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바람
Sub-zero Wind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어른들이 살아가는 그것과는 동일하지 않다. 모르는 것들 투성이인 채로 이(異)세계를 살아온 아이들은 부모에게 그런 것은 모르고 살아도 된다고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잘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세계대전으로 극한의 상황에 몰려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하던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또한 아이에게 거짓된 세계를 보여주며 희망을 주려하는데, 그럼에도 우린 언젠가는 반드시 그 꿈에서 깨어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영화 영하의 바람은 어린 소녀 영하(권한솔)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그녀의 가족, 그리고 영하의 사촌이자 그녀의 친구인 미진(옥수분)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결국 영하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하의 상태를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다른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봐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편이 이 영화를 보다 다채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인물을 중심으로 볼 필요 없이 돈의 흐름만 따라가면서 보더라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은숙(신동미)은 조카인 미진을 잘 챙겨주는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실상 그 내막은 역시나 돈에 얽힌 관계로 그려지며 이는 영진(박종환)이라는 인물과의 관계 역시도 크게 다를 것 없다. 그들은 모두 돈에 의해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오직 영하와 미진의 관계만이 그것에서 벗어나있다고 볼 수 있다.

영하는 적어도 돈에 그렇게 얽매이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돈이 필요하면 영진에게 손을 벌리면 그만이고 엄마의 그늘 아래에서 어려움 없이 잘 살아온 편이다. 그래서인지 술집 사장(태인호)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자 아주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가져가려한다. 그것이 그녀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돈을 대했던 태도였으며 영진에게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그녀는 드디어 돈의 무서움을 깨닫게 된다.

영하의 가족은 조금만 흔들려도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을 유지한 채로 이어지다 결국 술을 마신 영진의 잘못된 행위에 의해 깨져버리고 된다. 그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은 계속 아슬아슬 위태롭게 보였으며 그렇기에 그것은 마치 한번은 반드시 일어나게 될 일처럼 그려지고 있다. 다만 여기서 은숙은 딸을 위한 선택이 아닌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을 하라고 영하를 설득한다. 결국 그것은 그들의 관계를 파멸로 몰아넣고 영하는 집을 나가게 된다.

영하는 미진과 다시 재회하며 가족과 멀어지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완전한 상실은 아니다. 언제라도 그녀가 원하면 볼 수 있는 관계이기에 그 선만은 유지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숙의 가출은 그 선마저 흔들리게 만들었고 이후 영진마저 떠나버리며 그를 지탱할 수 있는 존재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텅 비어버린 집과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가족의 흔적은 그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미진뿐인데, 그 순간 떠오르는 것은 미진이 영하에게 해준 말이다. 세상은 혼자서 견뎌내야 한다던 그 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은 은숙이 홀로 남겨진 미진에게 해준 말로 그녀는 이 말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말을 고스란히 영하에게 돌려준다. 홀로 남겨진 마지막 영하의 모습은 결국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하게 될 어느 순간의 표정일 수도 있다. 그 상실의 아픔을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린 진정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생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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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아픔을 경험해 본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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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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