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10 Minutes, 2013
- 10분! 그 정체된 시간
영화 ‘10분’은 직장을 다녀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아니, 직장을 다니지 않았더라도 늘 어떤 불안에 갇혀 있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분노할 수 있는 스토리다. 영화는 직장인들의 세계를 아주 치밀하게 보여준다. 감독의 경험이 담겨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적은 것이라고 하는데, 직접 겪어서 그런지 생생하다 못해 바로 앞에 인물들이 있는 것 같다. 또 그래서인지 호찬을 향한 동정의 마음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 속의 호찬은 우리이고, 우리는 모두 호찬이다. 사회 초년생을 이용해 먹는 현실의 직장 체계는 꾸준히 또 다른 호찬을 만들어 낼 것이며, 그 속에 발악하여 뭔가를 하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여튼 우리가 호찬을 아쉬워하면서도 응원하는 것은 현실적 디테일이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0분의 의미는 영화 말미에 나온다. 마지막 장면에 부장은 회사를 관두려는 호찬을 사무실로 불러 앞의 상황과 같은 선택을 하게 한다. 다른 것은 앞의 선택이 일주일 이었다면 두 번째 선택은 10분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민방위 훈련 벨이 울리며 사람들은 맞춰진 순서에 따라 훈련을 실시한다. 의자에 숨고 서류들을 내리고 벨이 사라질 때까지 대기한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호찬이 앞으로 선택할 10분에 대한 암시다. 마치 늘 그랬던 것처럼 민방위 벨이 울리면 그 순서에 맞게 행동을 한다. 호찬이 어떤 선택을 하던 민방위 훈련의 매뉴얼처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그 시간이 10분인데, 이는 누구에게는 짧을 수도 있지만 호찬에게는 10일처럼 길게만 느껴질 것이다. 10분, 그 정체된 시간- 호찬과 같은 우리는 항상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돌이켜 보면서 영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길.
- 정작 분노할 진짜 대상이 없는 아이러니
2년 전, 여의도에서 있었던 조금 잔인한 사건을 기억한다. 30대의 한 남자가, 저녁 퇴근 시간에 사람들 많은 여의도 한 복판에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4명의 부상자가 생겼으며 그 중 한 명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이 중 2명은 가해자의 직장 상사와 동료로 밝혀졌다.
나머지 2명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반 시민이었으며, 막무가내로 칼을 휘두르다 부상을 입히게 된 것이었다. 그것만 보면 이유가 없는 사이코패스의 묻지마 살인으로 보이겠지만, 직장 동료 2명이 이 30대 가해자의 분명한 이유가 된 것임이 곧 밝혀졌다. 가해자는 직장 상사와 동료들이 자신을 험담하고 왕따를 시켰다고 했다. 그 충격으로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으며, 그 후로 험담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새롭게 다니게 되는 회사마다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분노는 결국 가해자의 양복 주머니에 늘 뾰족한 과도를 들고 다니는 상황을 만들게 했으며, 결국 범죄까지 지르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 리뷰를 하다가 뜬금없이 여의도 칼부림 사건을 꺼내는 건, 영화를 봤을 때 그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여의도 칼부림 사건의 정확한 정황은 알지 못한다. 혹은 우리는 기사만 봤을 때 가해자를 무작정 벼랑 끝으로 내밀면서, 그저 미친놈이라고 정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세하고 촘촘한 갈등의 순서가 있었으리라. 영화 10분에서 보여준 구체적 정황이 그 사건의 비슷한 심리를 담고 있지는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호찬은 열심히 그리고 열정을 갖고 하면 그에 응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 확신하던 젊음 청년이었다. 아직 사회의 냉정함과 무심함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하지만 그 열심의 대가는 너무도 비참했다. 승진이나 확실한 자리를 얻는 대신 상사의 배신을 통한 세상의 냉혹함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호찬은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현재 삶은 너무 피폐하다. 가족 모두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의지해 살고 있다. 안정적인 자리를 보상받았다는 상사의 통보에 그는 (섣부르긴 했으나) 가족과 친구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불확실한 PD의 꿈을 평생 가지고 가는 대신 안정적이고 편안한 확실한 직장인의 위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Pd의 꿈이 컸던 호찬에게는 그 안전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도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꿈을 포기 한 것이다. 자신과 함께 꿈을 이루기 위한 친구들도 배반한 것이다. 호찬에게 정규직의 자리는 맛보고 싶었던 과일이 아닌 꿈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쉬운 선택일 뿐이다. 어쨌든 그는 ‘안정적’인 것을 선택했고, 그 삶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세뇌하고 있었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긴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 다른 사람이 오게 된 것. 그것도 소위 말하는 ‘빽’으로 말이다.
