자서 감당해야 하고 그 곁에는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감싸주는 재섭이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준다.

가족과 세상을 향한 그리움
가족으로 부터 소외당한 소희와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쪽 구석으로 내몰린 재섭은 정류장이라는 공간을 매개체로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상처가 깊은 만큼 이들은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며 서로에게 다가서는데 소희의 임신을 계기로 둘만의 비밀스러운 감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들의 관계를 아무리 깨끗하게 포장한다고 해도 결론적으로는 미성년자를 탐하는 선생과 중년남자와 원조교제를 일삼던 여학생의 비정상적인 관계로 밖에 볼수가 없는데, 이미연 감독은 이러한 우려 때문인지 지극히 절제된 모습으로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게 하였다.

진실게임 같은 거짓말 게임을 통해 숨은 속내를 살짝이 드러내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픔들을 토해내며 교사와 학생이라는 신분의 두터운 벽을 뛰어 넘을수 있었다. 여느 연인들처럼 자유롭지 못한탓에 그리움은 기다림이 될수밖에 없고 우연을 가장한 만남은 버스 정류장 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왔던 재섭도, 가족의 따스함을 거부하던 소희도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했었다. 이들의 관계처럼 소희는 가족의 사랑을 재섭은 세상과의 소통을 한 없이 그리워 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기를 바라는 이들은 정류장에서 기약도 없이 만남을 기다리는 재섭의 모습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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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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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KANG ME JU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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