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Seoul Station , 2016

한국형 좀비영화로 천만 관객을 끌어 모은 <부산행>의 프리퀄 작품. <부산행>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좀비 바이러스의 시작을 그려냈다. <부산행>에서 기하급수적으로 퍼진 좀비 바이러스는 서울역의 노숙자로부터 비롯되었다. 수많은 군중으로 인해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고, 이 바이러스의 감염자가 부산으로 가는 KTX열차에 탑승하면서 <부산행>의 지옥도는 펼쳐진다.

KTX열차는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도착하는 데 1시간 50분, 대략 2시간이 걸린다. 열차가 출발할 때 서울역은 좀비들이 점령했고, 승객들은 열차 안에서 싸우며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중간지점이었던 대구는 이미 좀비들로 인해 초토화된 상태였다. 생존자들은 그대로 부산으로 향한다. 버려진 대구, 그리고 모든 일의 시작이 된 서울. <서울역>은 바로 그 초토화된 도시의 이야기다.

집 없이 떠도는 더러운 노숙자가 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고 냉정하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지만, 그를 도우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최초의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그는 목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그리고 이내 좀비로 변한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좀비 바이러스는 곧 수십, 수백, 수천만으로 번지고 서울역은 전대미문의 지옥도로 변한다. 그 와중에 가출소녀 혜선은 좀비들에게 쫓기며 아버지와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혜선은 가출소녀다. 집에서 나온 후 창녀촌에 머물렀다. 지금은 남자친구 기웅을 만나 서울 시내의 한 여인숙에 기거한다. 그러나 숙박비를 낼 돈이 없어 생활은 열악하다. 심지어 기웅은 부족한 돈을 벌기 위해 혜선에게 성매매를 요구하고, 혜선은 거부한다. 그렇게 혜선은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버려진다.
석규는 혜선의 아버지다. 그는 오래전 집을 나간 딸을 찾고 있다. 기적적으로 혜선의 남자친구와 만났지만, 이미 기웅과 혜선은 함께 있지 않았다. 석규는 기웅을 다그치며 딸을 찾기 시작한다. 좀비로 들끓는 서울, 자신의 목숨조차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딸을 찾아내려는 석규의 노력은 눈물겹다.

<부산행>을 본 관객이라면 <서울역>의 결말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비떼를 피해 도망치는 주인공을 지켜보고 있자면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된다.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움직임과 맞닥뜨렸을 때, 개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너무나도 약하고 의미 없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다. 비록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아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도.

연상호 감독이 <서울역>에 담아낸 대부분의 장면들은 각 계층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다. 주인공이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가족들과도 분리된 소녀라는 점, 일반 시민과 좀비들이 뒤섞이는 상황에서 자신의 책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는 공무원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이들은 전혀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은 우리 사회 전반에 펼쳐져 있는 공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직업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도덕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했다면 작품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마음은 조금이라도 편했으리라.
<부산행>의 프리퀄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두 작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서울역>은 <부산행>에 비해 짜임새가 부족한 스토리, 지나치게까지 느껴지는 사회 비판 등으로 관객들의 불편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작화와 배우들의 입모양이 맞지 않아 작중 몰입을 떨어뜨린다는 단점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비판적인 작품들을 주로 다뤄온 감독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부산행의 프리퀄이 아니라, 아예 오리지널 작품으로 등장했다면 훨씬 강렬한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오리지널이 각광받는 작품일수록 후속 작품은 전작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서울역>은 분명 <부산행>과의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전작 <돼지의 왕>과도 비슷한 점이 보인다. 또한 <서울역>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같은 대사를 반복하거나, 진행 중인 내용과 관계없어 보이는 요소가 반복되어 등장하는데, 이는 결국 감독이 말하고자 한 궁극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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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스릴러, 좀비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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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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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린 서울역의 뒷골목. 모텔에 기거하는 청춘들과 노숙자의 굽은 등, 초점을 잃은 눈은 화려한 서울역 이면의 그림자를 그려낸다.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에 선행된 사건을 다룬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연상호 감독의 어두운 세계관을 한층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부산행>에 대중성을 더했던 부성애나 인류에 대한 희망은 빠지고, 사회에 대한 비관적 시선이 덧입혀졌다. 그 동안 작품을 통해 줄곧 사회 비판의식을 강하게 드러내왔던 감독은 이번에도 불법집회 장면을 통해 현재 한국의 사회적 공기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부산행>에서 좀비를 이미 한차례 만나 학습했던 탓에, 좀비물로서의 쾌감은 다소 떨어진다. 다소 느린듯한 애니메이션의 운동방식도 조금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감독의 장기인 물 흐르는 듯한 스토리텔링이 이를 만회한다. 영화는 결국 좀비라는 장치를 통해 사회의 배타성과 잔혹성을 드러낸다. 무한 증식하는 좀비를 피해 출구가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연작영화 <서울역>과 <부산행>을 통해 만들어낸 연상호식 세계관이다.
2016년 8월 12일 금요일 | 글_류지연 기자 (jjiyeon88@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