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The Book of Fish,2019
인간은 모두 평등한 세상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고 있다. 적어도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단지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의 허상이 아닌 인간 본연의 이상적인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온 세상은 결코 그것과는 무관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효와 충을 강조하는 유교사상을 뿌리에 두고 살며 모든 인간의 위치를 위아래로 분리시켜버린 채 살아가도록 했다. 물론 그것은 과거에만 얽혀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계급은 존재하고 있다.
정약용이 아닌 정약전의 삶에 초점을 둔 영화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의 특징이 아주 잘 살아있는 작품으로, 그는 여전히 그 특유의 익살스러움 속에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을 집어넣어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낸다. 어쩌면 창대가 분노하는 그 마지막 장면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계를 잘 밟아가다 꼭대기에서 한꺼번에 쏟아낸다. 그래서 가끔은 이야기에 빠져 잠시 다른 세계를 체험하기도 하지만, 결국 절정으로 치닫고 결말로 해소되는 부분은 늘 언제나 그런 식으로 그려진다.
천주교에 대한 문제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결국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마다 나타나는 갈등을 야기하며 그 시대상을 보여준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함축된 의미는 그들을 몹쓸 인간으로 만들며 모두에게 적개심을 품도록 만든다. 다만 그 배경이 흑산도로 옮겨진 탓에 좀 더 쉽게 그 분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으며, 이는 정약전(설경구)이 창대(변요한)를 만나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자와 그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인물의 만남.
하지만 미천한 창대에겐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있고 그가 꿈꾸는 삶은 출세한 양반의 삶, 정약전이 아닌 정약용을 우러러보는 삶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삶으로부터 깨우친 지식보다는 글로 적혀있는 지식을 원한다. 사실상 어부의 삶에 어느 것 하나 쓸모도 없는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서삼경을 익히고자 한다. 천출은 결코 출세를 할 수 없음에도 그는 계속 꿈을 꾼다. 이는 정약전이 꿈꾸는 미래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그 꿈을 이루는 것이다.
출세에 성공한 창대가 바라는 것은 남들 위에 서서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유교사상에서 배운 바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창대는 정약전의 품에서 벗어나 출세에 성공하며 거대한 뜻을 품고 위로 올라가는데 성공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배를 채우는 관리들과 지나친 세금에 굶주리는 백성들뿐이다. 허울뿐인 사상은 그 누구를 설득시키지도 못할 뿐이며 그 누구도 돕지 못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깨달은 그는 자신의 선택을 크게 후회하며 돌아가지만 그곳엔 이미 정약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창대의 말처럼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비해 하찮아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보다 인간의 삶 그 자체에 도움을 주는 책도 없으며 이는 곧 미래를 위한 훌륭한 유산이 되기도 한다. 효를 강조하고 예를 중시하라는 말이 사람들의 배를 불리는 문제마저 해결하는 것은 아니며, 실천하지 않는 것은 결국 아무 쓸모가 없음을 한참 후에야 깨닫게 된다. 창대가 깨닫게 되는 현실의 문제는 결국 글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다. 그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던 사상을 벗겨내는 일만큼이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니.
인간은 모두 평등한 세상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돈에 목숨을 걸며 타인의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이러한 현실은 안타깝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올바른 형태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이 그려낸 그 시대의 모습은 우습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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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정약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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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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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배우: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장르: 시대극등급: 12세 관람가시간: 126분 개봉: 3월 31일 간단평‘정약전’(설경구)은 서학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유배 보내진다. 동생 ‘정약용’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로 꼽힌 그는 멀고 험한 흑산도에서 십수 년을 지내야만 한다. 그는 세간에 관여하는 정치서로 주변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는 대신,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접할 수 있는 각종 해양 생명체를 총괄한 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하기로 한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크지만 여건이 좋지 못했던 섬 청년 ‘창대’(변요한)에게 가르침을 주는 대가로 집필에 필요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받는다. <자산어보>는 <사도>(2015) <동주>(2016) <박열>(2017) 등 숱한 사극으로 그 이야기 솜씨를 이미 증명한 이준익 감독의 신작 시대극이다. 예상처럼, 흑산도로 유배 간 ‘정약전’과 그의 제자가 되는 섬 청년 ‘창대’가 사제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무리 없이 풀어낸다. 영화의 핵심적인 분위기를 책임지는 건 두 사람 사이를 잇는 ‘가거댁’역의 이정은인데, 과하지 않으면서도 능수능란한 연기로 <자산어보>의 밝고 따뜻한 정서를 전담한다. 류승룡, 김의성, 방은진, 조우진 등 깜짝 출연하는 낯익은 얼굴을 새겨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창대’가 스승 ‘정약전’과는 다른 출세의 길을 걷기로 한 뒤에야 가혹한 ‘진짜 현실’을 경험하고, 어떤 한계를 체감하는 동시에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는 후반부의 전개는 그 이야기를 드러내는 방식 면에서 다소 고전적인 감도 있다. 대부분의 장면이 흑백으로 촬영됐는데, 예외적으로 색감을 입혀 연출한 지점이 있는 만큼 그 대목에서 감독이 의도한 바를 곱씹어보는 재미도 있을 듯싶다.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 ( got.park@movis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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