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겐 ‘그 사람’을 향해 겨눠진 총구보다 무겁고 날카로운 건 없다
<26년>은 그 때 느낌이 나는 색채의 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됩니다.
미진(한혜진)의 엄마는 딸의 이름을 짓다가 창문을 뚫은 총알에 맞아 죽습니다.

정혁(임슬옹)의 누나는 계엄군을 피하다 죽습니다.
이때 누나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장기에 충격…
진배(진구)는 아빠의 싸늘한 시체 앞에서 통곡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만들었는데요,
비극적 분위기가 잘 전달됩니다.
원작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는다


강풀의 이런 노력 덕분에 결국 영화화 되어
또 다시 그 날의 아픔을 간접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케릭터에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원작에서의 진배는 거칠고 냉철한 무서운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까불거리지만 속정이 깊은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
미진의 절규만큼이나 아픈 총성소리가 귓전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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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봤던 안봤던 추천! 대한민국 이 시대 사람이라면 무조건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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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윤화영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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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까지 이슈화가 될 영화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연재 당시 1일 조회수 200만을 기록한 강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긴 하지만. ‘그 놈 암살’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로 ‘뜨거운 감자’가 될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8년 추진 중이던 영화제작이 돌연 중단되고,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각종 ‘카더라’식 통신이 붙으면서 관심은 점점 증폭됐다. 좌초 위기에 놓였던 영화화 작업이 다시 재개된 건, 올해 초다. 정지영 김제동 공지영 이승환 등 유명인들이 제작비를 투척하면서 영화를 향한 사회적 목소리가 커졌다. 결정적으로 1만 5,000여명의 힘이 ‘제작두레’라는 이름으로 보태지면서 이 영화는 단순한 영화 그 이상의 의미를 입게 됐다. 태생적으로나 과정적으로나 잘 만들어져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많아져 버린 영화, 잘 만들어지길 바라게 되는 영화. <26년> 얘기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어떻게 만들어도 관객의 만족을 100% 충족시키기 어려운 강풀 원작의 영화는, 동시에 어떻게 만들어도 비판하기 쉽지 않은 영화가 돼 버렸다. 동거할 수 없는 두 가지 태도가 기이하게 뒤섞인 <26년>은 일단, ‘과거를 기억하자’는 소기의 목적은 이룬다. 1980년 5월의 ‘그 날’, 정혁(임슬옹)의 누나가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내장을 쏟아내며 쓰러질 때, ‘그 날’ 싸늘한 주검이 된 남편 앞에서 진배(진구)의 엄마가 오금을 저릴 때, ‘그 날’ 어머니를 잃은 미진(한혜진)이 그 사람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 때, ‘그 날’ 그 현장에서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야 했던 김갑세(이경영)가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 마음에서 거센 소용돌이가 인다. 분노가 솟구쳤다, 한숨이 새나오다, 안타까움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26년>은 공포, 절망, 희망, 분노, 안타까움으로 관객을 끊임없이 밀어 넣는 영화다. 남은 건, 영화 자체의 완성도다. <26년>의 완성도는 영화가 지닌 선의의 의도를 모두 감당하기엔 다소 벅차 보인다. <26년>은 강풀의 원작 만화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다. 강풀의 원작은 엄청난 영화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웹툰의 영화화가 결정됐을 때 원작 팬들이 우려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2시간 안팎의 시간 안에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우려는 우려에만 그치지 않는다. 방대한 에피소드를 축약하는 과정에서 개연성이 훼손되고, 인물들의 행동(진배 대신 감옥에 갇힌 조직폭력배 두목이 왜 그리 쉽게 진배를 이해하는지, 정혁이 왜 계속 마음을 뒤바꾸는지, 계엄군 동료였던 김갑세와 마상열이 왜 다른 길을 걷게 됐는지 등)이 충분한 당위를 획득하지 못한 채 비실거린다. 유족들 사이에 형성되리라 기대했던 강한 연대도, 시간에 쫓겨 흐지부지된 인상이다. 그렇다면, <26년>은 영화적으로 실망만 안기는 작품일까. ‘강풀과 제작두레에 참여한 시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듯한 혐의’가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두의 기대를 깡그리 배반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5.18을 그린 작품은 많았다. <꽃잎>은 어린 소녀를 통해 5.18 피해자들의 상처를 되돌아 봤다. <박하사탕>은 계엄군이었던 주인공이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빌어 가해자들의 고통을 살폈다. <오래된 정원>은 5.18을 외면했던 사람들의 부채의식을, <화려한 휴가>는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에 우연히 휘말리게 된 시민군들을 정면 응시했다. 하지만 5.18의 근원인 ‘그 사람’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영화는 이제껏 없었다. <26년>은 아픔의 원인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영화다. 상처를 애도하기 이전에 치료부터 하자는 영화다.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 없이는, 아무리 증상을 어르고 달래도 한계가 있다. 아직도 ‘그 사람’은 그날에 대해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이건 웬만한 치료제로는 치유하지 못할 악성종양이다. <26년>은 악성종양에 적극 맞서려는 의지가 담긴 각성제다. 각성제의 효능은 관객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겠지만 말이다.
2012년 12월 1일 토요일 | 글_정시우 기자 (siwoorain@mov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