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메신저 극장판, 2014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어린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의 지브리와 미국의 디즈니, 픽사 등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찬사를 받았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기술 또한 외주를 도맡아 할 정도로 상당히 발전해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규모는 무척 협소하며, 작가들의 순수한 창작 활동이 지원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국내 회사의 이름으로, 오롯이 한국의 기술력으로 제작되었다는 <고스트 메신저>가 개봉하여 흥미를 가졌다. 비록 상영관이 적고, 시간대가 열악하여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새바람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낸다. 짜임새 있고 탄탄한 스토리, 타 작품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작화, 한국적인 특색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과하지 않은 느낌이 만족스럽다.
‘고스트 메신저’는 이승에 한이 남아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영혼을 잡아 돌려보내는 차사들이다. 말하자면 삼도천을 건너도록 도와주는 저승사자. 하지만 한 맺힌 영혼들이 곱게 따라갈 리는 없으니, 이승을 떠도는 영혼들을 잡는 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장 차사로 활동하는 강림도령은 실수로 자신의 무기인 ‘소울폰’에 갇히고 만다. 이승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외양의 소울폰은 이 사람 저 사람을 건너, ‘귀신 보는 소년’이라며 친구들이 따돌리는 12살 소년 강림의 손에 도달한다.
소년 강림에게는 어려서부터 이상한 능력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령’이 보이는 것이다. 무심코 소울폰을 작동시킨 강림은 한자로 이루어진 낯선 화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진들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소울폰에 갇혀 있던 본래 주인, 강림도령과 만나게 된다.
조숙하고 염세적이지만 여느 초등학생처럼 치기에 가능한 소년 강림과 차사치고는 어리버리한 성격의 강림도령.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승과 저승 사이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스트 메신저>의 세계관은 상당히 치밀하고 짜임새 있다. 휴대폰이라는 현대문명에 저승, 차사, 삼도천 등 전통적인 요소를 연결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누구나 들고 다니는 휴대폰이 영혼을 저승으로 소환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강림도령을 비롯한 차사들이 사용하는 소울폰은 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각 캐릭터의 개성이 부각되며, 작중 보여주는 화려한 기술들도 특색이 있다.
12세 연령가의 작품이니만큼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거나, 자극적인 액션씬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양하게 전환되는 화면과 3D배경의 접합으로 부족하다는 느낌은 덜하다. 작품 전체에 심혈을 기울인 분위기가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잖아 있다. <고스트 메신저>는 초기 기획단계에서 39부작의 장편 애니메이션→6부작의 OVA로 개편되었다. 하지만 제작 환경의 열악함으로 1편에 이은 2편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번 극장판 역시 기-승-전-결의 결말이 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으니, 이번 극장판을 관람한 관객들에게는 스토리의 미완성, 불확실한 열린 결말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사실 <고스트 메신저>의 외국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개중에는 애니메이션의 본국으로 통하는 일본의 기술 못지않다는 평도 많다. 국내 애니메이션 기술이 결코 외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작가들도 많으며, 개중에는 큰 공모전에 당당히 입상한 실력자들도 있다. 또한 국내 애니메이터들은 다양한 작품의 외주를 받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해외 작품들을 수입하고 더빙하여 개봉, 방영하는 방식으로 활성화되어 왔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2차 창작활동도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웹툰 시장이 거대해지면서 실력 있는 작가들이 속속들이 데뷔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순수한 창작 활동이 돋보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고스트 메신저>로 인해 국내 애니메이션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해 있는지 보았다. 한 편의 영화가 배우와 감독, 극본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듯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환경 또한 보다 개선되기를 바란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고스트 메신저>관람 당시 생소한 경험을 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이 보기 드문 기립박수를 친 일이다. 평일 오전 시간대인 만큼 관객이 많지는 않았으나, 그 소수의 관객들이 단 한 명도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았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보여준 제작진에 보내는 격려와 응원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