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Clara

생활 SF 라는 말이 있다. 공상과학이나 사이언스 픽션을 좀 낮게 부르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일상에 밀접한 우리 안의 SF를 이르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이다. 국내 어느 SF 소설가는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낸 것을 보았다. 공상과 과학이라는 말의 합성은 그 자체로 모순이기에 공상은 공상이고 과학은 과학이라는 것. 과학 소설이라는 말은 즉, 천문학과 물리학을 우위에 두지만 화학이나 미생물 같은 디테일한 단위의 과학은 좀 아래에 두는 측면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SF는 반드시 우주여야 할까? 우주, 외계인, 외계행성, 성간 이동, 블랙홀, 웜홀 등과 같은 우주 용어들 사이에서 이 영화 <클라라>는 생활 SF와 공상과학을 더해서 로맨스까지 보여준다. 제목 클라라는 영화 속 여인의 이름인데 영화 제목으로까지 차용한 그 이름은 어떤 과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주에 관심을 두고 지구 밖으로 시선을 둔 채 연구에 몰두해온 아이작(패트릭 J. 아담스)는 우주에서 지구 외에 다른 지구를 찾고 있다. 다른 지구란, 지구처럼 물과 공기가 있고 거기에 사는 생명체가 있는 것.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생명이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그것도 지구과 같은 행성일 수 있으니. 어느날 아이작은 자신과 같이 우주에 시선을 두고 역시 또다른 생명체 지구를 찾는 여인을 만난다. 공통의 관심사는 인연으로 이어지기 좋은 법. 그 여인의 이름은 바로 클라라. 둘은 합심해서 우주 어딘가 있을 생명체 행성을 찾고 또 찾는다. 물론 그 사이에 둘에게 피어나는 사랑과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은 커져간다.
그리고, 결국 우주에서 어떤 행성을 발견하긴 하는데 거기에 가보질 못하니 확신할 순 없지만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높은 확률로 확신한다. 보다 정밀한 연구와 탐색이 필요하지만 그동안의 데이터와 생명체 행성을 발견해온 지식에 따라 아이작은 그 결과를 밀어붙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작의 행성은 과연 이 광대한 우주에서 거주가 가능한 행성일까…

우주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지만(많은 돈이 들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주에서 생명체가 있을 법한 행성을 찾는 것은 수십년간 지구의 인류가, 지구의 과학자들이 해온 일이다. 일단 찾아야 그곳에 갈 만한 곳인지, 거리는 얼마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아직도 그 일은 매우 길고 어려운 일로서 매일 밤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탐색하는 인류의 시선이 계속해서 그 열정을 잃지 않는 것만해도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주 망원경을 통해서 단순히 별들을 관찰해서 행성을 탐색하는 것만은 아니다. 규칙이 있다. 수십년간 쌓아온 데이터도 상당하다. 일단은 별 온도와 색상을 계속해서 데이터화해서 축적해야 한다. 그럼 그 데이터를 통해서 해당 별을 구성하는 대기의 기체를 분석할 수 있다. 산소인지 탐소인지 이산화탄소의 비율 등을 별 색상으로 파악하고 온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번 발견했다고 해서 바로 결과치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관찰하고 수치를 저장해야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집중 연구를 하게 되는데 행성의 궤도와 주기, 대기를 구성하는 기체가 파악되었으면 물과 토양의 분석도 계속해서 이뤄진다.

이런 과학적 분석이 매일 매일 지구에서 이뤄지고 있고 지구 안의 인간들은 한번도 그 시선을 놓친 적이 없다. 그 중에 이 영화의 주인공 아이작이 있는 것이다. 아이작이 우주에 집착하고 우주에 있을 어느 생명체 행성을 찾고 싶은 마음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브래드 피트의 <애드 아스트라>에서 브래드 피트의 아버지는 태양계 끝이라 할 수 있는 명왕성 근처까지 가서 우주선 안의 우주인들이 다 죽은 후에도 혼자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간 아들 브래드 피트는 그런 아버지와 해후하고 지구로의 귀환을 추진하지만 오랜 시간 우주에서 홀로 있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지 않는다. 그렇게 먼 우주로 계속해서 여행을 떠나 버린다. 그 영화에서도 왜 우주로 나아가려는지 대답을 명확히 해주지 않는다.
다만 우주로 나아가려는 지구인의 마음을 천천히 관찰하고 사색할 거리를 던져줄 뿐이다.

우주에 관한 명언 중 이런 말이 있다. 이 넓은 우주에 지구라는 별에만 생명체가 있다는 것은 우주의 낭비라고. 우주에 낭비가 있다면 그 낭비를 다시 주워담을 힘과 의무는 그나마 생명을 유지해온 지구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구인들은 이 우주에서 혼자만 살아 있다는 사실에 외로워하며 동료 별을 찾으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매온 것이 아닐까.
아이작은 클라라를 사랑하면서도 클라라보다 더 큰 인류의 부담과 의무를 짊어질 마음의 준비가 이미 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

영화의 결말까지 가서도 계속해서 지켜봐야할 지구인들의 우주에 대한 의무와 외로움은 곧 아이작에 대한 클라라의 존재에 대해서도 대답을 요구하게 한다.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고민이자 상대적 정답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보인다.
간절히 찾고자 한, 그토록 만나고자 한 것에 대해서 갖는 특별한 믿음과 소망.
생활 밀접 SF로서의 영화 치고는 보다 심도 있고 인류의 깊은 곳에 울리는 질문에 대해서 최대한 성실히 대답하고자 하는 영화의 책무도 느껴지는 영화이다.
<그래비티>, <퍼스트맨>, <인터스텔라> 같은 묵직한 영화들 사이에서 지구 안의 우주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면 이 영화 <클라라>는 더 넓은 사색을 할 수 있도록 끌어주고 있다. 아이작의 시선을 넘어서 지구인으로서 동참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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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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