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Vertigo,2018

안정되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시절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못하거나,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또는 사회에 진출해서도 그 길이 그리 튼튼하지 못하거나. 장래가 총망되고 미래가 보장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건강과 재력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고 경제 생활을 하며 미래를 위해 아끼고 절약한다. 그마저도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람들, 이 길의 끝은 과연 행복이 보장되어 있을까 끝없이 반추하는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자신의 맨얼굴을 마주하는 일과 같다.
이 영화 <버티고>는 그런 자신과의 대면을 아주 잘 표현한 영화이다.

도심의 큰 빌딩, 회사 생활을 하지만 계약직이기에 내년 혹은 내후년에도 이 사무실에서 근무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서영(천우희)는 이 와중에 진수(유티오)와 비밀 사내 연애를 하고 있다. 연애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범죄가 아니지만 형편에 맞지 않는다면 그 또한 불안한 삶의 한 징표일 것이다. 하지만 서영의 답답한 삶에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쉼터이고 탈출구일 수 있는 위안이기에 서영은 이 연애를 그럭저럭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엄마의 전화는 퇴근 후의 서영을 더욱 피곤하게 하고 서서히 멀어지는 감정을 느끼는 진수와의 관계는 사무실 외딴 방에 숨게 하고 표정을 어둡게 하며 회식 자리에서도 결코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한편 빌딩 창을 닦는 관우(정재광)은 이런 빌딩 안의 풍경을 관찰하고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해간다. 서영의 불안도, 서영의 불편한 얼굴도 모두.(천우희의 옆얼굴로 가득 채운 영화 포스터를 보면 창 밖에서 창 안을 바라보는 관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인도 힘든 일을 하면서 서영의 힘든 마음을 알고서는 위로를 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관우. 서영과 관우는 과연 창 밖과 창 안의 관계에서 경계 없는 만남을 이룰 수 있을까… 힘든 서영을 위해서 창을 닦던 관우는 창닦기를 이용해서 힘내라는 메시지를 창에 남긴다. 그런 영화 같은 장면을 서영은 창 안에서 바라보고 그것은 그대로 서영의 마음에 와닿는다. 자신만큼 힘들거나 혹은 자신만큼 위태로운 모습으로 일을 하는 그에게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과 이런 풍경은 서영의 마음을 흔드는 또하나의 바람 같은 게 아니었을까.

서영의 엄마와 서영의 남자는 모두 서영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가족도 사랑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사회 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는 미혼 여성의 삶에 위로란 대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영화는 그대로 제시하면서 서영의 직장 생활 모습을 찬찬히 관찰한다. 사무실 풍경이나 회사 회식 모습, 구내 점심 식사 광경, 여직원들의 수다… 등 일반 회사에서라면 일어나는 일상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면서 서영의 불안한 마음과 대비하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드라마처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와중에 서영은 이명 증상에 시달리는데 이런 증상은 아무래도 지금 일상의 모습에서 탈출하지 못하여 듣지 않고 보고싶지 않은 심리 상태를 몸에서 이미 거부 반응으로 일으키는 반작용이 아닐까 추측된다. 병원에서도 이런 증상을 지켜보자며 하는 이야기는 마음을 추스리고 편히 가지라는 것. 그런 말이 치료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서영은 계속해서 이명을 듣고 어지러움증을 겪는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의 서영 역할을 자연스럽게 연기한 천우희는 그동안의 배역을 모두 지우는 듯 도회적인 이미지로 완벽하게 이 불안한 상황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손님>의 미숙이나 <곡성>의 무명, 멀리는 <한공주>의 한공주까지, 천우희의 커다른 눈과 다문 입매무새는 스릴러 영화의 미묘한 분위기를 나타내는데 주효하며 무언가 깊은 사연을 가진 여성의 신비로운 공포를 전달해주는데 톡톡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런 신비와 오묘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일상 생활의 한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혼자의 시간을 갖던 사무실 빈 방에서 성추행을 당하다가 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결국 이렇게까지 되는 참담한 광경을 마주하면서 피 묻은 얼굴을 닦아내려 화장실 거울에서 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서늘한 분위기를 핏기 없는 얼굴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아무래도 이것이 천우희 배우의 진정한 표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솔한 표정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결국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관우와 조우하며 관우와 함께 석양을 바라보는 로프 씬은 영화의 결말을 완성하는 세련된 장치이다. 모든 것을 놓았을 때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 혹은 그래도 한 줄기 끈은 있다는 안심을 영화는 영화적 장치를 이용해서 보여준다. 그 장면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 느낌을 영화 끝까지 천천히 보면서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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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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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빌딩 속에서 답답한 숨을 내쉬며 매일을 견디는 직장인이라면 <버티고>는 일말의 위로를 안길 작품이다. ‘현기증’을 뜻하는 영어 Vertigo와 ‘버틴다’는 우리 말뜻 모두를 내포하는 중의적인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는 흔들리는 지반 위에 서 있는 유약한 존재들을 향한 섬세한 위로를 전한다. 영화는 불안정한 사회적 신분, 답답한 연애, 심란한 가족 사이에서 구를 대로 구르고 지칠 대로 지친 현대인의 심정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다. 특정한 이야기보다는 불안정한 소리와 흔들리는 시야 등 시청각에 집중하며 희망을 잃어가는 주인공의 감정과 심리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내내 우울하던 작품 분위기는 로프공 ‘관우’의 등장 이후 조금씩 변화하고, 비현실적인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서영’과 ‘관우’의 마지막 멜로 신으로 일말의 희망을 안긴다. 위로는 돌연히 찾아오니 결코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라는, 관객을 향한 따뜻한 위로를 품은 작품이다. <러브픽션>(2011)을 연출한 전계수 감독의 신작이다.
2019년 10월 23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