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
Heung-boo: The Revolutionist , 2017
조근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소설 ‘흥부전’에 참신한 발상을 더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참신한 소재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이 영화는, 아주 마음 아픈 방식으로 또 한 번 화제가 된다. 바로 이 영화가 故 김주혁 배우의 유작이라는 사실이다. 故 김주혁 배우는 작년 10월 30일,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고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연예계는 물론 국민들까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영화와 드라마 뿐 아니라 KBS에서 방영중인 인기 예능 ‘1박 2일’에 출연하며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왔던 배우 김주혁. 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고인의 유작이라는 사실로 더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영화의 흥행과는 상관없이 멋진 연기를 보여준 고인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조근현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조근현 감독은 충무로에서 그 행적이 아주 굵직한 감독이다. 그는 영화 <장화, 홍련>에서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미술 감각을 선보이며 충무로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그때는 감독이 아니라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직책이었다. 이미 영화 <음란서생>, <형사Duelist> 등 사극영화를 통해 그 특유의 세련되고 농익은 동양미를 뽐내며, 영화 속 배우들로 하여금 그 시대로 돌아가 연기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기도 했다. 그 밖에 영화 <인어공주>, <버스정류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숨어있는 미술을 창조해내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듭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마이 파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마이웨이>, <후궁 - 제왕의 첩>등에서 미술, 아트디렉터를 맡은 바 있다.
그는 2003년 영화 <장화, 홍련>으로 제 2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미술상)을 수상하였으며 제 4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신인감독상), 제 22회 부일영화상 (신인 감독상), 제 21회 부일영화상 (미술상), 제 1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 (최우수제작디자인상), 제 43회 대종상 영화제 (미술상), 제 43회 대종상 영화제 (미술상), 제 31회 홍콩 국제 영화제(프로덕션 디자이너상)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고 제 27회 청룡영화상 (미술상), 제 5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미술상), 수상 제 2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미술상), 수상 제 26회 청룡영화상 (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감독의 이력을 간단하게 적는 것만으로도 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그야말로 미술과 표현에 있어서는 일인자라 불러도 무색한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감독의 이력에 걸맞은 미술적 감각이 나타난다.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상기했듯이 고전소설 ‘흥부전’에 참신한 발상을 더해 만든 창작물이다.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현종 14년, ‘연흥부’라 하는 글쟁이가 있었다. 그는 뛰어난 글 솜씨를 가졌음에도 백성을 교화하고 감동시키는 글을 짓지 않고 아주 음탕하고 호색적인 글만 짓는 글쟁이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글쟁이가 되고 싶어 그의 제자로 각종 잡일을 맡고 있는 ‘선출’이 있다.
이런 연흥부는 저잣거리에서는 이미 유명한 글쟁이지만 겉으로는 고상한 취향만을 고집하는 양반들에게는 무시를 받는 존재이다. 그런데 연흥부가 그렇게 음탕하고 호색적인 글만 짓는 데에는 사실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그것은 바로 쉽게 말이 나고 소문이 도는 저잣거리에서 이름을 날려 어릴 적 헤어진 형을 찾기 위함이다.
연흥부는 손위로 연놀부라는 형이 있는데, 어린 시절 ‘홍경래의 난’을 겪으며 형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그 후로 연흥부는 형을 잊지 않고 손이 미치는 데까지 수소문하여 형을 찾았지만 형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조금 비정상적인 방법일지라도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음탕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연흥부는 형 연놀부가 농민 반란군의 수장이 되어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 농민 반란군의 정신적 지도자인 ‘조혁’을 찾아간다.
