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 2009
2009년 가을, 꽤나 자극적인 제목의 영화 한편이 개봉한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어느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어깨를 부딪혔다는 이유로 대학생 조모군이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화 영화이다.
당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고, 가해자가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SOFA'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발생하게 되었었다. 97년 당시 검찰은 현장에 있던 에드워드 K.리와 존 피터슨 가운데 리를 범인으로 지목, 기소했으나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로 치달았다. 또 증거인멸 등 혐의로 기소된 피터슨은 항소심에서 장기 1년 6월, 단기 1년여 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98년 8월 특사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달아났다.
영화는 철저히 실화를 근거로 진행되고 있다. 범행을 추궁하는 전반부, 재판이 벌어지는 중반부, 결국 모든 것이 해결되지 못하고 미궁에 빠지는 것을 암시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있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재연 부분을 영화로 그려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철저하게 실화를 근거로 따르고 있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실화가 꾸며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분노케 했다.
하지만 영화적 부분에서 바라보면 실화를 철저히 따르다 보니 영화 자체가 다소 큰 기폭이 없었다 전형적인 문장들과 재연 설정에서나 볼 법한 대사들로 인해 배우들의 연기도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영화는 중반부에 다다를수록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연 설정의 옷을 벗어내지 못하고 마치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여주는 듯한 설정은 지나치게 영화를 다큐멘터리적으로 이끈다. 사건의 본질만을 따랐다면 영화의 후반부는 더 이상 그려낼 것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수사부의 큰 실수로 가해자들은 모두 미국으로 도망친 이후였고, 사건은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그 동안 철저하게 고수해오던 본질을 바탕으로 한 전개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무리수를 두게 된다. 바로 정의감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는 것이다. 배우 정진영이 맡은 검사역은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옷을 입은 배역이었다. 그러나 이 역할이 다소 불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초반에는 지독히 본질만을 따르던 영화이기에 관객들은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 혹은 이 모든 것이 본질이라 믿고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이 지나고 후반으로 갈 수록 정의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때문에 관객은 다소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정의감이 영화를 표현하거나 영화에서 던져주고 싶은 하나의 메시지라 할 지어도, 이제는 손 놓고 사건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관객의 입장은 답답하기 끝이 없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모두가 범인을 알고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손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범인 찾기에 급급했다. 이는 스릴러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규칙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규칙이 소용이 없다. 그럴거면 애초에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본질을 끊임없이 쫓아가기만해서는 안되었다. 뒤 늦게 정의감과 범인 찾기에 중점을 둔 것은 감독의 큰 실수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반전을 꿈꾼다면 영화는 사건을 과감히 내려놓고 사건과 관련되는 또 다른 이야기를 그렸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구조의 미숙함을 갖고 있고, 실화 이상의 영화적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또 관객들을 가장 불편하게 했던 사회적 메시지를 다소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 사회적 환기를 위해 이 사건의 영화화는 제작 시점 부터 큰 이슈가 되었고, 여느 불행한 사건을 영화화했을 때의 파급효과를 바라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영화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 까지 냉정을 유지하는 이 영화는 그 냉정함이 사건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닌 오히려 관객을 화나고 답답하게 이끄는데 주력했다. 이는 감독의 의도가 아닐 것이다. 이는 스릴러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객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실을 알고싶어하지는 않는다. 사건에 대해 국민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영화를 통해 다시금 환기하고, 이는 이어져 영화를 본 사람들만의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의 가장 뚜렷한 장점이다. 그러나 영화가 지독히 고수했던 냉정한 객관성은 재연 드라마가 아닌 이상 영화에서는 실패 설정 중 하나에 불과했다.
영화에 등장한 갖가지 극의 긴장을 높이기 위한 요소는 쏟아지는 비와 몇 가지의 음악, 그리고 극을 돕는 조연에 불과했지만 이 들 역시 지나치게 냉정함을 유지했기에 영화는 다소 큰 공감대를 불러오는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사망한 피해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건을 돌이킬 수도 없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사망한 피해자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고, 또 어느 나라의 국민이다. 사건이 흐른지 16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법정에 가해자를 내세울 수 없다.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사건이 흘러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사건은 다시 한번 재조명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미국 범죄수사대에 익명의 제보가 도착했다. 전날 이태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범인은 미군 군속의 아들인 아더 패터슨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제보를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한 미군 범죄수사대는 평소 피터슨이 자신의 칼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고 다혈질적인 성격에 폭력적이다는 진술을 확보했었다고 한다. 이 것을 바탕으로 그는 사건을 저지르고도 과시했다는 점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가해자는 붙잡혔고,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당시 검사의 무능함과 오판이 부른 치명적인 실수가 있엇다. 우리나라 사법의 알 수 없는 '이상한 관행' 이 그 원인이었다.
범죄 상황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폐쇄회로 화면이나 증거가 있지 않는 한, 범인의 자백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즉 이것은 범행을 끝까지 자백하면 유죄가 성립되고, 끝까지 부인하면 무죄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에드워드 리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선고 받았고, 아더 피터슨은 불법무기소지죄가 적용되었지만 곧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기에 이르렀다.
