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1789 Les Amants De La Bastille , 2013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뮤지컬 실황 영화다.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팬들에게 꽤 알려진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뮤지컬 콤비 도브 아티와 알베르 코헨이 만든 것이다. 이들은 이 작품 전에, <모차르트 오페라 락>으로 프랑스에서 크게 흥행한 바 있다.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마리 앙뚜네와트와 루이 16세 시절, 왕정과 민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유럽 뮤지컬의 특색인 무용과 캐릭터를 잘 살려낸 작품이며, 이야기의 중심도 매력 있게 잘 잡혀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캐릭터뿐만 아니라 서사적으로도 중심이 잘 잡혀있는 유럽 뮤지컬이다.
바스티유 혁명이라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소재의 순간순간을, 멋진 연출로 무대 위에 펼쳐 놓았다. 프랑스 뮤지컬의 매력인 이미지가 아주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연인들이라는 부제는 로낭과 올람프를 뜻하기도 하지만 자유를 사랑하는 격동의 시대 속 인물들을 뜯하기도 할 테다. 그렇기에 올람프와 로낭의 듀엣 순간순간 진정한 사랑,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이렇듯 작품은 ‘연인들’인 로낭과 올람프 뿐만 아니라 로베스 피에르, 카미유 데물렝, 조르주 당통, 그리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네와트, 페르젠 백작, 그 주변 인물들, 솔렌까지 크고 작은 사건들을 놓치지 않는다.
긴 시간 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다. 때론 색색의 드레스와 무대를 가득 채우는 춤이 등장하는 마리앙뚜네아트의 파티 장면과 루이 16세의 우스꽝스러운 국왕 놀이 장면처럼 화려하게, 군인들의 군무 같은 절도 있는 육체미로, 민중들의 춤처럼 절제된 아름다움이 눈을 잡는다. 그리고 마음을 울리는 노래와 시적인 가사, 배우들의 독특하고 강렬한 목소리 역시 사람들의 귀를 끌어당긴다.
무엇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순간이여도, 그 순간들을 무대 위 생생한 움직임으로 보는 ‘맛’이 있다. 멋진 노래와 춤,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이 역사를 보는 것 같은 묘미를 준다. 억눌려왔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려 하는 그 ‘순간’이 가슴을 친다. 그리고 앙상블들까지 나와 프랑스 인권선언문을 읊는 모습은 감정을 벅차오르게 하기 충분하다.
무대는 가녀리고 구슬픈 노래와 함께 당시 상황 설명으로부터 시작한다. '1788년 여름 왕가의 사치와 늘어가는 국채로 인해 프랑스는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루이 16세는 1789년 봄, 삼부회를 소집했다. 소집 대상은 귀족과 성직자 국민을 대변하는 제 3 신분이었다.
삼부회는 세 계급의 대표들이 모여 재정위기를 해결할 세금제도를 마련하는 자리였다. 삼부회는 온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고 또 다시 군주에게 굴복하고 말 것인지? 나라 곳곳에서는 굶주린 사람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실업과 빈곤은 수천 여 명에 달하는 불행한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불같은 사랑, 그리고 그 속을 뚫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매혹적인 뮤지컬에서 노래와 함께, 장면 몇 개를 꼽아보았다.
첫 번째는 무대의 오프닝이다. 그 시대의 빈곤과 자신의 땅에 대한 권리를 찾으려했던 사람들을 강렬하게 그린다. 군인에게 주인공 로낭의 아버지와 그 시대 누군가의 아버지가 잡혀간다.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했던 그들의 결정이 화를 불렀다. 그 군인에게 로낭과 사람들은 맞서 싸운다. 대치하는 군인과 사람들의 대치 순간, 그리고 로낭의 노래가 처절하다.
‘우리의 죽어가는 눈동자 / 땅 위에서 우리 어머니들이 울부짖네 / 우리에게 남은 건 비참함 뿐 / 영혼마저 빼앗길 수 없네. / 몸뚱이뿐 /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어 / 등 위의 가난은 병균처럼 붙어 있네 / 떨어지지 않아 / 굶주림에 시달리네 / 정 뭐라도 가져가야겠다면 / 가죽이라도 벗겨가시던가’ 그렇게 군인의 총에 로낭의 아버지가 죽고, 로낭의 누이 솔렌이 등장한다. 솔렌은 이 극에서 약하다 평가받던 여성 천민들의 마음을 대표한다.
두 번째는 솔렌의 솔로곡들이다. 로낭이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자기들의 땅에 대한 권리를 찾겠다며 떠나고 살아가기 위해 몸을 팔게 된 솔렌의 절망을 표현하는 노래. 이 전에도 <십계>에서 감성 짙은 목소리를 보여줬던 나탈리아의 연기와 가창력이 캐릭터에 매력을 더한다. 그리고 후에 바스티유 진격 전 Je veux le monde를 부르며 여성과, 이 시대, 그리고 생과 죽음을 노래하는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나는 세상을 원해 / 눈물을 흘리라 여성이여 / 여성이 세상의 주인 되리라 / 세계를 꿈꾸고 반란을 일으키자 / 그 무엇도 두렵지 않네 / 우리는 고통을 알고 / 세상을 원해’ 그리고 솔렌을 중심으로 여자들은 남자들이 없어도 우리의 싸움은 계속된다 외친다. ‘세상이 곧 나야 / 지구는 둥그니까 / 아이를 가진 엄마처럼 / 세상을 원해 어두운 날은 이제 없어 / 고통은 충분해 이미 너무나 잘 알아’ 솔렌과 여자들, 그리고 가장 굶주리고 있던 사람들은 직접 일어서서, 바스티유, 궁전으로 진격한다.
