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765,000kV의 거대한 송전탑과 맞서 싸운
김말해 할머니 투쟁의 시작은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국가에 의해 은폐된, 민간인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차별하게 학살당한 사건.
김말해 할머니와 또 다른 김말해'들'은 이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피해 규모도, 희생자 수도 알 수 없는 상황.
한국전쟁 정전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시간은 멈춰있다.
그리고 국가 차원의 유해 발굴을 주도하던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되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조사단을 꾸려 그들을 찾아 나선다.
"직업도, 배경도 다른 우리의 공통된 목표는 오직 하나.
인간을 구성하는 206개의 뼈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국가가 은폐한 진실을 찾아 나선 시민 발굴단의 기록
<206: 사라지지 않는>
THE FIRST TRUTH
제주4.3사건,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국가가 은폐한 또 하나의 사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을 찾아 나서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이 아닌 무차별한 '학살'로 인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왜 죽어야만 했는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작은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기에 유가족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문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은 희생된 유해들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선 시민 발굴단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민간인 학살은 한국전쟁 이전, 일제로부터 독립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일제 치하로부터 독립했지만 그 전부터 남과 북에 주둔해 있던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단 정부가 수립되며 이념 갈등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단 상태는 더욱 고착화되었고 이념의 갈등은 깊어져 1948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건인 제주4.3사건이 발생한다. 1950년 6월, 이념 갈등은 한국전쟁으로 심화되었으며 국가 간의 싸움을 넘어 국가 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이 한반도 전역에 자행되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들의 노력으로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학살 현장 실태조사에 돌입했지만, 1년 뒤인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정부는 한국전쟁유족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유해 발굴을 중단시켰다. 역사 아래 숨죽이고 있던 국민들의 분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마침내 2005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게 된다. 40여 년 만에 민간인 학살 진상 조사와 유해 발굴이 시작되었지만 그마저도 5년 만에 해체되고 만다. 그렇게 2014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시민 발굴단)이 결성되었다. 시민 발굴단의 상당수는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전직 조사관 출신이었으며 대부분 위원회에서 일하던 시절, 진실 규명을 다 하지 못한 채 미완의 과제로 남겨두었던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되기도 했다고. 여기에 유족들과 자원봉사자 등이 자발적으로 합류한 시민 발굴단은 2023년 현재까지도 유해발굴 진행을 하고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시기, 묵묵히 유해발굴을 이어간 그들의 노력으로 지난 2020년에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출범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2023년 올해에도 최소 8곳에 이르는 학살터 발굴을 앞두고 있는 등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은 국가 주도로 감춰진 역사를 다시금 재조명하는 시의적절한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