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
2015
과거로 돌아가보는 일은 그 시절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름답고 순수하고 또한 순진하기까지한 일들에 웃음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현실은 각박하고, 살기 어렵고, 딱딱하고 인간관계는 거칠고 서먹한 이유가 단순히 과거로부터 너무 멀리와서일까? 왜 우리는 옛날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TV방송과 음악과 영화들을 보면 마치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듯 그런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열심히 데려다 눈앞에 진열해준다. 최근 90년대의 화려한 시절을 기쁘게도 소환해왔던 무한도전의 '토토가'는 그런 면에서 지금 2015년대를 사는 한국인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90년대는 IMF가 오기전까지는 문화 전반이 발전하던 시기였고 삐삐로부터 태동되는 휴대통신과 PC통신의 확대로 기존의 방송 문화와 정보교류가 확대되던 때였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문화는 최대로 증폭되었고 문화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며 대중가요 앨범이 100만장이상 판매되는 때이기도 했다. 그런 멋진 시절을 돌아볼 시간을 준 토토가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지금 시간이 지나서도 그 때의 환호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응답하라 1994>는 그런 90년대의 이야기를 최대한 끌어서 만든 집약체 드라마였다. 1994년을 부르는 제목처럼 드라마는 온통 90년대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사람들은 충분히 동감했으며 그 시절 그때의 노래는 다시 뮤직 차트에 고스란히 상위권에 올라서 흥얼거리게 되었다. <응답하라 1997>보다 더 이전으로 올라간 <응답하라 1994>는 더 90년대를 파고 들었고 딱 20년전의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대변해주었다.
<건축학개론>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성인이 된 인물과 90년대 대학생의 사랑의 연결 고리를 그대로 가져다 준 수작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고, 우리는 한번쯤 짝사랑을 했기 때문에 90년대의 사랑이야기에 웃고 그리워할 공간이 충분했다. 그렇게 이어지지 못한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짝사랑이 결혼까지 이어진다면 오히려 모든 추억은 무너질 것이라는 위안도 그 시절을 추억하는 마음 속에는 그리 위안이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번엔 90년대와 80년대를 뛰어넘어서 70년대까지 넘어간 사랑이야기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쎄시봉, 그 시절의 음악감상실이었던 쎄시봉은 지금의 네이버 뮤직이고 뮤직탱크이며 인기가요였다. 당시 음악이란 하나의 젊은 상징이자 그 시절을 견디는 힘이었고 팝과 더불어 한국 젊은이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지금은 거의 기타를 치지 않지만 70년대와 80년대까지 보면 기타를 친다는 것은 지금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은 필수 휴대품목이었을정도.
그런 쎄시봉의 세 친구, 송창식, 윤형주, 오근태는 한 여자 민자영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다가도 어느새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법이라, 서로들 마음 속의 진심을 표현하지만 민자영은 별로 그럴 마음이 없는 새침떼기였다. 그렇게 젊은이들은 당대 최고의 가수로 발돋움하기 전 어울리면서 추억을 쌓지만 민자영에 대한 연모가 곧 노래를 하는 의미를 가지는 오근태에게 민자영의 결혼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트리오는 듀엣으로 되었고 이후 각자 갈 길을 가는 시절을 보내게 되다가 해후를 맞이하는데…

사극처럼 기록물에 의존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쉬울지도 모른다. <광해>처럼 기록에 빠진 7일의 의문에서 출발하여 상상을 발휘하거나, <상의원>처럼 당시의 궁궐한 부서를 상상하여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은 이야기꾼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저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현존하는 인물들이 있고,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야기 서사 구조를 변형하려는 것은 어쩌면 조금 위험하거나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위태로움이 있다.

그래서 <쎄시봉>은 오근태(정우)라는 가상의 인물을 취한다. 실제 인물이 아닌만큼 이야기 구성에 자유롭다. 그리고 쎄시봉의 인생 역정을 설명하는 기폭제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홀연 자취를 감춘 이유에 대해서 끝까지 입을 닫는 그의 연정은 민자영을 주저앉게 하고 친구들이 버텨온 세월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훌훌 털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지금 쎄시봉이 어떻게 80년대를 지나왔고 90년대를 보았으며 2000년대를 건너왔는지 넌지시 알 뿐이다.
송창식의 노래와 윤형주의 음악을 늘 TV에서 볼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11시쯤 하는 예능 오락프로에서 토크를 벌이는 모습을 가끔, 아주 가끔 보며 그 때의 이야기를 엿들을 뿐이다. 하지만 민낯으로 찾아온 70년대의 이야기에 오근태는 그 시대를 건너 뛰어와 지금 바로 2015년에 나타난 청년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민자영이 오근태의 고향에 찾아왔을 때 환하게 웃으며 반기던 바로 그 오근태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쎄시봉을 보며 반기는 감정과 견줄만 하다.

<응답하라 1994>에서 강한 인상을 주며 무명을 떨친 정우는 이 영화 <쎄시봉>에서 흔히 말하는 포텐을 터뜨린다. 송창식이나 이장희, 윤형주처럼 마치 실제 살아있었던 인물처럼 펄펄 살아 움직인다.
극 초반의 여러가지 음악들과 70년대 풍경에 묻혀서 나른나른했었다면 극 후반으로 갈 수록 치열해지는 영화의 힘줄은 정우에서 비롯되어 정우의 페이스대로 향한다. 젊은 오근태 정우와 지금 오근태 김윤석은 한 인물이지만 지금 오근태는 사라지고 오직 젊은 오근태만 영화 속에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다.

<쎄시봉>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국제시장>은 쎄시봉의 시대보다 더 앞서서 내려갔고 한국전쟁부터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마도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한동안 유행일 것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아무리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을 기억한다고 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그 시절에도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었다면, 지금도 역시 그런 순수한 사랑과 우정과 속 깊은 사색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마음들이 이어져 있을 때 지금으로부터 또 20년, 30년이 지나면 2010년대를 그리워하는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포크송을 지금 들으면 다소 촌스럽다고 느껴진다면 지금의 후크송이나 걸그룹 음악들이 20년 후에는 어떻게 느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