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God's Eye View, 2013

종교 그리고 인간의 욕망
우선 이 영화를 논하기 전에 반달모양의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좌우로 하여 태동한 인류의 3대 종교의 성격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자 합니다. 유목민이 주축이었던 그들의 조상신은 점점 강대한 부족신으로 그리고 왕정을 지나 한 민족 신앙으로 발전한 종교는 여러 민족을 아우르며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 정치, 문화, 그리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바탕의 흐름으로 종교를 가졌는데 그 종교가 지금의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원뿌리인 유대교, 그리고 현재 많은 민족성에 따라 분파를 지닌 이슬람교로 나뉩니다.
그런데 그들의 경전에 반영된 가장 중요한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떠도는 유목민적인 특성과 물이 부족한 척박한 땅, 그리고 수많은 전쟁을 통해 길러진 부족과 민족적 배타성이 고스란히 경전에 반영되어 현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배타성’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유대교의 선민의식이 그렇고. 이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알라 외엔 다른 신이 없다!” 라는 모토가 그렇고.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친 종교인 기독교의 10계명 중 제 1계명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종교가 지닌 배타성은 바로 인간이 지닌 안전욕구, 제 1욕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선교 - 과연 누구를 위해 길을 나서는가?
조금 오래된 영화이지만 기독교인들이 선교에 대해서 논의할 때, 가장 많이 보고 포럼을 하는 영화는 1986년 롤랑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Mission)”입니다. 과연 영화 미션의 어떤 부분이 기독교인들의 선교관을 건드릴까요? 그건 바로 미션의 본질인 하느님이 예수를 세상에 파견한 것처럼 너희도 세상에 가서 세례를 주고 예수가 그랬듯이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는 본래 의미가 역사적 현실에 고스란히 녹아서 마침내는 그리스도교 미션의 고질적인 토착화의 문제까지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션에서 보여주는 선교사들의 토착화는 이식된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그들과 동화되는 것입니다. 허나 이 영화 시선에서 이슬람 반군이 활동하는 이스마르로(가상공화국) 선교활동을 떠난 이들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이미 샘물교회 사건으로 불거진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의 전형적인 선교활동의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선교에 대한 문제점의 소개나 고발의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인간 군상에 대한 장면적 묘사이며 나아가 그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가장 숭고한 인간성의 표현인 희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언어로 순교라고도 하구요.
신의 침묵
17세기 동방의 가장 마지막 나라이자 섬나라인 일본에 서구 선교사들이 몰려 들었답니다. 물론 그들은 익히 열강이라는 나라들에서 그리고 각 수도회의 이름을 달고 선교의 열망에 휩싸였습니다. 초기에는 호의적인 정치세력은 마치 수순처럼 쇄국정책을 피기 시작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합니다.
그 실제 이야기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소설은 바로 엔도 슈사쿠라는 가톨릭 작가의 소설 ‘침묵’입니다. 한국에는 이미 소설과 연극으로 소개되어 고전이 되어 버린 이여기에 집중해 봅니다. 1세기 바티칸 언덕에서 거꾸로 십자가 형에 처해진 베드로의 모습처럼 소설 침묵의 로드리고 신부도 기꺼이 죽음을 각오하고 박해의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그 현장에서 그가 체험한 것은 신의 지리한 침묵입니다. 예수의 초상화를 밝으며 배교하라는 장면! 바로 이 영화에서는 성경을 칼로 난도질 하라는 지시와 상통합니다. 배교를 강요당하고 그 배교와 목숨을 견주라는 치욕적인 상황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 조요한(오광록 분)은 12년 전의 자신이 성경을 칼로 베면서 배교했었던 치욕과 다시 만나고 이를 거절합니다.
그는 형장으로 사라지면서 목사를 포함한 나머지 8명에게 순교보다 더 거룩한 배교를 권유합니다. 여기서 신의 침묵은 신의 존재여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의 침묵 자체가 바로 인간이 가장 숭고하게 받들어야 하는 자신의 양심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은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는 본능적 시스템을 생각과 이념을 통해 구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은 빛과 그림자의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이성적이면서도 그 이념화된 생각의 노예가 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 것의 단점이 오늘날 종교에서 드러나는 이념화된 배타성이지만......
9명의 사람들 - 과거와 현재의 상징
피랍된 9명 중 통역 선교사로서 마지막 신념을 지킨 조요한은 그 자체로 자신을 희생하는 자, 예수의 상징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인 대속(희생제물)으로서 십자가 처형을 달게 받은 예수, 이 후 역사에서 자신을 바쳐 세상과 사람을 구한 수많은 이들이 예수의 길을 따라갑니다.
예수가 먹보요 술꾼으로 불렸듯이 조요한 또한 세속적이고 나약한 인간으로 비쳐집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스승 예수를 부정하고 살아남습니다. 나약한 인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는 기독교의 또 다른 경전에서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다가 예수를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장렬하게 순교합니다.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립니다.조요한도 거꾸로 매달립니다.
나약한 인간이 신체험을 통해 나약함을 바로 딛고 일어섭니다. 그런 조요한 곁에 목사 구민영(남동하 분)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죽음을 무릅쓰고 순교를 자청하는 목자다운 역할로 나약함에서 완성으로 가는 조요한과는 다른 인물로 나옵니다. 그는 전형적인 종교심을 지녔습니다. 깨지지 않는 그런 속성의. 물론 마지막에서 그의 신념도 역시 허물어지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틀에 박힌 인물로서 그려져 별로 호감을 가질수 없었습니다.
나머지 인물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인물들입니다. 종교라는 굴레에 있지만 전혀 종교가 가리키는 인간성 완성에 못 미치는 사람들. 그들이 만나 누군가를 개종시키거나 호교 활동을 하고 나아가 봉사활동을 한다는 자체가 조금은 어불성설이라고도 느껴집니다. 그 중에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인간 주체성의 회복의 상징이 된 송권사(김민경 분)라는 인물에 호감이 갑니다. 그리고 지금은 작고하신 분이지만 이중적 인간성의 전형을 보여준 유장로를 연기하신 고 박용식님의 연기는 박수를 보낼 만 합니다.
연출의 힘 - 이장호의 시선
한국 영화사에서 사회적인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를 많이 연출한 이장호 감독은 <바람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바보선언> 등의 영화를 통해 일찍부터 극도의 상징성을 이용하여 사회 밑바닥 삶을 사는 이들을 묘사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상업성을 담보하는 영화보다 작자주의적 연출과 직설적 장면으로 이 시대의 어둠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관객은 그런 그의 작품에 박수를 쳤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배창호, 박광수, 장선우, 신승수와 같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 후의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다는 평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95년 <바보선언>의 속편겪인 <천재선언>을 끝으로 기나긴 휴지기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오랜만에 돌아와 내놓은 <시선>은 여려모로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선이란 영화에는 그의 오랜 휴지기에도 사라지지 않는 리얼리즘적 시선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선교사 조요한이 감금된 곳에서 자신의 바닥과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들, 배교하던 그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그는 신체험을 합니다. 감독의 시선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이 그를 따라갑니다. 탁월한 리얼리즘적 표현이라고 여깁니다. 또한 감독은 진정한 종교로서의 토착화의 장면을 영화 중에 삽입하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습니다. 반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고 어울어지는 장면을 옮겨 놓습니다. 그리고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처럼 하느님의 시선(God's Eye View)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