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혹시 나처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나요?
명문대 졸업, 미 유학파, 젠(Zen) 센터의 경험으로 출가한 엄친 딸 상욱 행자!
어린 시절, 절에 버려져 동진 출가의 업을 지닌 선우 스님!
신세대형 비구니, 인터넷 검색으로 절에 왔다는 민재 행자!
37년간 수행의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영운 스님!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이 머리를 자를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일 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리는 곳, 비구니 수행도량 백흥암
그곳에서 비구니와 함께한 300일 간의 템플스테이가 공개된다!
* 출연진의 다른영화 :
길 위에서
On the Road, 2012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 아제 아제 바라아제을 인용한 1989년 임권택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불가의 삶속에 투영된 여성의 삶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구도자의 길을 가는 비구니의 고뇌를 담은 작품으로, 당시 한국영화의 수작으로 꼽을만큼 대단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무엇보다 주인공 강수연의 삭발투혼은 언론의 최대 관심사 이기도 하였다.세상의 모든 번뇌를 내려놓고 속세와 등지려 하는 비구니의 삶을 그린 영화 이지만 당시 종교와 어떤 연관도 없던 나에게도 진정한 자기 수행의 의미를 깨우쳐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로 알게된 비구니의 환상과 어설픈 편견들은 이창재 감독의 <길위에서>를 통해 산산히 부서지고 그들의 삶이 얼마나 기나긴 고행의 길을 가야만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된것같다.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상욱 행자,선우 스님,민재 행자의 짧은 생의 여정들은 다큐멘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수행의 길을 따라가기 보다 그들의 인간적 고뇌와 번민을 다루며 슬픔과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밥값을 하기위한 300일 의 수행
백흥암 ..경상북도 영천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산내암자 이다. 부처님오신날 과 백중날 일년에 2일만 일반인에게 공개된다는 신비스러운 이곳은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공간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 될 정도로 비밀의 문이 굳게 닫혀져 있는곳이다.깊은 산속의 법당에서 목 놓아 통곡하는 소리의 궁금증은 이창재 감독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그의 끈질긴 설득과 집념은 결국 촬영을 허가 받게 되었지만,새벽 3시 예불 부터 저녁 9시 취침전까지의 긴 시간중 주어진 단10분간만 촬영할수 있다는 전제가 붙어있다.
부모와의 인연마저 끈고들어와 수행하는 그들에게, 적나라한 카메라의 엥글은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고 금남의 구역인 수행도량 에서 남자들과 애기하며 촬영한다는것은 감히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지만, 4번의 추방과 300여일의 간의 수행(修行) 과도 같은 촬영과정은 아름다운 팔공산의 사계와 그보다 더 아름다운 비구니들의 소박한 일상들까지 여과없이 보여주게된다.
피상적 출가 를 우려하는 상욱행자의 과감한 도전
예비승려인 사미사미니계를 받기위해 조계종 수련교육에 참가한 상욱행자는 입구에서 부모님과 마주하게 되지만 통곡하는 어머니를 뒤로한채 냉정하게 돌아서 버린다.가족들과 상의도 하지 않은채 출가를 결심한 상욱행자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과정까지 밟은 수재 이다.미국 zen센터에서 3년간 경험해본 불교는 그의 인생을 바꿀수 있는 강렬한 체험이었고,한국에 도착하면 교수 임용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출가 하기로 마음먹은 그의 결정을 바꿀수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하지만 지금 어머니의 눈물과 한없이 복받치는 상욱행자의 설움은 고행의 길을 택한 딸을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불심을 위해 가족과 나누었던 일상의 행복마저 포기해야만 하는 수행자의 애절한 눈물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느니 선택한 자신의 길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상욱행자의 고행은 20여년 넘게 정성을 다하고 자식의 행복만을 기원하던 부모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이기적 행동으로 보여질수 있겠지만,이 또한 현실과 종교의 세계를 아우르며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우리들의 삶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중에 겪게되는 진통의 일부분일 뿐이다.한국에서의 불교생활은 전혀 접하지 못한채 젠센터의 아름다운 기억만으로 일생을 사찰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어려움을 극복할수가 있을까? 수행중 꺽이거나 좌초하지 않을까? 에 대한 물음은 피상적인 출가를 걱정하는 스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상욱행자 자신이 정답을 찾아 끈임없이 고뇌하는 물음 이기도 하다.