한국 검찰은 공소시효가 완료되기 전인 2011년 이태원 살인사건 범인 피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LA연방법원은 2012년 피터슨을 한국으로 송환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피터슨은 곧바로 불복, 인신 보호 청원을 하면서, 자신을 한국으로 보내면 한국 사법부가 편파적인 판결을 내리고 사형에 처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내세우며 또 다른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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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영화를 좋아하거나 당시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모든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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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라락키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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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3일 발생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이태원 한복판의 시끌벅적한 햄버거 가게에서 발생한 이 살인사건은 살해동기가 단순히 ‘재미’를 위함이었다는 것에서 큰 충격을 줬으며, 또한 한국과 미국의 불합리한 협정으로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한 것에서도 큰 분노를 일으켰다. 이 사건이 영화로 옮겨졌다. 평소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홍기선 감독이 <선택> 이후 6년 만에 내놓는 작품으로, 실제 사건에 주관적인 시선을 섞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한다. 3년의 공소시효를 남겨둔 시점에서 나온 영화인 탓에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 그런 이유로 영화는 적극적으로 범인에 다가서기 보다는 잊혀진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는 쪽에만 무게가 실려 있다.이태원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한창 영업 중이었던 밤 10시에.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10대 한국계 미국인 피어슨(장근석)과 알렉스(신승환)를 잡아들이지만, 두 사람은 혐의를 부인한다. 서로 자신이 목격자이고 상대방이 살인자라고 주장하는 이들. 사건을 맡아 수사하던 박검사(정진영)는 미국에서 수사한 결과를 뒤집으며 알렉스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박검사. 하지만 상고심에서 알렉스의 증거 불충분이 인정되어 무죄 판결이 나고, 피어슨과 알렉스는 모두 미국으로 떠나고 만다. 같이 살인을 했으나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는 이들의 주장은 법을 교묘히 피해 갔다. 과연 그날, 누가 진짜 살인을 저지른 걸까? 하지만 영화는 답을 주지는 못한다.<이태원 살인사건>은 12년 전 있었던 실제 살인사건을 모태로 하고 있다. 당시 한국은 미국과의 비형평성의 협정으로 인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없었고, 결국 두 한국계 미국인은 엇갈린 주장과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무죄를 선고 받는다. 끝내 조중필이라는 23세 한국인 청년만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채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영화는 이날의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범인을 밝힐 의지는 없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범인을 가려보자는 의도가 아니었다. 공소시효가 남은 상황에서 감독의 주관적인 견해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진실에 다가서기는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다.이런 전제조건 탓에 <이태원 살인사건>은 우유부단한 영화가 됐다. 단지 과거의 미스터리한 미제 사건을 소재로 삼아 옛날의 기억을 끄집어냈을 뿐, 그 이상의 어떤 의지도 담고 있지 않다. 아니 담을 수가 없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을 풀고 있으며, 법정 공방 역시 사실주의에 입각해 당시의 정황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오로지 관객의 판단에 의존할 뿐이고, 범인을 지목하는 그 어떤 뉘앙스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관객에게 어떠한 판단을 유도할 특별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다.여기서 영화 전체의 톤이 결정됐다. 이 영화는 치열하게 사건을 파헤치며, 법정에서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심리 수사물이 아니다. 미제 사건이기에 결론을 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 없기에 ‘엣지있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힘들다. 그런 탓에 둘 중에 누가 범인인지에 관한 흥미는 뚝 떨어진다. 보통은 양쪽 모두에게 범인일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와 범인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와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태원 살인사건>은 그렇게 결정적으로 내놓을 단서가 없어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한다. 법정 드라마에 치중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최소한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어떤 계기를 통해 퍼이슨이다, 혹은 알렉스다라며 의견이 분분할 정도는 돼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든다.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재현하는 것도 이유겠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복고적이다. 화면에 드러나는 영상도, 페이드아웃이나 포커스아웃으로 넘어가는 편집 효과도 ‘올드’한 느낌이다. 의도적으로 구식 스타일의 기술적인 효과를 넣은 것인지, 아니면 홍기선 감독의 개인적인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영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90년대스럽다. 물론 촌스럽고 ‘올드’한 느낌이 무조건 영화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영상을 바탕으로 이야기까지 지지부진하게 전개되니 이야기에 다가서는 긴장이나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걱정스러운 것은 이 영화가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것을 포기하고 얻게 되는 것들이다. 과거의 기억을 건드려 잊고 지냈던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단순히 호기심에 그치는 것은 지양해야할 일이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단지 과거를 들추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한국과 미국의 불평등관계, 대한민국 공권력의 무능함,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복잡함과 미묘함, 재미로 살인을 저지르는 인명 경시에 대한 경고, 이 사회의 불안과 분노 등이 적극적으로 담겨야 한다. 하지만 <이태원 살인사건>이 그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특별한 사건 정황 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법정공방이 이 사건에 어떤 의지를 담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2009년 9월 3일 목요일 | 글_김도형 기자 (iwai@mov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