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가의 기적
★★★☆ 마음껏 웃어라, 웃은 만큼 슬플 것도 감당하면서...
재개발의 상징처럼 돼버린 말, ‘서울 달동네’. 이 말은 중의적이다. 산업화, 근대화가 신속하게 이루어져 으리으리한 건물들과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서울에 달동네가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어떻게 해서든 깨뜨리려 기를 쓴다. ‘서울 달동네’에서 ‘달동네’를 기어코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완벽한 대한민국 수도로서의 서울이 완성될 수 있고, 신식 문명을 1번지로 누리는 서울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다.
영화 속 서울 달동네 ‘청송 1번가’ 사람들도 똑같은 신세에 처한다. 재개발이 코앞이고, 건설사 용역직원으로 고용된 깡패들에게 지장을 내주어야 합의금이라도 조금 더 챙길 수 있다. 달동네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몰라서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결국 이 곳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는 것, 그들이 더 잘 안다. 하지만 자기 몸 하나 뉠 공간에 대한 애착을 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저항해 보고 싶다. 별 볼일 없는 집이지만 몸둥아리 빠듯하게 뉠 방 한 칸이지만 그게 그 사람들에게는 전부이기에 더 붙잡고 싶고,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재개발 합의를 받아내기 위해 달동네에 2주간 정착하기로 한 필제(임창정)는 첫 날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지구방위대 전사, 일동(박창익), 이순(박유선)이가 길을 막고 동네를 수호하고 복싱하는 명란(하지원)은 화장실 문을 벌컥벌컥 열어젖히는 것이다. 필제는 재개발에 합의하는 지장을 받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지만 동네 사람들의 기세가 깡패 못지않다. 돌아오는 건 매질과 욕설뿐. 일단 숨 돌리고 이 동네에 적응하기로 한다.
한편, 명란은 아버지에게 챔피언 벨트를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복싱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가고, 일동과 이순이는 위암을 앓는 할아버지를 위해 토마토를 화분에 심는다. 명란의 동생은 매일 컨테이너 박스위에서 날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선주(강예원)는 네트워크 마케팅, 일명 다단계를 통해 성공하고자 눈에 불을 켠다.
<1번가의 기적>은 결말에 다다르기 전까지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된다. 필제를 비롯해 주조연의 캐릭터가 모두 살아있고 각각의 사연도 저마다의 웃음과 슬픔이 잘 배어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도록 페이소스가 그 안을 채운다. 토마토를 심으며 티격태격하던 일동과 일순이 가게 앞에 떨어진 토마토를 하나 주었다가 도둑놈으로 몰리고, 아파트에 사는 척하던 선주가 태석의 방문에 화들짝 놀라 화장실 슬리퍼를 급하게 챙겨 싣고 조깅 중이라며 뱉는 거짓말에는 안타까움이 일어난다.
이런 청송 1번가 사람들의 생활을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물이 바로 필제다. 윤제균 감독은 그간 낯선 환경에 깡패를 심는 일을 일삼아 왔다. 두사부일체의 계두식(정준호)을 학교에 심어 놓은 것처럼. 이번에는 필제가 그 주인공이다. 필제의 임무는 엄연히 동네 사람들의 재개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 말로 안 되면 무력으로라도 그들을 제압해야 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하지만 그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동양 챔피언이 되겠다고 기를 쓰는 명란, 할아버지의 위암을 낫게 하겠다며 방울토마토를 화분에 심는 일동, 이순 등. 필제는 계두식과 같이 이들과 어울리며 정을 쌓고 자신의 임무는 잊어버린다. 착한 본성으로의 회귀, 잠깐이지만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 필제를 사람들 안으로 묶어 둔다.
착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결말부에 다다르면 전개 속도는 더뎌지고 이야기는 다소 작위적으로 흐른다. 컨테이너 박스 위에서 주구장창 날기를 시도하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올라 진짜 날아보려하고, 필제는 무너져가는 집을 바라보며 우는 아이들을 달래 “헌집 줄게, 새집 다오”노래를 부르게 한다. 관객에게 감동을 강요하는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더 아쉬운 건 이런 장면이 참 긴 시간동안 엮여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무너지는 집을 바라보며 울음 섞인 노래를 부르고, 필제는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원들에게 저항한다. 같은 시각, 명란은 동양챔피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링 위에 서있다. 그들이 아무리 기를 써도 가난의 구제에서, 약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된다. 때론 매우 노골적이어서 해석의 상상을 방해할 정도로 강렬하게.
