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노래하는 음유시인’ 밥 딜런
-‘밥 딜런’은 75세의 나이로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 훨씬 전부터 몇 십 년 간 대중음악과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그의 노래 가사들은 한 편의 시처럼 상징적, 서정적이고 사람들의 내면을 뒤흔들며 감동을 주는 성격의 것들이다.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그는 1961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로 거처를 옮겨 당시 유일하게 정직한 노래라고 평가 받던 ‘포크’ 장르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시적 가사로 불러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는 1960년대 초반 혼란한 사회, 정치적 상황 속에서 흑인 인권 신장과 베트남전 반대를 외치며 변화를 촉구하던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그리하여 다양한 시위에서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되었다. 이렇듯 사람들이 밥 딜런의 노래와 함께 정치,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려 한 반면, 밥 딜런은 노래가 노래 이상의 힘을 얻는 일이나 사람들이 자기에게 갖는 기대와 정형화된 이미지에 저항하려 했다. 사회저항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스스로 원한적 없었다고 말하던 그는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발’에서 전자기타를 들고 일렉트릭 사운드의 포크 록을 선보이며 수많은 포크 음악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그는 배신자, 변절자로 불렸지만, 이후에도 비틀즈 등의 밴드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음악적 변신을 성공적으로 이어갔다. 1966년에는 오토바이 사고를 크게 당했다면서 잠적하기도 하였고, 1960년대 말에는 다시 포크, 컨트리 스타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1970년에는 이혼, 양육권 소송 등에 휘말려 있었고, 1973년에는 1880년대의 카우보이 ‘빌리 더 키드’와 ‘팻 가렛’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관계의 종말’ 등 몇 편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는 기독교에 심취하여 가스펠 음악을 선보이며 전도사를 하기도 했다.

6개의 캐릭터로 조명한 변덕스런 삶
-이렇게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변신을 거듭해온 규정하기 어려운 인물이 ‘밥 딜런’이다. 그의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면서도 그가 아닌 인물들을 통해 밥 딜런의 핵심적 특질인 그 ‘규정 될 수 없음’을 표현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우선 영화는 6명의 실존했거나 허구인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현재 혹은 과거를 살아가는 모습을 쉼 없이 교차시켜 보여준다. 각 인물들이 처한 시대, 화면의 분위기나 색채, 화법과 시간이 흐르는 구성조차 제각각이다. 영화는 이렇게 어느 캐릭터 하나도 쉽게 실체를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들어, 한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엔 꽤나 분열적이고 변덕스러운 나머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밥 딜런의 자아와 삶을 효과적으로 투영한다.

그런데 6개의 개별적으로 보이는 이 인물들은 사실상 모두 밥 딜런과 관련성을 가진다. ‘벤 위쇼’가 연기한 ‘아르튀르 랭보’는 딜런에게 외모적, 시적으로 영감을 준 실존했던 시인, ‘우디 거스리’는 딜런이 우상으로 삼았던 전설적인 포크 뮤지션, ‘리차드 기어’가 맡은 ‘빌리 맥카시’는 딜런이 단역을 맡았던 영화 <관계의 종말>에 나온 실존인물이자 자유를 찾아 은둔하는 그의 면모를 담았다.
여기까지가 실존 인물들이라면, ‘크리스찬 베일’이 맡은 허구적 인물 ‘잭 롤린스’는 1960년대 초 시대정신이 담긴 노래로 저항가수로 추앙 받다가 포크 신을 떠나 종교에 심취했던 딜런의 삶의 일부를 조명하며, ‘히스 레저’가 연기한 ‘로비 클락’은 인기를 얻은 뒤 외도로 인해 아내와 이혼하고 양육권 싸움을 했던 그의 사적인 삶을 그린다. 한편 ‘케이트 블란쳇’은 포크 가수였다가 일렉트릭 록으로 전향한 뒤 비난을 받고 오토바이 사고 이후 잠적한 ‘쥬드 퀸’을 연기하며 밥 딜런과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콜라주 기법으로 완성된 밥 딜런의 초상
-이렇듯 <아임 낫 데어>는 6개의 개별적 캐릭터들을 ‘규정적 이미지에 대한 저항’, ‘방황과 변화’라는 공통된 속성 및 밥 딜런의 노래를 접착제 삼아 콜라주처럼 이어 붙인 뒤, ‘밥 딜런’이라는 제목을 단 회화 작품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할 복잡하고 대담한 작업이며, 곳곳에서 팬이 아니면 들어본 적도 없을 밥 딜런의 노래나 인터뷰 내용이 각 인물의 BGM이나 대사로써 인용된다.
하지만 영화는 팬들이 갖는 존경과 감사 혹은 실망과 비난의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밥 딜런의 인생을 판단하고 그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기고, 영화는 그저 한 인물과 그가 살아온 삶을 최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이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퍼즐 조각을 보는 듯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불친절한 화법이지만, 정의되지 않는 이해 불가한 인생이 밥 딜런이 여태 추구해온 삶이므로 어찌 보면 가장 정확한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밥 딜런을 이해하는 중심 열쇠, ‘쥬드 퀸’
-여러 캐릭터들 중 특히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 퀸’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밥 딜런의 조각이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이 덧없고 아슬아슬한 반면 불안과 분노 속에서 몸부림치며, 음악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지닌 쥬드는 1960년대 후반 밥 딜런의 초상이다. 남장을 하고도 이의제기가 불가능한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 덕분에 케이트 블란쳇은 이 연기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일렉트릭 록으로 전향한 변절자 포크 가수 캐릭터인 ‘쥬드 퀸’은 밥 딜런이 했을 법한 혹은 했던 말들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데, 여기서 관객들은 밥 딜런의 아티스트로서의 고민들, 그의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종적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그는 자신에게 질문을 퍼붓는 기자들에게 “노래들은 개인적 관심에 대한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 아니다.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야기꾼일 뿐. 포크 음악은 단어 일뿐”등의 말을 한다.

