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변호인
On the Basis of Sex,2018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수 많은 남성들 사이를 당당히 활보한다.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강당에 들어서는데, 하지만 이곳에 여성은 오직 9명뿐이다. 남성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그녀는 열심히 노력하며 수석 졸업이라는 결과를 챙긴다. 물론 그녀의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마릴린 먼로를 통해 만들어진 몸매 좋은 금발의 미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오히려 코믹한 방식으로 깨부수려 했던 금발이 너무해 시리즈와는 달리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보다 정통에 가까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 진정성이 돋보이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녀는 금발의 미녀도 아니고 패션피플도 아니며 친구들과 웃고 즐기기 위해 로스쿨에 들어온 것도 아니다. 로스쿨에 합격한 남편이 궁금해서 그의 뒤를 따르는.. 오히려 가정적인 여성에 훨씬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녀처럼 공부해서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하겠지만, 사실상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영화에 나오는 1950년대는 여성에 대한 장벽이 워낙 높았던 시절이기에 그 도전은 더욱더 힘겨웠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루스(펠리시티 존스)는 자신감이 넘치는 똑똑한 여성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하버드 로스쿨에서 수석졸업까지 한다. 심지어 남편 긴즈버그(아미 해머)가 고환암에 걸리며 드러누웠음에도 그녀는 그를 수발하며 끝내 다시 일으켜 세우고야 만다.

그녀의 이야기만으로 120분을 채우더라도 이미 충분한 재미를 제공할 수 있었겠지만.. 이 영화의 선택은 법정 드라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며 이 영화가 추구하고자 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실제로 이루고자 했던 바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에 적당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루스의 마지막 발언이 있기 전까지 그녀는 법을 다루는 변호인의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녀의 마지막 발언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법정에서 계속 공격을 당하고 쉽게 흥분하며 변호사의 입장에서 자꾸만 벗어난다.

이는 영화적인 측면에서 반전을 노리기 위해 선택한 가상의 이미지였는지, 혹은 실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성향이 그러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시절의 당당했던 그녀의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퇴색되고 무뎌진다. 반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그의 남편 긴즈버그는 잘나가는 변호사답게 여유로운 운영을 보이며 아내를 코치한다. 또한 그가 제안했기에 세상을 뒤집을 재판이 이뤄질 수 있었고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으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물론 그것조차도 사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남편의 제안으로 루스는 역사를 바꿀 전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를 삼을만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과연 세상의 모든 불평등에 대한 싸움인지, 혹은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는 조금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을 수석졸업 하고도 취직이 쉽지 않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다. 반면 그녀의 남편은 잘나가는 변호사로 아내가 보기에도 살짝 얄미울 정도로 멋지고 완벽한 남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찾아온 기회를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잡았던 것일까! 물론 의뢰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을 통해 세상을 뒤집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의 마음 한구석엔 그녀의 이름을 새기고자 했던 욕심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는 결국 그녀의 당당한 성격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더욱 강하게 나타난 결과라 생각된다. 모두가 겁이 나서 건드리지 않던 사건이기에 오히려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루스가 그러한 강인함을 지녔기 때문이며, 그녀는 설령 그것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욕망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기에 그러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퇴보했을지도 모른다.
시대적인 변화에 발을 맞춰 법을 개정시키고자 노력한 여성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이야기는 아무 때나 페미니즘을 외치는 현대 여성들이 꼭 한번은 봐야 할 이야기라 생각된다. 그녀가 변화시키고자 한 것은 단지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세상에 만연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함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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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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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신용카드를 남편 명의로 만들어야 한다. 여성은 일부 주에서는 변호사 시험에 응할 수 없다. 황당한 농담으로 들리는 이런 주장은 50여년 전만 해도 미국의 실제 법 조항이었다. ‘긴즈버그’는 미국의 이 같은 성차별적 법 조항을 산산이 깨부순 재판으로 잘 알려진 변호사이고, 미국 연방대법관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세상을 바꾼 변호사>는 그의 위대한 업적 중 ‘첫 단추’에 해당하는 사건을 짚는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어머니 간병비에 대한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없었던 이의 사례로 재판에 나선 ‘긴즈버그’의 법정 시퀀스는 관객을 논리적, 감정적으로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여성을 향한 공고한 사회적 차별을 뚫고 앞으로 나아간 ‘긴즈버그’의 삶은 도발적으로 묘사되기보다는, 가족애라는 보편적인 감수성을 무기로 다수의 관객에게 소구하는 쪽을 택한다. 이 과정에서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펠리시티 존스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할머니가 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걸어오는 영화의 마지막은 놓칠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2019년 6월 7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