조혁을 찾아간 연흥부는 형을 만나게 해달라고 고집을 부리지만, 쫓기는 몸인 연놀부를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혁의 형이자 권력의 중심, 그리고 탐욕의 상징인 ‘조항리’가 연흥부를 부르고, ‘정감록 외전’을 허위로 작성하여 자신의 경쟁자인 ‘김응집’을 역모를 꾸민 역적으로 묘사할 것을 사주한다. 힘이 없는 연흥부는 정감록 외전을 작성하고, 그 여파는 조정에까지 다다른다. 연흥부가 가진 붓의 놀라운 힘을 본 조혁은 연흥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것은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가 막힌 글을 하나 써보라는 것. 만약 연흥부가 백성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형 연놀부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날로 연흥부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농민 반란군 지도자 ‘조혁’과 파렴치한 형 ‘조항리’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흥부전’이다. 연흥부가 써낸 ‘흥부전’은 백성들의 큰 인기를 얻어 천리를 뻗어 나가고, 또 한 번 조정에까지 그 소식이 전해진다. 한데 일이 점점 이상하게 흘러간다.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이 잘 살게 되는 흥부전은 어느새 또다시 양반들의 권력다툼 속 수단이 되고,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던 이야기가 어느새 칼이 되어 돌아가게 된 것이다. 치열한 당쟁 속에서 자신이 써낸 글로 인해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 연흥부, 이제 그가 그의 마지막 이야기, 진짜 ‘흥부전’을 준비한다.
<장화, 홍련>, <전우치>, <방자전>, <마담 뺑덕>, 그리고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까지 앞서 나열한 작품들은 모두 고전소설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 참신한 발상을 더해 재창조한 영화들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아주 친숙한 작품들을 재해석해 영화화함으로써 한층 더 큰 즐거움을 주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흥부전을 비롯한 고전소설 대부분은 작자미상으로, 재해석하기에 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를 감독한 조근현은 영화에 대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흥부전’은 두 형제의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흥부’라는 작가가 주변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모티브를 찾아 민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흥부전’을 쓰기까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그 소재 자체가 아주 참신하고 좋다. 또한 흥부전을 바탕으로 인형극을 하고 민중놀이를 하는 장면은 감독의 탁월한 미술적 감각을 여지없이 나타낸다. 하지만 장면의 아름다움이 영화 자체의 재미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영화는 미술적 표현에 치우쳐 개연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필자에게 실로 엄청난 아쉬움을 남겼는데, 소재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장면도 아름다웠으니 개연성만 조금 다듬으면 아주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많은 관객들은 故 김주혁 배우의 유작의 작품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더욱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비록 개연성 미흡이라는 큰 단점을 가지기는 했으나 좋은 소재와 가슴 뜨거워지는 민중의 반란, 그리고 아름다운 장면과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까지, 단점을 보완하고도 남을 장점 역시 충분히 갖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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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주혁 배우의 훌륭한 연기를 보고 싶은 사람
참신하게 재해석한 흥부전이 보고 싶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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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bta_vistavie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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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의 주인공 ‘흥부’는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다. 음란소설로 제 이름을 널리 알린 조선 시대의 작가다. 그가 어린 시절 홍경래의 난으로 헤어진 형을 찾는다는 설정이 암시하듯, 영화는 새롭게 창조된 인물을 통해 탐욕스러운 양반과 권세가를 노골적으로 저격한다. 평범한 사람을 착취해 제 잇속만 차리는 이들에 대한 풍자가 명확하게 드러난 고전의 재해석이다. 하지만 ‘백성이 주인’이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메시지가 우회 없이 관객의 귓가를 때리는 까닭에, 지난 시절 관객(시민)이 실제로 경험한 정치적 교훈을 손쉽게 답습한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만다. 인물의 역할과 갈등은 물론 주인공의 각성까지 전형적이다. ‘흥부’가 써낸 글 한수가 비뚤어진 세상을 개혁할 힘으로 작용하기엔, 복잡다단한 현실을 버티고 견뎌내고 기어코 희망을 끌어올린 대중의 수준이 이미 너무 높을지도 모르겠다. 정진영, 정우, 정해인 그리고 고 김주혁 배우가 출연한다. <26년>(2012)을 연출한 조근현 감독의 신작이다.
2018년 2월 12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 ( got.park@movis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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