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치기
Hit the Night, 2017
술자리에서 다들 얼큰이 취했을 때나 늦은 밤에 흔히들 하는 게임, 바로 진실게임이다. 진실게임은 술을 먹던가, 진실한 대답을 하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 진실게임에는 순진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설레임도 있는 반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순간을 이용하여 드잡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가령 순진한 질문은 이런류이다.
“여자친구랑 자봤어?”
드잡이를 하는 질문은 이런류이다.
“마지막으로 섹스한 게 언제야?”
잤는지 안잤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그건 아예 기정사실화해 버린채 정곡을 찌르는 이런 질문에는 벌주를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영화 <밤치기>는 바로 이런 드잡이 같은 질문을 여자가 쏟아내고, 남자는 한발 물러서서 그런 질문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영화이다.
여자는 묻는다.
“하루에 자위를 두 번 한 적 있어요?”
감독이자 배우인 정가영을 처음에는 김기덕스럽다고 생각했으나 최근엔 다시 홍상수스럽다고 보았는데 모두 틀렸다. 정가영은 정가영으로 우뚝 섰다.
<비치온다비치>에서도 헤어진 남자친구의 집에 들이닥쳐 한번 자자고 졸라대더니 이번 영화에서도 끈적한 대사로 들이대는 정가영은 자기만의 영화 세상을 이제 완전히 구축한 느낌이다. 특히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하기 때문에 대화와 대화 사이의 간극을 잘 조절하고,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야 자연스러운지 알고 그 자연스러운 대화의 끝에서 만나게 될 자연스러운 결말도 전체를 다 설정해놓은 듯 영화는 매끄럽다.
술자리의 대화가 돌고 돌듯, 아니면 그게 그거인 듯하지만 정가영은 영화에서 그런 대화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소비한다. 이미 작정하고 이 밤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 때문이다. 영화 시나리오 조사 차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쉽게 그러마, 하고 나왔지만 의외의 들이댐에 남자는 난감하기도 하고 우쭐대기도 하면서 우왕좌왕한다. 거기에 남자의 선배까지 이 밤에 들어오면서 영화 속 남녀의 대화를 엿듣던 관객에게 색다른 긴장감을 갖게 한다. 인물이 많지 않아도 이렇게 산뜻한 긴장을 주는 것도 참 재능이다.
점차 밤은 깊어가고, 대화가 끊길 때쯤이면 술자리는 다른 곳으로 위치 이동한다. 그건 한국 술문화의 자연스러운 한 축이 아닌가. 2차로 가고 3차로 이어지는 술문화는 한국의 도심 밤풍경에 이젠 정겨운 문화로도 인식될 지경이다. 영화는 그런 자연스러운 축을 자연스럽게 또한 펼쳐내 보인다.
영화가 보여주는 배경은 그러나, 술집, 룸카페, 노래방 같은 밤의 닫힌 한구석이다. 해가 졌으니 야외 술자리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이 두 남녀가 옮겨 다니는 곳이 또한 그렇게 밤풍경에 완벽히 녹아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영리한 설정이다.
그리고 참여하게 된 선배의 또 다른 저돌적 대시는 이 밤의 끝이 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 끝까지 지켜보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문채원과 유연석이 주연한 <그날의 분위기>의 결말을 아는 분이라면 <밤치기>의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일이다. 그렇게 쉬운 결말 혹은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마무리를 과연 정가영 감독이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설정해놓았을까?
다시 돌아가 영화의 등급을 살펴보면 분명 <밤치기>는 15세 관람가로 매겨져 있다. 음주가무가 배경이자 소재이며 남녀간의 밀당이 주제인 이 영화의 관람 등급을 예상하면서 깜찍한 결말을 다시 예감해보면 영화가 주는 재치와 해학을 오랜만에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술 한잔 마신 상태에서 뭐 재밌는 영화 없을까 할 때, 이 영화 <밤치기>를 보면서 더 취해 가는 것도 재밌는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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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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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비치온더비치>(2016)로 전 남친 집에 쳐들어가 ‘한 번만 하자’고 조르는 발칙한 여자를 이야기한 정가영 감독이 자기 색깔을 한 번 더 강조하는 <밤치기>로 두 번째 장편을 선보인다. 시나리오 자료조사를 빌미로 일전에 한 번 본 적 있는 맘에 드는 남자를 술자리로 불러낸 여주인공은 룸 카페와 노래방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영화 내용과는 큰 상관 없어 보이는 성적인 질문을 마구마구 날려 댄다. 상대와 어떻게든 뜨거운 밤을 보내 보려는 그의 공세적인 태도와 온갖 질문에 곧잘 대답하면서도 선 넘을 생각은 그다지 없어 보이는 남주인공의 수세적인 태도가 오묘한 대비를 이루며 그간 쉽게 보지 못한 신선한 공수 구도를 형성한다. 인물이 움직일 여지조차 충분치 않은 협소한 공간을 클로즈업해 오랜 시간 배우 간의 질문과 대답을 관찰하는 연출이 꽤 대범하게 느껴지는데,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을 지키며 발칙한 대사를 툭툭 뱉어내는 정가영 감독의 발칙한 매력이 큰 역할을 한다. 그의 무지막지한 들이댐 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비싼 남자가 될 기회를 얻은 박종환은 <원라인>(2016)의 어설픈 대출업자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의외의(?) 훈남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거머쥐었다. 그래서, 여주인공은 남주인공과 원하던 밤을 보내게 됐을까? 답은 영화 안에 있다. 웹툰 전문 플랫폼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의 첫 영화다.
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