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과 어른의 이야기.
어릴적 한번쯤은 누구나 읽어봤을법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
동화에서는 계모가 헨젤과 그레텔을 숲속에 버리게 되고,아이들은
숲으로 들어 갈 때 빵을 떨어뜨리지만 그마저도 소용없게 되어 곤경에 처한다.
그러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은 과자집을 발견하고 그 집을 먹기 시작했었고
그 집에 거주하는 노파가 초대하여 축제를 준비하지만 사실 그 노파는 마녀였고
아이들이 살이 찌면 잡아먹으려하는데 그레텔은 마녀를 오븐에 넣어 마녀의 집에서
보석을 가져와 아버지랑 재회를 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를 리메이크하여 잔혹한 동화로 재탄생되었다.
아역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자, 천정명의 흡입력있는 연기가
여러분을 동화속으로 초대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어릴적 떠나간 엄마를 만나기 위해 은수는 떠났는데
그곳에서 은수는 사고로 정신을 잃게 되고,
그곳에서 정신을 잃었던 은수에게 다가온 소녀에게
홀리듯 그녀를 따라 그녀를 비롯한 세아이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처음 도입부 부터 긴장감이 큰 영화여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동화속을 꾸며놓은 듯한 배경과 BGM이 영화를 한껏 긴장시킨다)

집에는 엄마아빠와 세아이가 살고 있다
만복,영희,정순 어딘가가 어색한 이 가족들
아이들의 대사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은수
: 나는 엄마랑 안 친하거든, 너도 어른되면 알아 자기 엄마랑
친한사람도 있고 안그런 사람도 있거든.
만복
:엄마는 좋은건데... 엄마는 좋은거에요.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거에요
막내로 나오는 진지희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연기를 하니깐 정말 인형같더라구요!!

바깥 왕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풍성한 식사, 다락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울음소리, 아이들에게 들은대로 숲을 나가지만 계속 제자리만 맴돌게 되고
어느날 아빠는 메모 한장을 남긴 채 사라지고 아이들은 변명만 늘어 놓는다.
점점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는 은수.
천정명의 눈망울과 순수한 분위기는 이 영화와 참 어울린다!
애정의 결핍이 느껴지는 아이들 그리고 무언가의 경계적인 모습들은
은수를 극도의 불안감으로 이끈다.

가족이란 어떤 것인지, 아이들이란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느끼게 해준다.
집이란 아이들의 보금자리이자 사랑이 가득한 자리라는 생각을 들게한다.
헨젤과 그레텔에서의 집은 아이들의 찾은 보물과도 같았지만 마녀의 집이였던
이 영화에서 비춰지는 '집'이 가지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아이들의 사는 곳은 천국이 아닌 지옥이란 것이다.
아역배우들의 환한 웃음과 손수래에 엉망이 되어버린 인형들의 머리
나쁜 어른들을 하나하나 혼내주는 아이들의 행동들....
하지만 이 아이들의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으니 ...정말
영희의 말대로 너무 천진난만해서 아이들에게 나쁜아이라 할 수 없을 것같다.

<헨젤과 그레텔>은 지금까지의 공포영화와는 다른분위기였기에신선하고 좋았다.
공포적인 분위기지만 많은 교훈을 담고 있어서 모두가 공감하고 볼 수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한참은 많은 대사들이 주위를 맴돈다
그중에 진지희씨가 했던 대사
"우리는 나쁜 애들이 아니예요, 그런데 모두 우리보고 나쁘데요,
우리가 정말 그렇게 나빴나요?"
아이들은 죄가 없다. 모두다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
아이들의 순수성을 헤치고 있는 어른들의 욕심을 다룬 영화
현실의 패러독스. 그리고 어린이들의 놓은 사회의 사각지대의 이야기를 다루니
우리가 영화에서 접하지 못했던 것을 다룬 영화라서 더욱 의미가 새롭게 느껴진다.

