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
MANSHIN: Ten Thousand Spirits, 2013
이 영화는 만신(무당의 높임말) 김금화씨가 자신의 일생을 썼던 ‘비단꽃 넘세’를 원작으로 해서 소녀 시절 역 넘세는 김새론, 청년시절에 새만신 역은 류현경 그리고 70년대의 만신은 문소리가 맡았다. 시대별 이야기를 이어주는 영화적 요소에 사이사이 김금화씨의 인터뷰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이 섞이는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더해지며 영화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혼합장르로 탄생했다. 물론 그 중심인물은 김금화씨이고 영화의 구성 또한 그녀의 전기적 진술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영화 이야기에 앞서 근대화와 현대화를 표방한 서구 문물 그리고 서구 종교 우월주의 교육에 휩싸였던 현재의 우리와 그 문화의 끈으로 인해 편견의 시각을 가지고 있을 우리의 시선에 대한 고찰하고자 한다. 한국 근대사에서 급속하게 유입된 이분법적인 시각이 강한 서구 역사와 그 역사의 주류에서 항상 배타적인 속성을 지닌 기독교적 시각으로는 절대로 한국 자생의 민속신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인의 확고한 종교적 신념으로 우리 문화의 일부이자 근간이 된 민속신앙을 그 단점을 부각시켜 ‘미신’이라 폄하할 생각이 있다면 정중히 이 영화에 대해 시청하지 말 것을 권한다. 아울러 4대 종교가 큰 갈등 없이 공존하고 있는 21세기 종교 다원주의 사회의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자부심을 가지며 또한 우리 민족 근간에 흐르는 신명나는 잔치와 유흥의 바탕에는 한국의 특수한 한(限)의 역사적 현실이 녹아 있다. 또한 우리네 선조들은 모두 그 한의 울분을 민속 신앙을 통해, 언제든 부르면 달려오는 무당들을 통해 위로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신(神)을 만나다
‘넘세’가 최초의 접신 장면은 부엌에서 시작된다. 온통 무속의 상징들로 가득한 화면들. 그러나 제한된 삶의 여정 속에서 한 인간의 역사에 늘 존재하는 신비의 대상인 신(神)은 그녀를 부른다. 신을 만나는 과정은 이 영화에서처럼 아니면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에서처럼 동일한 과정을 치룬다. 그 신이 어떤 신이든 신이 늘 찾아온다는 점이다. 그렇게 신은 어린 넘세에게 전이되어 들었다. 그 때부터 넘세의 인생은 달라진다.
어떤 무속인 이든지 접신자이든지 신이 자신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면 치러야 하는 의례가 있다. 그것은 정식으로 신의 사람이 되는 예식을 치루는 것이다. 서구의 종교들처럼 장엄하고 그네들 기준에 성스러운 예식을 치루지 않더라도 무당은 신을 받아들이고 그야말로 신통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녀의 삶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 되고 넘세처럼 만신이 되는 경우에는 신의 말인 공수를 받아 자신의 운명을 알아버린다.
굿! 그 신명나는 한풀이 마당극 속으로
영화는 색체 가득한 의상과 그림, 그리고 타악기 위주의 신명나는 굿판의 장소로 우리를 데려간다. 때론 익살스러운 마당놀이 같은 연극적 요소와 몇 일 계속되는 종합 예술 마당으로 굿의 주변 인물들을 참여 시킨다. 그래서 굿 자체는 많은 의미를 지닌다. 공동체가 함께 한 굿마당은 분명 축제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억압당하던 민초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삶의 곤궁함과 슬픔과 비탄에 빠진 이들에게 굿과 만신(신의 대리자로서)은 분명 회한의 카타르시스를 전해 주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 현장으로 우리를 빠르게 데려가서 느끼게 해준다.
비단길 vs 부평초
그녀의 삶은 그녀의 이름처럼 비단길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 파란만장한 한반도의 역사이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평초 같이 떠돌았던 김금화의 인생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이어진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김금화의 인생이 의미하는 바를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부평초 같은 삶에서 그녀를 영웅처럼 떠받들거나 위대한 인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단, 그녀는 우리네 평범한 부모들이 살아냈던 그 삶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실이 위대하고 그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진실을 담아내기에 그 자체로 위대해 지는 것이다. 한국이란 나라가 아이러니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인생도 참으로 아이러니와 우연과 치열한 삶 자체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이 우릴 갈라놓고 소외시키는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녀의 삶에서 분리되었던 모든 인물 들이 평상 마루에 말없이 누워 있는 넘세와 모두가 다시 조우하는 장면이다. 옳다! 처음부터 보여주려 했던 상징적 이미지는 분리되어 흐트러진 삶, 소외된 삶 자체에서 오는 분열로부터 하나로 통합되는 장면이 한 인간의 삶의 완성일 것이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통합을 뜻하며 ‘엔딩클레딧’을 올린다. 그러나 답은 없다! 어차피 마지막에서 얻는 그 찡한 그 무엇은 모두가 다를 테니까. 그러나 한 가지만 생각했음 하는 바람이다. 무엇이 우릴 갈라놓고 소외시키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미 여러분은 삶의 해답을 찾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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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의 삶의 여정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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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파코스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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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은 찰기 있는 스토리 위에 하나하나 정성들여 무친 이미지, 빨간 색감이 지배하는 비빔밥 같은 영화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다채로운 색에 놀라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애니메이션을 쓱쓱 비빈 화려한 영상에 또 한 번 놀란다. 영화는 만신 김금화의 굴곡진 인생사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쉬이 여겼던 무속신앙의 맛과 멋을 영롱한 놋그릇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세 여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했지만 극중에서 따로 돌지 않는 이유 역시 전혀 다른 시공간을 조물조물 잘 버무려 배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찬경 감독은 다큐멘터리에 판타지를 부여해 영화와 만신 김금화, 즉 현실과 비현실의 매개체인 영화와 신과 인간의 매개체인 만신 김금화를 병립시키며 ‘영화를 만드는 것은 굿을 하는 것과 같다’는 공식을 세운다. 이 공식은 장면 곳곳에 스며들어 무속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데 일조한다. 특히 공식의 근간을 드러내는 쇠걸립 엔딩 신은 배우와 제작진, 실제 인물이 함께 출연하며 판타지와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인상적으로 포착한다.
2014년 2월 27일 목요일 | 글_조은정 기자 (choeunjung@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