동진출가보다 소중한 가족의 의미
어린나이에 불제자로 입문하는 사람을 동진스님이라 하며, 이를 동진출가라고 한다.영화속 선우 스님의 경우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불교에 입문하게 된 경우로 세상을 등진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 곁에서 자라다 3살때 할머니가 절에 데리고 와서 스님들이 키웠다고 한다.부모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한채 기억도 희미한 어린시절을 홀로보낸 선우스님..때론 원망스럽기도 하겠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며 그럴수 밖에 없었던 부모의 아픔을 위로 하려한다.
스님들과의 만행(萬行) 과정에서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속에 어릴적 입적한 선우스님을 바라보는 소현스님의 조언은 그동안 쌓여왔던 슬픔과 고뇌의 짐들을 덜어낼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가족도 없고 집도없는 선우스님은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기도 한다.하지만 스스로의 당당함을 찾기위해선 수행과정을 통해 이겨내야만 한다는 소현스님의 말처럼 환경에 의한 영향보다 본인의 의지와 수행에 따른 결과물이 삶의 진행과정을 변화시킬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동진출가를 염원하는 다른 스님들의 부러움과는 달리 자신이 선택할수 있는 시간마저 주어지지 않았던 선우스님은 이제 자신이 결정할수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결코 수행의 길을 멈추지 않을것이다.
천방지축 신세대처녀의 톡톡 튀는 구도의 길
주 5일제 근무를 주장하는 신세대처녀 민재 행자의 케릭터는 독특하다.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안타까운 이별장면을 연출한 상욱 행자의 케릭터가 슬픔이라면 민재 행자의 발랄한 성격과 4차원적인 발언들은 조용한 백흥암에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 역할을 하게된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하여 세속적 욕망의 상징으로 보며,삭발은 곧 출가을 결심한 수행자의 세속과의 단절을 뜻하기때문에 구도의 길에 들어선 민재 행자의 삭발과정은 엄숙한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되지만 정작 당사자인 민재 행자는 밝은 모습을 보이며 눈물 한 방울 이라도 기대했던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어 버린다.당찬 신세대 처녀답게 구도자의길 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에 한치의 후회나 아쉬움도 없으며 단지 일상의 행복을 원하는 부모님께 죄송스런 마음 뿐이다.절 에 와본적도 없고 스님을 만나본적도 없는 그녀는 신을 섬기는 다른 종교를 택하기 보다 자신과의 믿음을 중요시 하는 불교가 자신이 원하는 종교 같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뚜렷한 이목구비,커다란 눈동자의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지만 이제 성숙한 여인의 모습은 던져버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수행의 길을 걷게된다.한 여름 고추밭에서 먹을수 있는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행복 해하고,김장을 할때는 입안가득 쌈을 싸서 먹으며 힘든 일상들을 행복하게 맞이 하려한다.비구니의 길을 택할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아픔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보다 그녀의 목탁소리가 불안하게 느껴지는건 천방지축 그녀의 온전한 수행을 바라는 마음 이기도 하다.
무형의 존재를 찾기위한 수행과정
영화를 통해 알게된 무문관 수행은 3년이라는 시간을 독방 안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화두(話頭)에 대한 깨우침을 얻기위한 수행의 과정중에 하나이다.인간의 모든 욕구를 억제하며 말한마디 나눌수 없는 단절된 생활은 속세를 떠난 수행자 일지라도 견뎌내기 힘든 결심 일것이다.수행을 하기전 마지막 세상구경인 만행의 길에 오른 스님들은 휴대폰으로 기념촬영도 하고 시장을 구경하고 김밥과 떡국을 먹으며 그들이 누릴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을 만끽하려 한다.
고립된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길위를 서 있고 목표를 향해 끈임없이 정진해야만 하는 우리의 삶과 다를바없다.촬영기간중 무엇을 보았느냐?는 큰스님의 질문에 이창재 감독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라고 답을 한다.행복한 삶을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우리는 정작 지금의 행복을 깨닫지 못하고 또 그것을 찾아나서는 오류를 범하며 행복이라는 환상의 무지개를 찾기 위해 평생의 시간을 허비하고 만다.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보고싶어하는 인간의 욕심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만들기도 하지만 보기위한 노력보다 깨닫기 위한 수행의 길은 가치를 판단할수 없는 자신만의 존엄한 의식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