밥 딜런 또한 자신의 노래가 대중을 이끌고 변화를 촉구하는 정치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변질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비슷한 말을 했다. 그저 자신의 내면에 있던 생각과 감정을 자신 있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에게 이 혼란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길을 제시해주길, 선구자가 되어주길 바랐다. 쥬드처럼 그도 그 기대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방황과 불안에 떨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면서 살다간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배신자라느니 돈에 눈이 멀었다느니 하는 비난과 실패의 가능성을 감수하면서도 변신을 꾀한다.

팬들은 뒤통수를 맞고 분노했지만, 어떤 사람이 타인이 멋대로 만들어 낸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화를 내는 것은 원인제공자들의 적반하장이다. 또한 반전과 자유, 인권 신장과 사회 변화를 외치던 사람들이 한 개인에게 타인의 판단에 자아를 맡긴채 실체 없는 고인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며 이기심이다. 당시 사람들이 정치, 사회적 모순에 저항했듯, 그는 세상이 그에게 자꾸 씌우려고 했던 저항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규정적 자아에 저항하고자 했고, 그의 변신들은 대중의 이런 프레임화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물들이다. 밥 딜런에 대한 조각들로 가득한 영화 속에서, 이러한 메시지만은 쥬드 퀸을 통해 확실히 전달되며 안개 속에서 더듬어 찾던 밥 딜런의 얼굴을 보다 선명히 드러내준다.