아역배우들의 더 아역이 었던 시절을 볼 수 있고,
천정명 주연의 영화를 만끽 할 수 있었던 동화같은 영화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해요 ~
정말 슬픈 영화였어요!
오랜만에 영화답고, 가슴 찡한 영화 한편 땡기신다면 이 영화를 봐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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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아이를 곁에 두고 있는 어른들!
분위기와 영상미를 중요시 하는 영화 마니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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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신명덕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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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정공법을 자랑하고, 진중하면서도 슬프며, 비극적이지만 절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임필성 감독이 “공포스릴러가 아닌 잔혹동화”로 불러달라는 당부를 했는데 이 영화는 진정으로 <장화, 홍련>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 보다 오히려 불가능한 혹은 정체불명의 대상에 접근해 가는 감독의 전작 <남극일기>를 닮아 있으되 좀 더 대중에 다가가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헨젤과 그래텔>은 마녀가 ‘과자의 집’에 잡아놓은 아이들이란 ‘그림형제’의 원안을 비틀어 놓은 듯 보인다. 비밀을 간직한 듯한 세 남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부모, 그리고 이 ‘네버랜드’에 떨어진 순수한 은수(천정명), 그리고 감춰졌던 비밀까지.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김민숙 작가와 임필성 감독이 직조해 낸 이 잔혹 동화의 세계는 아슬아슬하게 대한민국의 동시대성을 유지하면서 동화적인 그로테스크함을 창조적으로 시각화해 낸다. 세트와 미술의 공을 들인 흔적은 역력하며 또한 효과적이다. 절제와 형식미가 그럴싸하게 통제된 음악과 촬영 또한 무시 못할 임필성 감독의 연출력을 느끼게 한다. 감독의 전작 <남극일기>가 도달 불능점에 다다를수록 깨닫게 되는 최도형(송강호)의 아버지되기의 고행과 민재(유지태)의 탈소년의 과정이었다면 <헨젤과 그래텔>은 좀 더 직접적으로 아이와 어른의 대비시킨다. <오멘>의 데미안을 방불케 하는 첫째 만복이의 능력이 차근차근 전시될 때까지만 해도 증오어린 어린 악마들을 타자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뭉스러운 변집사(박희순)가 등장하고 그 정체를 드러낼 무렵부터 이 소년성과 어른들로 대비되는 세속의 세계에 대한 대비는 뚜렷해진다. 전작에서 네티즌들의 폭탄세례를 감내해야 했던 임필성 감독이 대중를 너무 의식한 것이 아니냐 싶을 정도로 우직하게. 특히 아이들이 지닌 비밀의 연원이 밝혀지는 후반부 플래쉬백은 정직하다 못해 보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파놓을 정도로 직설적이라 몽환적인 그로테스크함으로 가득 찼던 중반부와 대비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순수함, 그 이면에 도사린 공포와 세속에의 대비라는 주제를 구현하는 방식은 세련되고 정교하나 어딘지 모르게 갑갑하다. 그건 빠져나갈 수 없는 숲의 미로나 깔끔하게 정돈된 ‘즐거운 아이들의 집’ 세트 등 배경이나 외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감독은 은수가 떨어진 이 지옥이란 공간을 버텨나가는 시간을 친절하게 일일 단위로 구분해 놓았다. 그러나 천정명의 기존 이미지와 연기 탓도 있겠지만 너무나도 순수한 어른인 은수에게 도무지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호러와 스릴러의 기법을 과도하지 않게 차용, 은수가 아이들의 비밀을 캐내는 중반부까지 극의 긴장을 주기는 하나 대중 영화의 호흡이라기에는 너무나 절제되어 있다. 임필성 감독의 작가적 야심과 대중성 사이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샤이닝>이 극도의 공포를 전달하는 지점은 제대로 미쳐가는 잭 토랜스(잭 니콜슨)의 광기다. 하지만 <헨젤과 그래텔>의 천정명, 은수는 주제의 대비를 위해서인지 너무나도 선하고 아이들의 위하는 인물로 묘사되어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 투입된 인물이 <세븐데이즈>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박희순. 1인 2역으로 분해 종횡무진하고 있는 박희순은 영화 데뷔 초반으로 돌아간 듯 한 신들린 악역 연기를 선보인다. 이 작품이 연말 관객들을 끌어 모은다면 일등 공신은 역시 박희순이다. 한편 천진난만함과 분노, 슬픔과 연민을 동시에 자아내는 세 아역의 연기, 특히 클라이맥스의 눈물 연기는 ‘잔혹동화’에서 눈물을 훔칠 기회를 열어 준다. 구구절절이 아이들이 납득할 만한 순수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는 주제를 설파하는 <헨젤과 그레텔>의 또 다른 미덕은 공포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징벌과 구원, 속죄의 정서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건 아이들은 물론 주인공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여 버리는 중인 한국 대중영화에 있어 소중한 미덕이다. 환상이든 현실이든 죽지 않고 그들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부디 소년들을 사랑하는 임필성 감독이 이 작품으로 <남극일기>의 악몽을 깨끗이 씻길 바라마지 않는다.
2007년 12월 21일 금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 (wood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