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전투
La Battaglia Di Algeri , The Battle Of Algiers , 1966
소개할 영화 <알제리 전투>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한 드라마로 1962년 프랑스로 부터 해방된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를 제작하기 앞서 수 년간에 걸쳐 정보를 수집하고 실제 항전에 참가했던 시민과 군대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루어진 만큼 역사적인 사건에 사실적으로 접근하여 리얼리즘을 살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개봉된 후 베니스영화제 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는데 프랑스 에서는 정치적으로 논란거리가 될 우려가 있어서 5년간이나 상영금지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건의 의미를 따져보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이 영화는 1962년 알제리가 해방되고 4년이 지나지 않아 개봉될 정도로 서둘러 제작 되었지만 빠듯한 제작일정과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알제리전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미국에서는 테러에 대처하기 위해 참고하는 자료로 사용될 만큼 영화에 대한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특이한점 이라면 저항단체 FNL의 간부로 투옥된바 있는 실제인물 '샤디 야세프'가 극중 FNL의 전략가 '엘 하디 자파르도'로 출연하고 대부분의 인물들을 항전에 참가했던 일반 시민들로 기용하여 사실감을 살렸다는 것이다.

1957년 10월의 어느날, 나이든 반군 한 명이 프랑스 특공부대의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지도자인 알리의 은신처를 누설하고 만다. 은신처를 포위한 프랑스 군은 주민들을 모두 대피하게 하고 알리에게 투항을 하지 않으면 건물을 통째로 폭파 하겠다고 위협한다. 동료 두 명과 함께 벽장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할 운명에 처한 알리는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항쟁했던 지난 3년간의 일들을 회상한다.

무학의 야바위꾼 오마 알리, 1930년생 으로 1942년부터 1949년까지 공공기물파괴,문란행위,매춘알선,공무집행방해 등 수 없이 많은 죄를 저지르며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1949년 알제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중 알제리 해방을 외치며 단두대에서 사형 당하는 반군의 모습을 보고 해방투쟁에 참여하여 반군의 핵심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5년후 프랑스의 지배로 부터 해방의 날을 맞이하기 까지 그 운동의 시발점 역할을 해준 알리는 프랑스군에 끝내 투항하지 않고 버티다가 벽장속에서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이 영화가 매력적일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 영화로 착각할 만큼 장소나 인물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고 프랑스군의 참혹한 살육의 현장과 고문 장면들이 너무나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어서 잠시도 눈을 뗄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 작품을 프랑스 정부가 상영불가 판정을 내릴 정도로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은 이 영화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고 할수있다. 실제 전쟁터를 보는듯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뛰는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하였고 이 같은 의도는 흑백의 거친화면과 어우러져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을 완성 시켰다.

사실적인 영상을 완성한데 있어서 감독의 영향력이 크기도 하였지만 영화의 제작자이자 배우로도 출연한 '야세프 사디'의 공이 크다고 할수있다. 독립운동 당시 실제 지하조직을 이끌어 나갔던 인물로 기관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프랑스를 심판 하기보다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폭력의 위해성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를 뒷받침 하는 음향효과 또한 대단히 훌륭한데 테러를 감행하기 직전에는 심장을 요동치게하는 드럼소리로 장엄한 시작을 알리고 테러직후 참혹한 현장을 비출때면 진혼곡을 배경에 깔아 죽은사람들의 혼령을 위로하기도 한다. 국가의 독립과 국민의 자유를 위해 누군가가 급조한 국기를 흔들며 아랍특유의 음률로 자유를 외쳐대던 마지막장면은 영화 한 편을 기억하게 할만큼 긴 여운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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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역사의 아픔을 공감할수 있는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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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KANG ME JU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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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련 서적에서나 언급되던 영화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것도 1965년에 만들어진 흑백 필름이다. <알제리 전투>는 1966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국제영화비평가상을 수상했고, 1972년에는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UN상을 수상했다. 영화사 100년, 100편의 영화에 뽑혔고,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 형식의 극영화로도 유명하며, 급진적이고 선동적인 영화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정치영화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도 큰 영향을 받았다던 바로 그 영화를 15일부터는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1957년 10월, 알제리민족해방전선 소속의 반군 한 명이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해 결국 마지막 지도자 알리(브라임 하자드)의 은신처를 누설하고 만다. 은신처를 포위하고 알리의 비밀 공간에 폭탄을 설치한 프랑스 장교 마티유(장 마틴). 알리는 죽기 전 치열했던 지난 3년을 회상한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과 프랑스의 격렬한 테러 속에 죄 없는 아랍인 노동자가 프랑스 경찰을 죽인 살인자로 몰리고, 프랑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인 동네에 폭탄을 투하해 무고한 시민을 죽인다. 이에 알제리도 아랍 여인 3명을 프랑스 지역으로 보내 폭탄을 터뜨린다. 결국 프랑스는 공수부대까지 파견해 알제리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다시 1957년으로 돌아와 알리의 은신처. 알리는 결국 항복대시 죽음은 선택하고 이는 알제리의 독립을 가져온 민중 봉기의 도화선이 되고 마침내 1962년 알제리는 독립을 맞는다.<알제리 전투>는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촬영했다는 점과 비전문 배우가 나온다는 점에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적인 장치나 극적인 흐름보다는 당시의 사건을 그대로 전하는 장면과 에피소드, 캐릭터들의 모습이 영화에 힘을 더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영화를 연출한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이나 제작과 주연을 맡은 야세프 샤디는 실제 알제리 전투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에 참여한 모든 알제리인 보조출연자들은 3년 전 끝난 알제리 전투의 치열함을 몸소 겪은 이들이어서 영화의 사실적인 부분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었다.단순히 <알제리 전투>는 영화사적의 의미에서 따져볼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갖고 있는 선동적인 힘은 시대를 초월해 각기 다른 정치적 상황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다른 가치를 전한다. 민중을 자극해 특정한 목적의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것은 아니지만, 오롯이 정치적인 의미에서 이 영화는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폭탄과 같다. 영화 속에 그려진 독립을 향한 식민지배를 받는 국민들의 봉기는 민주주의를 향한 현 시대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과거 독일이나 러시아에서 나왔던 선동영화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확실한 건 <알제리 전투>는 완벽히 정치적인 영화지만, 선동을 ‘위한’ 목적성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1954년부터 1962년 사이 벌어진 알제리 전투는 독립이라는 대의적인 가치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민족적인 사건이었다. 현재 알제리 상원의원으로 실제 정치에 몸담고 있는 야세프 사디는 당시에 겪었던 일들에 알제리 국민들의 울분을 섞어 영화를 완성했다. 비록 영화가 지니는 힘이 사실이나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알제리 전투>는 이러한 이성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폭발력 강한 에너지로 뭉친 영화다. 이 영화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는 영화를 본 후에 생각할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무덤덤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2009년 10월 14일 수요일 | 글_김도형 기자 (iwai@mov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