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2014

중국 소설가 위화의 베스트셀러인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이라는 국가 배경을 염두해 두지 않더라도 인간사에 그리 낯설지 않으면서 가슴에 와닿는 희비극이다. 소설가에게 이야기꾼이라는 말은 당연하면서 굉장한 칭송이다. 재미없는 소설가라는 말은 소설가에게 치명적이며 크나큰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말이다.
소설이 반드시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와 함께 가는 것이 운명일 필요는 없듯이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환타지 소설이나, 연애의 분홍빛 환상만을 보여주는 로맨스 소설들은 문학사의 한편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한 남자의 웃음과 눈물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으며 중국의 현대사를 촘촘하게 보여주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허삼관 매혈기>가 한국어로 출간되었던 10여년 전에는 대형 서점에서 연일 베스트셀러로 판매되었고 연극까지 만들어져 공연되었으며 많은 문학가들의 칭송을 받은 재밌는 소설이었다. 그러니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이 소설을 한국식 영화로 만들 감독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기대는 곧 허삼관을 누가 할 것인가? 하는 기대와 같이한다. 돈 때문에 피를 팔아야 하는 고단한 인생의 역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허삼관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감동을 줄 인물. 그 두가지를 모두 같이 가져간 인물은 바로 하정우, 감독과 배우로 이 영화를 완성하였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문화혁명 시대는 마치 한국이 6.25 전쟁을 끝내고 난 후의 처참한 국내 상황처럼 어려운 시기였고, 춥고 배고프고 넉넉하지 못한 국가 경제 속에서 살아야하는 국민들의 모습 또한 역시 비슷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즉, 중국의 허삼관과 한국의 허삼관이 관통하는 시대상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 배경과 굵직한 시대적 상황을 강하게 표현할 힘과 탄탄한 시나리오를 하정우는 ‘크랭크인 하기 전에 영화준비를 다 끝내는 게 목표였다’고 말할 정도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카메라 동선과 배우들의 합을 보면서 갑자기 ‘컷’을 외쳐야 하는 감독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하니 민망한 상황도 있었을텐데 허삼관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하정우는 영화화를 포기하려는 선배의 안타까움을 알고 직접 주연과 감독을 겸하기로 했다. 그렇게 강한 매력과 재미를 보장한 <허삼관>은 그렇게 한국적 시대를 바탕으로 하정우와 하지원이라는 한국 대표 배우들의 호연으로 탄생되었다.
돈도 없고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않은 허삼관은 허옥란에게 한눈에 반한다.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허삼관이 미녀 허옥란을 만나기가 그리 쉬울까. 게다가 허옥란에게는 이미 하소용 이라는 남자가 있기 때문에 허삼관이 허옥란을 취하는 일은 편하게 갈 수 없다. 하지만 허삼관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곳에서 터진다.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는 뚝심과 밑도 끝도없는 저돌성은 허삼관만이 할 수 있는 무식한 진심이니까.
결국 허옥란을 취한 허삼관은 일락이, 이락이, 삼락을 낳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역시 버리지 못한 성격을 그대로 가져가며 아들들과 같이 친구처럼, 또는 근엄한 아버지처럼 지낸다. 하지만 허삼관의 마을에는 점점 일락이가 하소용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고 이 흉흉한 소문에 허삼관은 혈액형 검사를 발표하면서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허나 그 결과는…
영화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볼거리를 충분히 보여준면서 후반부로 들어가며 아버지, 가족, 혈육, 그리고 인간의 인류애로의 폭넓은 사상으로 향한다.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전쟁 후의 고단한 대한민국을 통과하면 그렇게 자식들을 키워왔고 그 시대가 남긴 역사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았다.
