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보이
My Boy, 2013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보는 사람의 환경이나 관점에 따라 세상은 아름답게 보일수도 있고,한없이 어둡고 비열하게 보여질수도 있다.서로 다른 외국인의 감성으로 바라본 양면의 도시 <모차르트 타운>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기대를 받고있는 '전규환'감독의 타운 시리즈 첫 작품이었다.
데뷔와 함께 도쿄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주목받게 되고 이후,2009년에는 타운 시리즈 2탄 <애니멀 타운>, 2010년 <댄스 타운>까지 전규환 감독의 '타운 3부작'을 완성하자 대가의 역량을 지녔다며 무명에 가까운 그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아시아를 이끌어갈 차세대 감독으로 꼽히는 그가 데뷔작 <모차르트 타운>이전에 단편영화 한편 찍어 본일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타고난 재능이 어디까지 인가 놀라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파격을 거부하는 전규환 감독의 변화
언제나 평범 그 이상의 특별함을 추구하는 전규환 감독의 독특한 영상구현은 아동 존엄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마이 보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과다한 신체노출과 살제정사의 논란을 부르며 영상물 등급위원회로 부터 '제한상영가'를 수차례 받았던 감독의 영화라고 믿기지않을 만큼 <마이 보이>는 파격이란 단어를 거부하고,장르의 변주와 문법의 변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슬픔을 억누르는 방법을 보여주려 한다.
전규환 감독의 6번째 장편영화 <마이 보이>에서는 무명배우들과 함께했던 전작 들과는 달리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차인표','이태란'을 등장시켜 대중들에게 보다 빠른 전달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고,인터넷상 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드러머 이석철은 동생의 죽음을 지켜볼수밖에 없는 형 이천 역할로 연기 경험이 전무한 그의 감성을 폭발시키는 감독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한다.동생 유천(오즐)의 죽음에 원인제공을 한 형 이천(이석철)이 보여주는 슬픈 감정은 드럼을 치면서 승화 시키기도 하지만,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광기어린 감정표현은 연기 경험이 전혀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과 배려
엄마(이태란)는 항상 슬프다.일을 하면서도 머리를 깍고 있는 이천(이석철)을 바라보면서도 언제나 그는 슬픔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외진 골목길의 한쪽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술을 들이키는가 하면,경찰관의 음주단속도 두려워하지 않고 차안에서도 여지없이 술 한병을 비워내곤 한다.불의의 사고고 식물인간이 되있는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이 어디 술로 달래질수 있겠는가..하지만 엄마는 억누르고 살아야만 하는 자신의 감정을 술의 힘을 빌려 표출하려 한다.
자신때문에 동생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자책감은 엄마의 슬픔 못지않게 이천의 여린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위로 해준다던가 아픔을 함께하며 서로를 보듬어 줄수 있는 여유조차 없고,그저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갈뿐이다.
위로 해주고 치유해줄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한 엄마와 이천에게, 고인이 되신 아빠의 친구 차인표는 태란의 힘겨움을 같이해주고 때로는 술친구가 되주면서 그의 아픔을 위로 하려한다.용돈이 필요한 이천에게 도움이 되어주는가 하면,도자기를 빚는 방법을 가르켜주며 친아빠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친구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친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목적없는 위로와 사랑을 베풀지만 그런 행위들 조차 인표의 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결코 반갑지 않은 과잉친절 일수밖에 없다.
아픔을 위로한다는 이유로 관계를 발전시키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인간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숱하게 보아왔던 설정이고,실제 극도의 불안감은 예기치 않는 사랑의 감정을 유발 시키기도 한다.하지만 전규환 감독은 태란과 인표의 감정 따위는 철저히 무시하며 가족의 슬픔을 다루는데만 열중하고,그저 인표의 배려가 태란과 이천의 아픔을 상쇄 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만족스러워 한다.
슬픔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
뇌사상태에 빠진 유천(오즐)과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이천은 동생 유천이 타던 휠체어를 끌고 가출하게 되고,동생의 분신과도 같은 휠체어를 둘러싼 여러가지 사건들은 이천의 아픔을 그대로 전달해주기도 한다.뼈를 깍는 고통과도 비유되는 태란의 아픔은 아직 살아 숨쉬는 유천을 보내주어야만 하는 선택을 하게 하며 더더욱 힘들게 한다.
작위적인 설정을 추가 하지 않고도 가족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이들의 아픔은 고스란히 전달되어 자제할수 없는 슬픔을 만들어낸다.드러내지 않고 있던 태란과 이천의 감정선은 유천이 산소마스크를 떼는 날,주체할수 없는 감정의 진폭을 보여주며 절규하고,이천은 드럼을 치며 내면의 감정을 분출하려 한다.
참을수 없지만 참고 살아야만 하고,아프지만 견뎌내야만 했던 이들이다.감정을 표현하는데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관념들은 극도의 슬픔마저 인내하라 하고, 자제하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라 한다.미치도록 울고싶고 오열하며 통한의 눈물을 쏟아낼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은 유천의 죽음과 함께 그대로 표출 되어지고,우리는 태란과 함께 여과되지 않은 슬픔을 함께 할수있게 된다.
누군가는 태란의 아픔을 보며 눈물짓고,누군가는 이천의 감정을 이해하려 그의 행동들을 주시하며 바라본다.이해할수 없는 어린이의 감성은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곤 하지만, 아픔의 파동은 어른들의 그것보다 더한 아픔과 슬픔을 동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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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울리는 가족영화로 진한감동을 선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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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KANG ME JU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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