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뉴스 데이
Les innocentes , Agnus Dei , 2016

영화 제목 아뉴스 데이 Agnus Dei 는 그리스도에서
‘하느님의 어린 양’
이라는 뜻이다.
미술사에서는 아그누스 데이 라고도 불리는데 어린 양이 제단에 바쳐진 광경을 그린 그림이나 문양에 나오는 바로 그 어린 양이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폴란드.
프랑스인 의사 마틸드(루 드 라주)는 병원에 찾아온 폴란드인 수녀의 다급함을 보고 수녀를 따라 수녀원에 가게 된다. 의사로서의 직분을 다하고자 마틸드는 어떠한 편견도 없는 상태에서 수녀들을 보았지만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한 수녀들에 충격을 받는다.
수녀들을 돌보고 병원에 돌아와 다시 진료를 하는 마틸드는 밤새 뭐했냐는 동료 의사의 추궁에 불면증이 있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하면서 이 상황을 비밀에 부친다.
한편 순수한 마음의 마틸드와는 달리 정작 수녀원의 원장 수녀는 이 상황을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이 상황에 대한 피해자인 수녀의 입장이 아니라 보다 냉철한 방관자이자 무력한 신앙심의 잘못된 방향을 보여준다.
여성으로서, 종교인으로서 최악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이 수녀들에 대해서 마틸드는 과연 어떻게 본분을 다할 것인가. 순수한 종교 속에서 그 순수함이 철저하게 유린당한 상황 앞에서 말이다.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 같지 않은 해피엔딩이다. 슬픈 결말이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완전히 갈등과 문제가 해소된 해피엔딩도 아니기에 다만 아이들의 웃음과 수녀들의 표정에서 안도할 수 있고 이들의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기 보다는 희망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드니 일단은 해피하다.
전쟁중인 상황이라 영화의 배경은 내내 잿빛이고 음울하다. 수녀원도 병원도 모두 답답하고 어둡다 그러나 아이들이 있고 수녀들이 있는 장면은 화면 어디선가 빛줄기가 내내 보인다. 종교적 색체를 거둬내더라도 영화는 그런 은유를 종종 숨기지 않고 내비친다. 그래서 종교적 의문과 의심, 반문을 처음부터 차단시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새벽 기도 나가는 신도가 강도를 만난다던가 교회당 십자가가 번개를 맞는다던가 하는 사례에 대해서 과연 신이 내리는 응징과 선악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것들 말이다.
힘없고 나약한 수녀원에 처들어온 무장한 군인들로 인하여 수녀 이전에 비무장 민간인이 당해야할 시련은 과연 종교적으로 설명이나 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설명하려 든다면 수녀원에 들어와 집단으로 성폭행을 한 군인들은 과연 단순히 악마라고 보아야 할까. 그렇게 단순한 문제로 결정될 사안이라면 마틸다의 고민은 오히려 간단할 지 모른다. 직업의식과 종교적 개념은 분리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틸다의 헌신과 노력은 끝까지 일관되게 흐른다.
같은 여성으로서의 신념도 아니고 전쟁 상황에서의 연민도 아니다. 그것은 그렇게 해야 할 인간의 인간다움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긴 시련이 끝나고 마지막 장면, 마틸다에게 전해온 수녀의 아래와 같은 말은 신을 섬기는 수녀도 신 이전에 인간에 대한 감사와 인정으로 종결된다.
“친애하는 마틸드
드디어 먹구름이 걷히고 이곳엔 햇살이 가득해요.
당신은 항상 우리 마음 속에 있어요.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안전할 수 없겠죠.
곧 편지 왕래가 힘들어질 거예요.
그러나 어떤 운명이 위협해도 맞설 각오가 돼 있어요.
당신이 이해 못할 수도 있지만… 난 주님이 당신을 보낸 거라 믿어요.
시련 속에도 하느님이 당신과 함께하길 늘 기쁨이 넘치길 기도할게요.
마리아로부터”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는 수녀들을 찍은 사진은 더 이상 이 이야기가 숨겨야할 사항도 아니고 부끄러워야할 생명도 아니라는 뜻을 강력하게 선고한다. 생명에 대한 경외로 아이들은 죄과 없고 아이들을 낳은 수녀는 숭고한 인간의 뜻을 따랐으니까.
영화 중간에 아이들이 과자와 음료를 먹는 장면은 지금 시대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간식을 먹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느낀다면 영화가 내세우는 의미는 반전이나 종교적 박애 또는 의사로서의 헌신 등의 관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다소 오래된 진실에서 지금 다시 그 진실을 되묻는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사색과 철학에 매우 중요한 단서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욱 이 영화가 역사적으로 의미있게 널리 관람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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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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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수녀원을 러시아군이 휩쓸고 간다. 그들에게 성폭행 당한 후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수많은 수녀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그녀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있다면 자신들의 비밀을 지켜주면서도 용기 있게 출산을 도와주는 의사 ‘마틸드’다. 수녀들과 ‘마틸드’의 관계를 조명하는 담대한 방식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답답할 정도로 순수한 수녀들을 대하는 ‘마틸드’의 태도는 조금도 계몽적이지 않으며, 수녀들 역시 섣불리 ‘마틸드’를 전도하려고 들지 않는다. 영화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전쟁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이들을 무대에 세우고, 그저 그들 각자가 믿는 방식대로 비극적인 상황을 헤쳐 나가도록 이끌 뿐이다. 수녀원과 겨울 설원, 병원을 오가는 잔잔한 배경 이동에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에 전체적인 호흡 자체가 정적이고 묵직하지만, 그토록 야만적인 시절을 견뎌내는 이들의 선택과 삶만큼은 격정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을 짓누르는 건, 이것이 모두 실화라는 사실이다.
2017년 3월 27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 (pgot@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