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Take Me Home,2020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태초부터 그러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혈연의 관계에서 시작되고 그 관계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지한 채 살아간다. 물론 아담과 이브의 만남처럼 낯선 남녀의 관계가 없다면 역사는 연속성을 띄지 못한 채 사라졌겠지만, 이 역시도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브의 이야기를 통해 논란의 여지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있다. 어쨌거나 지금 우린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형태를 최선의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믿고 살아갈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하더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도 반드시 존재한다. 영화 담쟁이에서 보여주는 여러 인식의 문제들 또한 그 일부에 해당하는데 이 역시도 어떤 형식으로 발전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성애는 병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 동성결혼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있는 것인지, 혹은 동성애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들이 여러 방면에서 이뤄지고 있으면서도 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불편한 이들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저 싫은 것이 싫을 뿐인 이들에게 이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영화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이 영화는 동성애에 관한 영화라기 보단 오히려 가족과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초반의 몇 장면과 중반부에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제외하곤 동성애에 관한 내용은 잠시 잊어버리게 될 만큼 흥미로운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가족의 형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가족을 꾸리게 되는 상황에서 찾아오는 사회적인 통념의 문제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드러나면서 말이다.
다만 그 중심엔 서로 사랑을 하는 두 여성이 있기에 동성애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대두되고 있다. 선생과 제자로 시작된 김예원(이연)과 정은수(우미화)의 관계는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생략된 채 함께 사는 사이로만 그려진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사이처럼 관계를 이어나간다기보다는 마치 엄마와 딸처럼 챙겨주고 보살핌을 받는 형태로 관계를 형성한다. 이는 동성애에 시선을 빼앗기기보다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집중하기 위함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은수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불편한 몸이 되어버린 은수와 은수를 챙겨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예원의 관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고, 은수의 불안한 심리는 예원과 수민(김보민)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물론 자신의 상황에 대한 첫 번째 위기는 예원과 수민의 도움으로 힘겹게 이겨냈지만, 결국 본인을 좋은 사람이라 소개하는 사회복지사의 등장과 함께 그들의 관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파괴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수민은 보육원으로 끌려가고 예원은 이별을 통보받는다. 그럼에도 예원의 선택에 불만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적인 최선의 길이었으며 그녀가 다시 걸을 수 있게 자신의 몸을 회복한 뒤 수민을 입양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담쟁이의 이야기를 하며 벽을 넘는 순간 거기에 있을 거라던 편지 역시도 그들의 재회를 기약하는 단서가 된다. 하지만 마지막 수민의 모습은 뭔가 아쉬우면서도 먹먹한 느낌만을 남긴다. 그들의 재회를 기대하듯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목욕탕에서 함께 목욕을 마치고 나온 예원이 은수의 손을 잡는 장면은 은수의 거부에 의해 오히려 눈에 띈다. 마치 그들 사이가 평범하지 않음을 드러내려는 것처럼!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있는 장면에 의해 이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무마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장면 역시도 상당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이에 손을 잡고 있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문제인 것일까, 아니면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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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
동성애 영화가 보고 싶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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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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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한제이배우: 우미화, 이연, 김보민장르: 가족, 드라마등급: 15세 이상 관람가시간: 99분개봉: 10월 28일 간단평‘예원’(이연)은 고등학생일 적 기간제 교사 ‘은수’(우미화)에게 반해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이들은 연인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공표하지 않은 채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제사를 위해 딸 ‘수민’(김보민)과 단 둘이 사는 언니의 집에 들른 ‘은수’는 돌아오던 길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자리에서 즉사한 언니와 달리 ‘은수’는 가까스로 목숨만은 구제하지만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고, 혼자 남은 조카까지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인다. <담쟁이>는 이미 안정적으로 기반을 잡은 동성 커플의 소소한 일상으로 시작한다. 평범한 남녀 부부와 다를 바 없이 ‘은수’와 ‘예원’ 사이에는 오랜 기간 함께하며 쌓아온 단단한 신뢰와 유대, 애정이 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성 정체성 혹은 성적 지향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루거나 로맨스 중심이 대부분인 여타 퀴어물과는 구분된다. 메가폰을 잡은 한제이 감독은 퀴어,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중점을 둔다. 세 사람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지만 제도는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러니를 통해 영화는 법적 제도와 사회적 인식의 한계를 꼬집고, 나아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를 촉구한다. 베테랑 연극배우 출신 우연화와 신예배우 이연이 ‘은수’와 ‘예원’ 커플로 분해 기대 이상의 자연스러운 케미를 선보인다. 더불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수민’ 역은 <미쓰백>의 김보민이 맡아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다. 한제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경기도 다양성영화 제작투자 지원작 및 경기 인디시네마 배급 지원작이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다.
2020년 10월 27일 화요일 | 글_이금용 기자 ( geumyong@movis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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