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걸
La fille inconnue , The Unknown Girl , 2016

의사인 제니는 건강이 좋지 않은 동료를 대신해서 작은 병원을 3개월 동안 운영하기로 한다.
이 근무기간이 끝나면 소수의 엘리트만 선발되는 파격적인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할 예정인 제니는 작은 병원에서의 생활이 따분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감 시간도 지난 한밤중이었다.
누군가가 급하게 문을 두드리지만 제니는 인턴을 따끔하게 교육시키기 위해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날, 문을 두드렸던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일이 발생한다. 제니는 그때 자신이 문을 열어주었다면 이 여성이 살 수 있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후 제니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든, 벨소리가 울리면 바로 문을 열어준다.
사실 신원불명의 여인이 죽은 건 제니의 잘못이 아니었다. 병원 마감 시간이 지나 있었고, 제니에게는 문을 열어줘야 할 의무가 없었다. 사건 이전에 제니는 그녀를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제니는 죽은 여성에 대해 무거운 죄책감을 느끼고, 그녀의 이름도 모른 채 아무렇게나 매장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그녀의 신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2회나 수상한 화려한 수상 경력의 소유자인 다르덴 형제의 작품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 <자전거 탄 소년> <더 차일드>는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으며, 인간 내면의 본능을 날카롭게 꼬집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언노운 걸>또한 물질만능주의에 심취하여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특정 직업계층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극중 제니는 문제의 사건 이후 예정되어 있었던 취직자리를 포기한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뛰어난 의사만이 거머쥘 수 있는 자리까지 사양하며 제니가 희망한 곳은 소시민과 약자들로 구성된 협소한 병원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엘리트 가도를 달리던 제니의 삶은 백팔십도 바뀌며, 여성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거나 외면하려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 충돌을 빚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한 인간의 감정일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 본능.

그러나 제니는 피하지 않는다.
죄책감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이미 늦었지만 가능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극중 제니는 문을 열어주려는 인턴에게 호통을 치며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그 상황에서 제니의 판단은 이성적이었다. 진료 마감이 1시간이나 지나 있었고, 마감이 지났기 때문에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해도 제니에게는 법적으로 죄가 없었다.

그러나 CCTV에는 여성의 절박한 얼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만약 제니가 문을 열어주었다면 그 여성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제니의 이성적인 판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너져 내렸다. 비극적인 나비효과다. 제니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제니의 행동을 칭찬하고 치켜세워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미 지난 일을 끄집어내어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녀를 미워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제니는 멈출 수 없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문제의 그날 밤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인을 쫓고 정의를 구현하는 추리극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언노운 걸>의 의미는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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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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