<벨벳 골드마인>에서 <아임 낫 데어>까지
-감독 ‘토드 헤인즈’는 글램록의 대부 ‘데이빗 보위’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벨벳 골드마인>에서도 보위 없이 그의 삶을 투영했다. 그러나 <아임 낫 데어>에서 이런 방식은 <벨벳 골드마인>을 넘어설 정도로 과감하고 직접적이 되었고, 더욱 해체적인 동시에 편린들 속에서 인물의 핵심을 관통하는 날카로움은 깊어졌다.
대중이 만든 이미지나 시대적 요구 속에서 방황하는 스타들의 모습도 진화했다. <벨벳 골드마인>에서는 그 속에서 길을 잃다 사라져버린 후 결국 파멸의 길로 들어선 뮤지션을 그렸다면, <아임 낫 데어>에서는 끊임없는 자기 변화로써 이를 극복하려는 자유정신을 지닌 인물을 그려낸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타인이 제시하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물론 영화 <아임 낫 데어> 속에서 그 불굴의 인물은 ‘밥 딜런’이지만, 미래에 등장할 또 다른 청개구리 같은 예술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혹은 오늘도 “넌 이런 사람이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며 자신을 멋대로 관념 속에 가두고 기대에 부응할 것을 주문하는 타인에게 냉소를 지으며 거부를 표명하는 우리 중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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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가수의 삶이 궁금한 사람
밥 딜런이나 토드 헤인즈 감독에 관심있는 사람
실험적인 화법을 선보이는 영화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살길 싫어하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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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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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영국BBC방송은 ‘세상을 바꾼 대중문화’란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통기타 선율을 밑그림으로 삼아 나지막하게 흐르는 밥 딜런의 포크송은 겉으로 소박했지만 듣는 이를 안으로 요동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전쟁의 광기가 도사리고 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서 밥 딜런의 노래는 대중의 처참한 분노를 대변했고 그들의 삶에 일말의 위안을 안겨줬다. 물론 그것이 그가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극 초반, 스크린에 나열되는 문구-Inspired by the music & many lives of Bob Dylan-와 같이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의 음악과 많은 삶으로부터 얻은 영감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쥬드(케이트 블란챗)를 비추는 카메라 너머로 들려오는 나레이션은 그의 영혼이 안식을 얻었음을 선포하며 게걸스러운 대중이 그의 유물을 공유할 것이라 말한다. 그 이미지는 각각 시인(poet), 예언가(prophet), 무법자(outlaw), 가짜(fake), 인기스타(star of electricity)의 얼굴로 나열된다. 이는 <아임 낫 데어>가 밥 딜런의 육체를 재연하는 전형적인 전기영화가 아님을 표명하는 바이기도 하다. <아임 낫 데어>에서 등장하는 연령과 생김새가 각각 다른 6인의 이미지는 7가지 삶으로 호명된다. 그들은 각각 밥 딜런이 아니지만 그를 연상시키는 단면으로써 밥 딜런을 이룬다. 그들은 밥 딜런이면서도 밥 딜런이 아니다. 동시에 그 개별적 이미지들은 밥 딜런의 것이 아닌 ‘(게걸스러운) 대중’의 것임에 틀림없다. 그 이미지를 생성한 건 타인으로부터 추상적으로 인지된 밥 딜런의 초상들이다. <아임 낫 데어>는 타자화된 밥 딜런을 콜라주 하듯 배열하며 스크린에 수집한다. 그는 세상의 불의에 맞서던 정의로운 포크 싱어였지만 일렉기타를 든 포크의 변절자였다. 좀처럼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적 은둔자이며, 세상의 규격에 맞추길 거부하는 무례한 저항가였다. 그는 무력한 급진주의자였으며, 강건한 자유주의자였다. 영화는 이처럼 밥 딜런을 규정하던 다양한 세계적 시선 속에서 무심코 존재하던 밥 딜런의 조각들을 거칠게 조립한다. 물론 밥 딜런을 연상시킬 만큼 그와 근접한 이미지의 쥬드와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인물은 그의 삶 일부를 채취해내듯 낯설거나 그가 남긴 궤적을 통해 얻어지는 영감의 흔적처럼 막연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밥 딜런으로부터 발생한 것이거나 그를 만들어낸 근본이라 추측되는 것들이다. 하나같이 인물들은 밥 딜런을 향하고 있는 동시에 밥 딜런을 갈망하게 만든다. 예리한 추상과 철저한 해석으로부터 완성된 인물들은 밥 딜런과 현격하게 동떨어진 모습으로써 그를 완벽하게 배려한다. 심지어 밥 딜런의 이미지에 가장 근접한 쥬드가 여배우인 케이트 블란챗의 육체로 이뤄졌다는 점은 <아임 낫 데어>가 철저하게 인물들과 밥 딜런 사이에 괴리감을 형성시킴으로써 인물에 대한 주관적 시선들을 철저하게 객관화시키려 했음을 드러내는 징표와 같다. <아임 낫 데어>가 밥 딜런을 규정하지 않는 방식으로써 밥 딜런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이 영화가 진정 밥 딜런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미지로 구체화시킬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드넓은 단상들을 하나로 융합하지 않고 스펙트럼 그 자체로 펼쳐놓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아임 낫 데어>는 가장 규정하기 힘든 전기적 영화이자 밥 딜런이라는 불가해한 이미지에 가장 탁월하게 접근한 작품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 모든 규정을 거부한 밥 딜런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을 탁월하게 연상시킨다. 스크린에는 밥 딜런을 제외한 밥 딜런의 모든 것들이 담겨있으며, 그를 통해 관객은 밥 딜런이 존재하지 않는 밥 딜런의 영화를 통해 밥 딜런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이해’란 결코 정의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인지를 의미한다. 결국 <아임 낫 데어>는 한 인간에 대한 일방적인 시선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 한 인간을 완벽하게 재생한다. 그것은 너비가 불분명한 스펙트럼을 지닌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경의에서 비롯된 탐구라 할만한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이 영화의 캐스팅 경위도, 뛰어난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이 영화의 OST 역시도, 하나같이 그 경의를 위한 것이라 말하기에 손색없이 훌륭하다.
2008년 5월 29일 목요일 | 글_민용준 기자 (kharismania@mov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