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
The Queen of Crime , 2015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안재홍이 주연한 영화 <족구왕>이 의외로 무척 재밌다는 사실을 본 사람은 공감하게 되어 있다. 소위 비인기종목이라는 운동 레벨에도 끼지 못하는 언더그라운드 운동인 족구를 주제로 이렇게 재밌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숙련된 실력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완성도도 높아서 자꾸 영화의 장면들이 생각나게 하는 매력도 있다.
그렇게 <족구왕>을 재밌게 본 관객은 반드시 이 <범죄의 여왕>을 봐야 한다.
같은 감독의 인장이 깊게 새겨진 이 영화의 캐릭터와 스토리 운영이 더 발전되고 세련되어 깊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차분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장점도 그대로이다.

지방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양미경(박지영)은 소위 야매라고 불리는 미용불법시술도 시행하는 말 그대로 아줌마이다. 그녀는 서울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 익수가 삶의 보람이자 인생의 의미이다.
익수가 사는 오래된 맨션에는 고시생들이 다닥다닥 모여 살지만 무언가 음습한 분위기와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인물들이 많은 곳이다. 어느날 익수의 집에 수도요금이 120만원이 나와서 엄마 양미경에게 익수는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갑작스럽게 120만원의 수도요금 나왔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일어났다는 증후이니, 예민한 촉을 가진 엄마 양미경은 상경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독 탐정 수사에 착수한다. 아줌마 특유의 외향적 성격에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점점 사건 가운데를 향해 가는데, 투덜거리는 개태(조복래)가 이 수사에 합류하게 된다. 과연 이 엉성한 두 조합이 사건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을까?
스릴러에서 수도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단서는 피를 닦아 범죄를 숨기려는 사후 범행을 떠올리게 하는 적합한 장치이다. <이웃사람>에서 살인마 류승혁이 그렇고 <악마를 보았다>에서 장경철이 수돗가에서 피를 씻어내는 장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수도요금이 과다하게 나왔다는 설정 하나로 영화는 시작한다. 하지만 그 시작을 알리는 주인공이 시골 미장원에서 불법미용시술을 일삼는 미장원 아줌마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고 해결 방법이라면 의외의 한 수이다. 여기에 영화의 재미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편 이 맨션은 <이웃사람>처럼 실제 일반인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가 아니라 무언가 꼼꼼하게 숨기는 비밀들과 각자만이 알고 있는 사연이 숨겨진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로테스크한 냄새를 잔뜩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시라는 시험에 빠져든 인간의 좌절과 불안감과 스트레스는 이들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에까지 확장되어 적용된 느낌이 들고, 그들의 캐릭터도 또한 매우 특이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직접 고시를 봐야 하는 고시생의 입장이지만 고시 제도 자체에 더 몰두하고 있는 덕구가 실상은 매우 잘 사는 부잣집 아들이라는 반전, 그리고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토리 히키코모리인 진숙이 사건의 전반 사항을 다 알고 있으면서 게임만 해대는 통에 답답함을 유발하지만 그 전에 덕구와의 썸이 있었을 것 같은 설정들은 이 영화가 단순한 스토리로 애를 먹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실제 이 둘의 출연 장면은 의외로 재밌고 유쾌하다.

하지만 제일 재밌고 반가운 박지영을 만나는 시간은 너무나 행복하다. 여전히 섹시하고 매력적이며 표정은 풍부하다. <성난 변호사>에서 끝까지 얄미운 태도로 밉상을 보였다가 <질투의 화신>에서 아나운서 국장이라는 묵직한 직함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코믹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은 이 단독 주연 영화에 전혀 부족하지 않는 무게를 보여준다.
특히 개태와의 케미는 마치 <탐정 : 더 비기닝>의 권상우와 성동일을 보는 듯 하고 <탐정>의 아마추어 버전, 혹은 아줌마 저번으로 봐도 딱 맞다. 소처럼 순한 눈을 가지고 있으니 개태라고 하지 말고 소태라고 하거나, 휴지는 다른데 잘 쓰지 않냐는 스스럼없는 멘트들은 아줌마이기에 가능하기도 하고, 엄마해줄께 라고 말하는 대사는 엄마와 아들이라는 관계, 아줌마와 이웃 아이라는 설정이 더 이상 비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즉, 영화의 분위기는 양미경이 쥐고 있다는 뜻이다.
거칠고 무식한 듯 하지만 묵묵하게 미경과 함께 하는 개태역의 조복래는 이 영화를 전환점으로 아마 다음 영화에서는 <쎄시봉>의 송창식처럼, 혹은 <차이나타운>의 탁이처럼 이미지를 번지게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조복래만의 캐릭터로 분해주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스포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403호에 사는 강하준의 모습은 완전 악인도 아니고 오락가락하는 일반인도 아닌 극히 현실적인 인물 모습으로 보여져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현실로 돌이켜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준다.
<올레>에서 13년동안 사법고시만 준비하다가 40살이 되기 전,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삶을 버리려하는 수탁이(박희순)의 모습은 여기 하준의 모습과 딱 겹쳐진다. 사법고시 제도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청춘이 다 날아간 수탁이 결국 제주도까지 내려갔다가 바닷가 절벽에서 뛰어내릴까 주저주저하는 장면은 강하준이 층간 소음으로 이웃과 다투는 현실과 매한가지이며 이혼을 종용하는 아내와의 다툼은 40대 남자의 오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스릴러와 드라마, 그리고 코미디를 곳곳에 배치해두고 큰 무리 없이 스토리를 이어가는 이 영화 <범죄의 여왕>은 <족구왕>처럼 아마도 계속해서 틈틈이 영화 리뷰들 속에서 언급될 활용 텍스트로 남을 것 같다.
블록버스트들 사이에서 의외의 재미를 찾고 아쉬움 없는 2시간 관람을 보장받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추천하는 영화이다. 특히 족구왕 안재홍의 등장은 영화가 주는 또하나의 재밌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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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왕>을 재밌게 본 관객
코믹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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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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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여왕>은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에 이요섭 감독 특유의 유머와 현실감을 쫀득쫀득하게 뒤섞은 현실적 코미디다. 양미경은 폭력 남편의 전형 앞에서는 쫄지 않는 강단이 있으면서도 아들 또래의 남자들에게는 무한 오지랖과 애정을 선보이는 전형적인 ‘아줌마’다. 박지영은 그 캐릭터에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패션이라는 반전 매력을 더한다. 이야기는 그녀가 남루한 고시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전말을 밝혀 나가는 과정이다. 추적을 따라가면서 목도하는 현실의 일면은 꽤 쌉싸름하다. 120만원이나 청구된 수도세의 근본 원인을 쫓다 보면 불법 개조된 탓에 한 수도가 두 방으로 갈라져 들어가있는 고시원의 실상과 마주하게 된다. 히키코모리처럼 방에 박혀 도통 밖으로 나서질 않는 젊은 고시낭인 ‘하준’(허정도)과 ‘진숙’(이솜)의 민낯을 보게 되는 건 물론이다. 그곳을 관리하는 젊은 건달 ‘개태’ 역시 어떤 청춘의 자화상이다. 복학생이라는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훑어냈던 <족구왕>의 이요섭 감독의 눈길은 이번 작품에도 담겼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그의 연출 속에서 위트 있게 잘 버무려졌다. 결론은 좀 싱겁지만, 아줌마라는 존재가 스릴러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영화는 자기만의 색깔을 확보했다.
2016년 8월 18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 (pgot@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