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강국을 꿈꾼 세종의 비밀병기
신기전
The Divine Weapon, 2008
15세기 세종 30년, 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이었다. 명은 조선의 내정과 군사에 간섭하며 과도한 공물을 요구해 왔다. 이에 세종은 명에 대항할 새로운 화포 개발에 매진한다. 조선에서 비밀리에 제작되면 화기의 이름은 신기전(神機箭). 15세기 최고의 첨단과학 무기로 꼽히는 로켓추친 화살이다.
조선 최초의 화포는 1377년 최무선 장군이 개발한 주화(走火)다. 종이를 말아서 만든 통에 화약을 넣고 화살에 붙여 적진으로 쏘아 보냈다. 이 주화가 세종 때 신기전의 한 종류인 소신기전으로 발전하는데, 신기전은 총 네 가지 종류로 크기와 용도에 따라 달리 이용되었다.
화포연구소의 도감인 ‘해산’은 신기전 개발 중 명나라의 습격을 받는다. 그는 화약 개발의 모든 것이 담긴 비기 <총통등록>과 차기 도감이 될 외동딸 홍리를 피신시키고 스스로를 희생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명나라의 추격을 피해 홍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적당한 인물을 모색한다.
명나라 사신단이 들어온다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재정난에 몰린 부보상단. 상단의 행수인 ‘설주’는 금전적 보상에 혹해 홍리를 보호하게 된다. 하지만 홍리가 신기전 개발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설주는 홍리를 내보내려 하고, 홍리는 당장 살기에만 급급한 설주를 비난한다.
하지만 설주는 언쟁과 다툼 끝에 신기전 개발에 참여하고, 처음에는 우왕좌왕했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화포 개발에 매진한다. 당시 화포개발이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었다. 상당한 수고와 인력이 필요했으며 무엇보다 위험했다. 화포란 아주 조금의 오차만 있어도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몹시 고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영화 <신기전>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자세하게 보여주면서도 지루하지 않도록 장면 전환이 빠르다. 신기전 개발을 저지하려는 명 황실과 이에 대항하는 조선의 모습 또한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설주와 홍리의 입체적인 캐릭터가 눈에 띈다. 극 초반 설주는 능청스러운 상단 행수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화포 개발에 남다른 지식을 갖고 있으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재치와 입담은 언뜻 지루할 수 있는 내용에 활기를 주며, 과하지 않은 로맨스 요소 또한 몰입을 높여준다.
홍리는 의외로 ‘허당’스러운 인물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기전 개발에 책임을 맡은 홍리는 여장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설주의 짓궂은 입담에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서로에게 없는 지식을 배우고 또 가르쳐주며 각별한 사이가 된다. 하지만 신기전 개발은 속속들이 어려움에 부딪힌다. 화포에 반드시 필요한 ‘염초토’조달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며, 원리와 방법을 전부 숙지하고 있음에도 신기전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극 초반에서 불거졌던 <총통등록>문제가 다시 거론된다.
신기전은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물건이 아니다. 15세기 조선에 실제로 존재했던 화포로서 전쟁에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또한 신기전의 구조와 효력은 현대의 로켓과 흡사하며, 발화통(폭탄)을 장치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신기전 중 가장 큰 대신기전은 세계 최대의 종이약통 로켓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신기전은 아주 정밀한 수치를 가진 무기였다. 각 부분의 치수를 0.3밀리미터 정도의 단위까지 아주 세밀하게 측정했다는 것은 당시 과학적 수준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신기전은 살상이 아니라 적의 사기를 꺾어놓기 위한 기선제압의 용도였다. 당시 전쟁무기는 칼, 창, 활이 주를 이뤘으며 굉음과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 무기는 전무했다. 따라서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이 가능했다. 상대적으로 화약이 많이 드는 신기전을 ‘굳이’살상용으로 이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전의 위력을 고려해보면 무기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가능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대다수의 사극 매체가 그렇듯이 영화 <신기전>또한 과장된 구석이 없지 않다. 대신기전의 경우 거의 미사일 수준의 파괴력으로 연출되었고, 명나라와의 대립 또한 지나친 열세를 극복하는 등 실제로는 불가능했던 일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를 역사왜곡으로만 여기기보다, ‘있을 수도 있었던’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또한 <신기전>에서는 화포 개발에 따르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문제점 또한 놓치지 않았으며, 이를 극복하고 개발에 성공, 나아가 적군을 상대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크게 와 닿는다. 후방에서 불꽃을 뿜는 화차와 하늘에서 무수히 떨어지는 화살, 그건 정말 이름 그대로의 신기전(神機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