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니와 준하
Wanee & Junah , 2001

벌써 2001년 때에 영화하면 고리타분한 냄세가 나고 완성도나 캐스팅에 의해서 보기 싫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배우들은 다르다. 2001년에는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하던 풋풋한 새내기 배우들에서 현재는 충무로에 이 배우들을 빼고는 배우들을 거론하기 힘들정도에 대 탑스타들이 되었다. 누구는 결혼을 해서 벌써 아이가 있는 배우가 있고, 누구는 뮤지컬 배우로서 티켓 파워 1위의 위상을 떨치는 배우가 있다. 김희선, 조승우, 주진모, 최강희 이 4 배우가 얽히고 현실적인 사랑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해주는 세련된 영화이다.
필자는 2001년에 그러니까 월드컵이 있기 1년전에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당연히 그 때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영화를 좋아하던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어느날 새벽인가에 본 듯한 느낌이 있는 영화이다. 그때는 이렇게 좋은 영화라고 못 느겼기 때문에 머리속에 남는 장면이라고 없었겠지라고 생각한다. 이 시절의 김희선은 정말 지금의 수지급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을 가지고 있고 주진모 또한 강인한 이미지가 아닌 꽃미모를 가지고 있어서 신기해 하면서 영화를 시청했다.

위의 사진만 봐도 원빈 소지섭 정도의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는 마치 일본풍 잔잔한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짙은 색감을 보여주면서 흘러간다.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에 보여주는 만화는 몽환적 성격을 더해준다.
너무나도 이쁘게 등장하는 와니(김희선)은 주진모와의 연인 연기를 너무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해서 전성기 때 답지 않은 모습을 보았고, 그의 상대역인 준하(주진모)는 선 굵은 연기만 할 줄 알았던 그의 과하지 않은 연기는 영화를 보는 묘미를 더해준다.영화에서 나오는 대사 한줄 한줄 장면 하나 하나가 커버린 필자의 심금을 울리고 공감가게 했다. 연인 사이의 궁극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더라도 연인은 누군가는 섭섭해 하고 누군가는 오해하는 일이 생긴다는 말이 멤돌았다.

비유적인 테크닉은 암시적이든 명시적이든 비유를 통해서 추상적인 생각을 나타내는 예술적 장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의 대상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면 ‘상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징은 구체적인 사물일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특별할 수 있다.
그리고 민감한 관찰자들에게는 이 특별한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와니와 준하>에서 이러한 상징적 역할을 하는 사물은 역시 쪽지와 둘의 직업이 동화적 성격을 지닌 한 명은 애니메이터, 한 명은 시나리오 작가라는 설정이 주는 상징성이 있다.

영화 <와니와 준하>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한 문장의 선전 문구로 요약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자신의 이야기로 공감하고, 소유할 수 있었다. 첫사랑의 설렘, 그리고 그 사랑에 대처했던 우리들의 미성숙함, 그 미성숙했던 우리에 대한 후회 등, 이 영화는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관객들의 시선몰이에 성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가 내 이야기라고 주장하게 만든 영화 내의 장치는 바로 결말이다.
그동안 우리가 보았던 멜로드라마 속의 첫사랑은 영원한 사랑과 같은 절대성이 있었다. 수많은 멜로드라마 속의 첫사랑은 두 주인공들이 어떠한 장애물이 있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래서 우리는 멜로드라마 속의 첫사랑을 우리 이야기가 아닌 ‘드라마, 영화’의 이야기로 남겼다. 그런 멜로드라마 속 사랑은 숭고하고 위대하지만, ‘우리’의 범주에는 속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