<1번가의 기적> 에필로그에는 1번가 사람들이 꿈꿨던 작은 소망이 녹아있다.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이지만 밉지 않다. 그들에게 그런 밝은 미래를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착한 동화 같은 영화 <1번가의 기적>. 두 번 보니 웃기기보다 슬프다. 아니 웃은 만큼 슬프다.
 |
|
 |
임창정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해운대> 윤제균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
|
| 글: JK SOUL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가난은 청송1번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현실적 잠언이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요즘 세태에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그들에게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며 제집에서도 나가라고 강요하는 무례함이다. 청송1번가의 재개발을 위해 철거 전까지 계약서에 도장을 채우는 임무를 띠고 필재(임창정)는 달동네를 오른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이 주민들을 몰아내고자 하지만 욕을 달고 다니는 거친 입과 달리 심성이 약한 그에게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소박한 주민들의 삶은 밟힐 수밖에 없다.일단 관객을 제압하는 것은 웃음이다. 육두문자가 남발되는 필재의 촌철살인 같은 대사와 상황을 인지하는 어린 아이들의 엉뚱한 해석은 관객의 웃음을 자극한다. 풍전등화처럼 여겨지던 청송1번가에 수돗물이 쏟아지고 인터넷이 개통될 때 그들에게 찾아올 기적에 대한 기대감이 고취된다. 철거에 앞장 서야 할 필재가 자신도 모르게 동네사람들과 동화되고 어린 아이들을 보살필 때 기적에 대한 훈훈한 믿음이 강림한다. 하지만 이는 후반부에 심화되는 비극의 대조군으로써 실체를 드러낸다.착한 영화의 계보를 이을 것만 같던 이 작품이 가난에 찌든 달동네에 거짓말같이 내려질 것 같은 기적을 외면하는 순간 오해의 궤도를 이탈한다. 그 상황의 처절함을 가중시키는 것은 극의 중심에 선 어른들이 아닌 주변부 아이들이다. 필재의 마을 진입 때부터 그의 주변에 머무르는 일동(박창익)과 이순(박유선)은 극의 화자역할을 한다. 어린아이들의 순박한 무지함은 상황의 인지가 서투른 탓에 관객에게 비극을 심화시켜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이 가난이라는 대물림 안에서 겪는 고통이 구체화될 때 그 통증이 고스란히 넘어온다. 어린 아이들이 도둑으로 몰려 뭇매를 맞을 때, 그 작은 몸 위로 토마토가 부서져 내릴 때 야박한 세상에 대한 원망 같은 눈물이 함께 흐른다. 조폭들이 들이닥쳐 폭력을 휘두르며 1번가 주민들의 지장을 강탈할 때 영화는 비로소 현실에 눈을 뜬다. 중장비에 집이 무너지고 그에 절규하는 주민들이 각목에 쓰러질 때 냉정한 현실 앞에 숨을 죽여야 한다. 그것을 바라보며 울어야만 하는 아이들로부터 냉혹한 현실이 감지되고 필재의 몸부림이 무력하게 짓밟힐 때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던 기대감은 산산이 부서진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되지 못하는 명란(하지원)의 다운만큼이나 상황은 무력하다. 명란의 아버지(정두홍)에게 명란의 짐이 되는 삶보다는 죽음을 권유하는 이관장(주현)에게서 우리는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결국 그들의 비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삼자일 뿐이고 그 비극에 어떤 일조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관찰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관람은 현실의 방관과도 같은 행위로 이해되기에 관객의 행위는 단지 영화만의 허구로 인식되지 않는다. 1번가의 기적은 처절한 상황의 거짓말 같은 극복을 이루는 대신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행위 자체다.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노래 부르게 하는 필재의 행위는 그것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물려주고 싶은 소망이다. 명란이 챔피언 벨트를 꿈꾸는 것도 필재가 무의미한 반항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말미에 배치된 해피엔딩은 다소 작위적이지만 그것이 밉지 않은 것은 결국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이 비정한 세계에 대한 순응이 아닌 운명 같은 시련을 이겨낸 자들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영화적 완성도와 무관하게 관객이 보고자 하는 갈망에 대한 배려이다.
2007년 2월 16일 금요일 | 글_민용준 기자 (kharismania@mov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