세 번째는 변화를 꿈꾸는 로낭, 당통, 피에르, 데물렝의 장면이다. Hey ha, ‘우리의 오랜 존경심은 사라졌고 이젠 저항으로 바뀌었네’ 같은 대사들과 변화를 원하는 그들의 ‘꿈’을 매력적인 노래로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노래 la rue nous appaient 의 가사도 좋다. ‘잠든 희망 아래에서 내 심장이 들고 일어나 외치네 / 나는 꿈꾸는 자였으나 / 헛되이 떠돌았지 / 내 실패한 사상을 지나오면서 눈물 한 방을 조차 흘릴 수가 없었네’ ‘그러나 감옥의 어떤 벽으로도 지평선을 가둘 순 없어 / 영혼의 눈으로 더 멀리 본다면 / 그 미래는 우리 것 / 우리는 모두 함께 나아갈 거야 / 고귀한 혈통 같은 건 없어 / 만일 역사가 기억한다면 / 그 미래는 우리의 것... 거리는 우리의 것’ ‘국민이 주인이야 그것이 우리의 길’ 국왕이 집회의 권리 박탈 후 분노하며 왕을 포함해 누구도 우리에게 명령할 수 없다며 분노하고 의문을 가지는 그들.
그리고 로베스 피에르의 a Quoi tu danses? 역시 명장면이다. 숨죽이고 있지만 끓어오를 것만 같은 분노를 표현하는 탭댄스와 멋진 가사가 격렬한 감정을 펼쳐 놓는다. ‘일상은 불안하고 시대는 고단하므로 / 그들이 세상을 가혹하게 만들어 / 우리를 쉽게 다루려 하기 때문이지 / 두려움은 탐욕스러운 증기 속에 녹여버리고 / 원한은 끈질긴 술잔으로 잊는 거야 / 생각해봐 그들이 춤추는 동안 이성이 흔들리면 무엇을 위해 춤추는 지조차 모를 수 있어 네가 소비한 밤들에 대해 귀족들은 아무 관심도 없고 / 너는 네가 어떤 춤을 추었는지조차 모르게 되지 / 저들의 교묘한 화술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바보가 될 수 있어 / 우리가 노예이기 때문에 그들의 약속은 가볍기 마련 / 저들이 제멋대로 하는 놀이에 밤에 잠도 못자 / 가리워진 욕망 때문에 살을 절망하게 되’ 그리고 이 땅에 헌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 다짐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부정당하고, 피에르를 중심으로 그들은 다시 절도 있고 금방이라도 끓어오를 것 같이 춤을 춘다.
비슷한 장면으로 데물렝의 녹색 손수건 장면이 있다. 희망의 색깔 녹색 손수건을 집결의 상징, 무기 삼아 그들은 나아간다. 그리고 녹색 드레스를 입은 무용수가 자유를 맹세하는 데물렝의 뒤에서 옅은 미소를 띄우고 아름답게 춤춘다. 그리고 그들은 끓어오른 민중과 만나 바스티유로 진격한다.
그 순간, 로낭의 sur ma peau 가 울리고, 무기를 나누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리고 로낭과 사람들은 녹색 손수건을 가지고, 피로 그들의 무늬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가사만으로도 말이 필요 없다. 그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적인 가사로, 감성적인 음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보여주고 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어 안개 속에서 난 길을 잃었어 파도 아래 수많은 밤을 홀로 지샜어 마음 속 깊은 곳엔 너의 미소 바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길 잃은 어린애처럼 표류했었지 하늘을 보며 너의 별을 찾는 일에 심취했어 눈물 끝에 맺힌 네 미소를 내 몸 위에 나의 약속을 새겼어 단어의 꽃들로 각인된 젊은 날의 맹세 이 모든 게 다 지난다 해도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이 맹세를 지키겠다고 약속할게 내 목숨을 걸고. 육지로 시선을 돌려 내가 바란 것은 지평선이 밝히는 삶 마침내 나는 새로운 이념을 쫓아가 그들은 자만이라 단정 짓겠지.'
지금 말한 장면들 말고도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어떤 장면을 틀어 봐도 매력적인 장면들의 향연이다. 노래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봐도 너무 아름답다. 그 노래들이 시적인 가사를 입고, 배우들의 연기로 하나의 이야기를 입을 때의 쾌감이 좋다.
가수 출신으로 독특한 음색을 뽐내는 로낭 역 루이 들로르, 광기 어린 집착과 극의 재미를 더하는 라마르 역 야민 딥, 쾌활하지만 이성적인 당통 역의 데이비드 반, 국가의 권력이였던 군인 라자르 역의 마티유 카르노가 보여주는 카리스마, 국가에 짓눌린 사람들의 삶에 의문을 가졌던 카미유 데물렝 역 로드 자누와, 로베스 피에르 역 세바스티앙 아기우스, 화려함만을 추구하던 어린 왕비에서 후회로 가득찬 마리 앙뚜네아트의 심정을 보여준 록산느 르 텍시에, 순간적으로 끌려갔던 사랑의 감정을 보여준 올람프 역 까미유 르 등 수많은 인물들이 무대를 생생히 빛낸다. 그리고 역시 프랑스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 특히 이 무대에서 큰 역할을 하는 ‘민중’인 댄서들의 격렬함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무대의 힘은 영상으로 담아놓아도, 그 생생함이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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