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동화처럼 슬프고 놀라우며 행복이 담긴 이야기라고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로 들어보니 무엇인가 어색한 느낌이 담겨져 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어보다는 더 잘 듣고 봐야했기 때문에 집중해서인지 긴장을 했다.
두 남자 귀도와 페루시오 이 두 남자가 1930년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시골마을을 지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았을 때나는 슬픈 느낌 보다는 기분 좋은 무슨 소풍가는 느낌의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다.
귀도의 행동은 말 그대로 코메디였다. 우리가 현재에서도 쓰고 있는 썰렁한 개그를 그는 능청스럽게 참 연기를 잘했다.
그래서 인지 영화가 밝은 느낌을 가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숙부는 첫 장면에서 야만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침묵만큼 큰 저항은 없다 이렇게 말을 한다.
왜 갑자기 첫 장면에서 숙부는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신고를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중간에 영화를 보면서 알았지만 그는 유태인이다.
그가 유태인이라는 것은 귀도도 또한 유태인이라고 생각한다.
귀도가 아내인 도라의 결혼식에서 웨이터를 하고 있을 때
그의 숙부의 말에 유태인 말 이라는 물감으로 색칠된 말을 숙부가 보여줬을 때와 같이 무엇인가 불안했다.
그의 숙부는 귀도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이제 너도 괴롭힐거다 라고 말이다.
그는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몰랐던 것일까?
천진난만한 그지만 그는 자신에게 곧 좋지 않은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이러한 복선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무언가 가득한 불안함 속에서도 귀도의 찬란한 웃음이 우리에게 더욱 슬픈 무엇인 가를 주려는 것 같았다.
시골에서 처음 상경한 귀도는 도라와의 영화적이고 우연적인 만남으로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그것도 돈도 많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다.
물론 도라도 약혼자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약혼자는 일에 바쁘고 자신을 따듯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귀도는 도라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서
결국 도라와 도망 나와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게 된다.
이때 난 귀도와 도라의 데이트 빗속 데이트 속에서 말마다 딱딱 맞는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웃기기도 하지만 영화 맨 앞에서 말한 간단하지만 이라는 느낌이 이런 느낌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상황들을 사람들은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 상황에 대해서 좋은 시선으로 보기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왜 꼭 영화 속에서 약혼자를 배신하고 도망나오는 상황을 연출하게 만들었을까?
물론 그에게는 꼭 잡고 싶은 여자였지만 상도덕이라는 것이 있는 상황에서라고 보면 나쁜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 내 주관적인 생각에서는 안타깝다.
영화라 그렇게 볼 수 있어 라고 하지만 이 장면 보다는 우연적인 만남과 그 우연적인 만남에서
다른 요소 속에서 예를 들면 영화의 상황속에 내포되어 있는 유태인이라는 요소를 첨가 한다면,
그 시대의 상황에서 유태인과 비유태인과의 결혼을 하기까지의 갈등 이라던지
이러한 점이 더욱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와 도라와 아들인 조슈아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5년이라는 행복한 시간이 지난 뒤 독일에서는 유태인을 잡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것이라는 우리의 선천적 지식이 따라오기 때문에
그 세부적인 내용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과연 어떻게 표현할 것이라는 것은 나에게 큰 흥밋거리 인 것 같습니다.
아내인 도라는 유태인이 아니지만 그를 따라서 기차를 탑니다.
이 장면에서 그녀는 귀도에게 한순간의 로맨스에만 빠진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도 분명 이 기차는 죽음에 빠질 수 있는 기차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기차를 탔습니다. 이 장면에서 과연 나는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시대가 있어서 이렇게 강제적으로 노동력으로 끌려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습니다. 나는 영화를 보다 잠깐 멈추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나라면 우리 가족이 저렇게 잡혀간다면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귀도의 행동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에게 이 상황이 게임이라고 말을 하며 1등으로 1000점을 모으면
실제 탱크를 준다고 하는 거짓말을 아들에게 하게 됩니다.
귀도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아내에게 깜짝 이벤트 같은 것을 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준다던가, 아내에게 항상 부르던 애칭인 안녕하세요 공주님 을 말을 하며
그와 그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걱정을 덜어주도록 한다.
나치의 상황이 많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알자 귀도는 조슈아를 데리고 탈출을 하려고 하지만
아들인 조슈아를 안전한 곳에 숨겨 놓고 아내에게 말을 하러 가다가 군인에게 걸리게 됩니다.
아들과 눈이 마주친 그는 그의 머리에 군인이 총을 언제 쏠지 모르지만
그의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이게 정말 게임인 것 처럼
천진난만하게 아들의 앞을 지나갑니다.
골목 뒤에서 몇 발을 총소리가 난 후 귀도는 볼 수 없게 됩니다.
나치가 완전히 물러난 후 조슈아는 밖으로 나왔더니 탱크가 오고 있었습니다.
조슈아는 정말로 게임을 이겼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만들어낸 쇼펜하우어의 의지 일까요?
조슈아는 그 탱크를 타고 어머니와 만나게 되어 영화는 끝나게 됩니다.
영화를 보며 생각합니다. 모두의 인생은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인생이라는 것은 절망속에서
그 절망의 차가움이 한번 뼈 속을 사무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나는 매화꽃의 짙은 향기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길 벼랑에 매달린 나뭇가지에 매달린다면 우리는 버텨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이라도 올지 모르지요. 부모에게 아이란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물론 결혼을 아직 안하고 아이도 없지만, 저희 부모님을 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것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바라보게 해주고 좋은 것일 입혀주시고 먹여주시고 그럽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부모님이 맞다고 하면 그것은 맞는 것이라고 아이들은 생각합니다.
부모인 귀도가 상황이 악한 상황에 산다고 해서 그 절망을 아이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던 것 같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해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가 죽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도 커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귀도는 그러한 것을 조슈아에게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미래에 커서 이 과거의 기억이 좋지 않다면 조슈아의 성장과정에서도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부정이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조슈아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조슈아 또한 희망속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귀도는 영화 속 어느 인물보다 약한 인물이 아닙니다. 스파이더맨, 베트맨, 아이언맨 과 같이 격투를 잘하거나 힘이 강하거나 무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총이 자신에게 겨눠진 상황 속에서 어느 영화인물이 이와 같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다룰 사람은 수수께끼의 래씽 박사입니다. 그는 유능한 의사로써 귀도와 수수께끼 문제를 풀어가면서 친해진 사람 같았습니다. 귀도가 수용소에 왔을 때 그는 래씽과 만나서 자신에게 살길이 생겼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래씽에게는 죽어가는 유태인들의 비명과 고통은 들리지 않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하나 수수께끼입니다. 나치들의 SS부대의 래씽박사는 전쟁전에는 착한 사람이였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나치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과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100만명의 학살과 그들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자식이나 부모를 잃은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게 합니다. 그러한 그들이 풀어내려는 문제가 과연 무엇일까요?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보다 중요한 그 수수께끼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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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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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s2214l1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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