영화는 이 장면을 기점으로 호찬의 또 다른 얼굴을 계속 비춰준다. 이 전까지 그는 가장 성실하고 말을 잘 듣고, 착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상상도 할 수 없던 배신을 당한 그는 180도 바뀐다. 착한 호찬은 없다. 분노하고 예민하고 늘 투덜거리는 호찬. 자신을 밀어주기로 한 부장의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변화는 호찬을 당황하고 화가 나게 만든다. 또 언제나 자신의 편일 줄 알았던 동료들이 빽으로 온 송은혜의 살가움에 넘어가며 호찬을 속 좁은 남자로 만들어 버린다. 호찬은 그렇게 돌아 버리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부분에 있다. 함께 끝까지 어떤 세태에 싸워 줄 것만 같던 동료들이 호찬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호찬은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에게 분노를 해야 하는 거지?’
그러면서 그는 분노를 해야 될 대상이 확 드러나지 않음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 송은혜의 전입은 부장의 입김이 있었으나, 부장은 또 자신보다 높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른 것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이다. 분하지만 이해를 해야 하는 대목이다. 호찬으로써는 괘씸하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는 입장인 것이다. 미치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여의도 칼부림의 미친 사태처럼 호찬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느끼겠지만 영화는 사회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전제로 깔고 있다. 변하지 않는 이 나라의 취업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인식이, 변하지 않은 지저분한 관습이 청년들과 사회 초년생들의 순수함을 빼앗아 가고 있다. 그건 곧 일 할 능률을 자꾸 소모시키며, 열정도 열의도 없는 ‘안전함’이라는 지독하게 깊은 함정에 그들을 몰아넣고 있는 아주 멍청하고 못된 질서를 자꾸 생산시키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이 함정에서 어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이렇게 감독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묻고 싶다. 이번에는 청년들에게. 늘 안전벨트를 매고 차로 여행을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벨트를 풀고 나와야 진짜 여행이 아닌가.
- 구성의 방식
현대 사회 초년생들의 상징인 호찬이라는 인물의 심리와 상황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흥미로운 건 호찬이 무너지는 순서와 정황이다. pd의 꿈을 갖고 있을 때의 첫 호찬은 안정적인 직장인을 선택하며 처음으로 스스로의 마음이 무너진다. 그리고 상사의 배반으로 2번째 무너진다. 3번째 그가 무너지는 시기는 믿었던 동료의 배반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돌리는 시선들이었다. 마지막 4번째 그는, 그 동료들이 자신에게 모든 탓을 하자 와르르 무너진다. 이렇게 호찬의 심리가 무너지면서 영화는 그의 밝고 희망찬 첫 모습과 분노없이 살 수 없는 마지막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참고로, 호찬 역을 맡은 백종환 배우와 노조지부장의 정희태 배우는 앞으로의 행보가 매우 궁금하다.)
- 이 영화의 한 컷
호찬의 자리에 또 다른 '빽'으로 송은혜란 여자가 입사하게 되는 장면. 인턴이었던 호찬도 부장의 '빽'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반발 못하고 분노만 조용히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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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초년생, 직장인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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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sung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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