<허삼관>보다 좀더 일찍 개봉한 <국제시장>은 공교롭게도 이 시대의 아버지를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준다. 독일 광부, 베트남 파병, 이산가족찾기 등 60, 70, 80년대의 역사를 아버지라는 이름의 인물을 통해서 가족의 개념을 가슴 속 깊이 새겨준다. <국제시장>이 국가 정세와 함께 하는 인생 역정을 담았다면 <허삼관>은 좀더 가족과 자식에게로의 시선을 볼입한다. 그만큼 허삼관은 시대배경보다는 가족에 무게를 두었고, 따라서 ‘허삼관 매혈기’라는 원제에서 ‘매혈기’를 떼어내고 ‘허삼관’으로 단축시킨 건 그런 의미에서 좀더 축약적이다.
11년간 키워온 아들이 남의 자식이라 걸 알았을 때 처음부터 온힘을 다해 키워온 부모의 입장을 생각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소설 속에서나 이야기거리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삼관>은 그런 공상을 현실적으로 가져다 두었다.
낳은 정과 키운 정 사이에서 허삼관은 일락이만 빼고 이락이와 삼락이만 외식을 데리고 가거나 아무도 없을 땐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하는 등의 쪼단한 남자의 뒷모습을 유머처럼, 혹은 역설처럼 보여주면서 혈육의 의미와 함께 살아온 10년 세월의 의미를 구분없이 부여해준다. 내가 종달새의 왕이냐고 되묻는 허삼관의 모습은 아마도 후반부 애정어린 결말로 향하는 길목에서 허삼관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진면목이 아닐까.
하지원, 성동일, 조진웅, 김성균, 이경영 등 충무로의 대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며 유려한 시대극의 참맛을 보여준 <허삼관>은 하정우의 감독 이력을 한층 올려줄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고 <군도 : 민란의 시대> 이후로 아버지역으로의 진입에 부담스럽지 않은 과정이 되는 영화가 될 것이다. 그의 부단한 노력과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허삼관>은 2015년 겨울 따뜻한 가족 영화로 오래 기억될 힘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하소용으로 나온 민무제의 숨은 매력을 보석처럼 숨기고 있다. 독특한 분위기의 인상깊은 페이스로 하정우, 조진웅, 김성균, 성동일 등 기존의 강인한 캐릭터로 인식되어 온 배우들 사이에서 전혀 빠지지 않는 무게감을 선보이고 있다. 민무제의 다음 영화는 아마도 그런 분위기에 걸맞는 스릴러이거나 또다른 시대극일 것 같은 예상이다.
구경거리 많은 영화 속 배경들과 감칠맛 나는 캐릭터들의 향연에 남은 겨울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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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영화 속에서 웃음과 감동을 얻고 싶은 관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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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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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가 위화의 베스트셀러 ‘허삼관 매혈기’를 스크린에 옮긴 <허삼관>은 희극적인 상황의 저변에 깔린 서민들의 비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한 원작과 달리 <허삼관>은 1950~60년대 충청남도 공주를 배경으로 한다. 먹고 사는 것이 전쟁인 서민의 삶과 애환은 시대적, 지리적 배경을 막론하고 짙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허삼관>은 전반부 허삼관에게 벌어지는 해학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웃음을 유도하는데, 토라진 듯 내뱉는 허삼관의 대사와 인물들의 과장된 행동이 반복될수록 웃음의 농도는 낮아진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허삼관을 둘러싼 상황은 우습다기보다 애통하게 느껴지는데, 그 과정에서 오는 페이소스는 진하다. 가족에게 등 돌리고 혼자 우는 허삼관의 측은한 모습과 돌덩이를 손에 쥔 채 폭력을 휘두르는 일락의 불안한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상황 아래 숨겨진 인물들의 서글픈 형편을 입체적이고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사소한 반항만을 시도하는 무기력한 인물들의 모습 또한 더없이 안타깝다. 피를 팔아 모은 지폐가 바닥에 흩어질 때 온 몸으로 지폐를 끌어안는 허삼관과 그 위로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모습을 직부감으로 담아낸 장면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야 했던 가난한 아버지의 처절함이 가슴 깊숙이 박힌다.
2015년 1월 9일 금요일 | 글_최정인 기자 (jeongin@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