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
2008

본격 음주조장 코미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술이요. 직장도 변변치 않고 회사 나가도 구박 당하기 일수이지만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 술이 있어 오늘도, 내일도, 낼 모레도 평화로운 32살 골드 미스 아닌 옐로우 미스 정유진(예지원). ‘발광머리 앤의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그녀는 전체 회원수 고작 4명의 팬클럽까지 있는 자칭 인기 인터넷 작가이기도 합니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지만 만만한 10년 지기 철진(탁재훈)과 화끈한 동거인 현주(김현숙)가 있어 외롭지는 않습니다.
이제 인생의 쓴맛, 연애의 쉰맛, 그리고 술의 단맛까지 다 알아버린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 증상이 시도 때도 없이 매번 나타난다는 것인데요. 그러던 어느 날 기분이 좋아도 술, 나빠도 술, 마셨다 하면 필름 끊기고 뺑뺑이(?) 돌 때까지 달리던 그녀가 제대로 사고 칩니다! 평소 불만 많던 직장 상사에게 필름 끊겨 정신 놓은 상태로 대들다 회사에서도 잘려버린 것이죠. 결국 백수가 된 그녀는 취직해 자리를 비우게 된 철진 대신 그의 커피숍에 빌 붙기로 합니다.

절친 철진과의 유쾌한 에피소드
만만한 철진의 커피숍에서 열심히 일해보려 했으나 하필이면 과 동아리 정모가 있어 또 한번 거나하게 마련된 술자리! 다음날 아침에 눈 떠 보니, 아뿔사! 이번엔 대형사고다! 알몸으로 호텔에서, 게다가 하룻밤 카드값만 2,427,352원이라니!! 유진은 다른 건 차치하고 카드값을 돌려받기 위해 용의자를 수소문 하던 중에 해외에서 컴백한 잘나가는 첫사랑을 만나게 되고, 10년 동안 같이 마신 술만 5천 병, 같이 탄 뺑뺑이만 5만 번이라는 삼삼한 동네 친구 철진도 슬슬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똥개가 똥을 끊는 거 보다 그녀가 술을 끊는 게 더 어렵다는데, 과연 32살 옐로우 미스 유진은 더 이상의 사고 없이 쌈박한 연애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시원한 맥주 같이 아찔한 그녀의 취중 코믹 로맨스가 시작됩니다!

동명의 명작과는 다른 한국 코미디 <당신이 잠든 사이에>
영화의 제목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보고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텐데요, 결코 그 영화를 떠올리신다면 바로 지워주시길 바랍니다. 오해와 망각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근사한 로맨스를 애당초 기대하게 될테니 말이죠. 그 영화는 꽤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명작 중에 손꼽히는 작품이죠. 그 영화의 같은 이름을 따왔다는 것은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어떤 의도가 숨어있었을까요?
술로 인해 막 달리고 필름을 끊어버리는 컨셉으로 취중 코미디 장르를 개척한 한국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부제가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쓰여져있는 이 부제에는 당신이 취한 사이에라는 이름인데요. 아무래도 취중 상태를 잠든 상태로 대체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영화는 어찌되었든 취중 상태를 중점으로 그리고 있는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영화를 촬영하면서 예지원의 취중 연기가 가히 빛을 발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탁재훈과 예지원의 기대 이상의 코믹 조합
술을 주요 소재로 한 이 코믹극에서 예지원은 물론이고 예지원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탁재훈과의 조합이 기대되었습니다. 2008년 당시 떠오르는 두 코믹 배우들이 어떤 조합을 이뤄낼 수 있었을지에 대한 기대는 어찌보면 당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각종 에피소드들과 일종의 소란들이 무조건적인 흥미만을 추구하지는 않죠.
필름이 끊어진 그 날 밤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누구와 잤는지와 같은 일을 쫓는 과정은 물론 흥미만을 추구하고 있는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허나 중간중간 등장하는 이 두 배우를 통한 일종의 취중진담은 두 주인공의 삶에 대해 조금은 깊이 있게 들어가는 점에서 반가운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발생하는 한가지 문제점은 이 둘의 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물들의 속사포 대사로도, 여러 개그맨들의 카메오 등장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추구하는 부분과 취중진담을 통해 추구하는 것들의 괴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갑자기:죽음의 숲>의 김정민 감독의 코믹극
영화 <자카르타>와 <튜브>의 조감독으로 영화에 대한 경력을 차츰 쌓아온 김정민 감독이 HD영화 프로젝트 <어느날 갑자기:죽음의 숲>을 연출했으며 이어서 2008년 탁재훈과 예지원이라는 충무로 흥행 보증 수표와도 같은 두 배우를 내세워 코믹극에 도전했습니다.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 촬영 도중 감독과 여배우가 교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의 제작을 담당했던 KM컬쳐에서 자신의 아이템을 준비했던 김정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게 되었고, 예지원이 유진역으로 등장하면서 해로 촬영에 들어갔으나 기존에 김정민 감독이 추구했던 것과는 달랐는지 영화 내내 갈길을 잃은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지원 역시 기존에 어떤 여배우의 자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뒤늦게 합류해 김정민감독과 여배우의 호흡이 그다지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전형적이지면 어쩔 수 없는 아쉬운 결말의 선택
앞서 말했듯이 술로 매개로 한 이 코믹극은 로맨틱 코미디의 성향을 강하게 띄고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여성이 의도를 했던 잠자리든 그렇지 않았든 일종의 취중진담을 통해 진실된 사랑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죠. 그러나 그의 절친인 철진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 이상 여자로 느껴지지 않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불편하다싶을 정도로 진실된 사랑은 바로 옆에서 친구로 지켜주고 있는 철진이 아니냐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죠.
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가장 진부하고 전형적인 이 결말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영화 내내 술로 인해 망가지고, 하룻밤을 보내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난 뒤, 진실된 사라을 찾는다는 것이 상당히 이질적인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김현숙과 같은 깊은 내공의 연기력을 가진 조연들의 힘으로 영화는 코믹을 충분히 끌어냈음에도 지나치게 다른 길을 강요하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