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 다소 높음
The rain comes soon,2020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소재의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모두 좋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독의 연출 능력은 차치하더라도 시나리오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영화는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좋은 문학작품을 영화로 만든다고 가정할 때 문어체가 영상에서는 자연스러운 구어체로 전환되어야함에도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상당히 어색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텍스트는 마치 영상에서 분리된 것처럼 따로 놀게 된다.

반대로 밋밋한 소재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한데, 여기에 속하는 대부분의 독립영화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어쩌면 습도 다소 높음이라는 조금은 이상한 제목의 영화 또한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재미가 상당히 떨어지는 탓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 같다. 차라리 이 영화에서도 언급되었던 뉴 시네마의 장점이라도 가져다 썼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젊은 남녀의 소개팅에서 드러나는 불안한 관계의 설정은 이미 영화 자체가 짜증스런 상황의 연속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으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이 영화가 코믹한 요소를 적극 활용할 것임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평범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과도한 설정의 소개팅은 처음부터 그 관계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승환(백승환)이라는 캐릭터에 문제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시작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더위와 코로나 시국이라는 상황에서 오는 문제임을 강조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후반부를 위해 승환이라는 캐릭터를 그렇게 설정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 싶었지만 사실 이는 이 영화에서 불필요한 설정, 오히려 맥거핀처럼 그냥 흘러가버리는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럴 바에야 소개팅 자체는 무난하게 그려내며 승환에게 달달한 기대감을 주는 방향으로 그려내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그런 뒤 짜증스런 상황이 발생하며 그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고, 여자와 영화(젊은그대 시사회)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영화를 선택한 뒤 후반부를 맞이하며 이도저도 얻지 못하는 결과로 끝맺었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결국 영화는 처음부터 주인공에게 이상한 컨셉을 부여하며 소개팅 부분을 영화 전체에서 잘라내고 만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시사회로 들어가며 더위와 코로나 상황을 활용하며 코믹함을 강조하는데, 만일 초반의 이야기가 정상적으로 흘러갔더라면 이 기괴한 모습들이 눈에 확 들어올 수도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과한 설정을 한 탓에 극장 직원(김충길)의 과도한 행동들마저 유사하게 보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물론 그의 엉뚱한 요구가 이희준 감독(이희준)과 마찰을 내며 가벼운 재미를 주기는 하는데.

그 잠깐의 피식거림이 끝나면 영화는 다시 젊은 그대라는 제목의 영화로 들어가며 따분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내용 역시도 영화에서 거의 비중이 없는 승환을 보고 승환의 형들이 화를 내며 감독과 다투는 것으로 연결되지만, 거기까지 오는 과정 안에서 젊은그대라는 영화 자체를 너무 길게 보여준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승환의 형들이 영화 중간에 일어나 영화를 끊어달라고 요구하고 감독과 싸웠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물론 그런다고 더 나아졌을 것이란 확신은 없지만..

좋은 영화까진 아니더라도 괜찮은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시나리오를 만드는 작업에 보다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출가가 그려내고자 하는 그림이 본디 그것이어서 그걸로 만족한다면 상관없겠지만, 영화는 개인의 예술이 아닌 관객들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관객들의 요구에 따를 필요는 없다. 자신의 스타일은 유지한 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고민한다면 더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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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희준의 팬이라면.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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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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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고봉수배우: 백승환, 이희준, 고주환, 차유미, 김충길, 신민재, 고성완, 전찬일장르: 코미디, 드라마등급: 15세 이상 관람가시간: 77분개봉: 9월 1일간단평이름부터 고풍스럽기 짝이 없는 종로의 ‘낭만극장’. 사장(신민재)과 유일한 아르바이트생 ‘찰스’(김충길)는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아 텅 비었지만, 이것저것 잡무는 여전히 많은 극장을 근근하게 꾸려 나가고 있다. 마침 한 예술영화감독(이희준)이 찍은 ‘젊은 그대’의 시사회 날, 사람들이 하나 둘 극장에 모인다. GV 진행을 맡은 전찬일 평론가와 이희준 감독, 주연 배우 ‘주환’(고주환)과 ‘유미’(차유미) 그리고 단역인 ‘승환’(백승환)과 그의 두 형에 감독의 광팬인 외국인까지 총 열 명이 되지 않는 단출한 구성이다. 긴축운영과 철통방역을 위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낭만극장을 무대로 한 <습도 다소 높음>은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의 어느 하루 동안 벌어진 상황을 다룬 단짠 코믹드라마다. 고봉수 감독과 그의 단골 배우들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이 오래간만에 다시 뭉쳤다.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나름대로의 철학과 리듬을 가지고 분투하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비주얼적으로나 또 정서적인 면에서나 평범을 훌쩍 뛰어넘는 강한 개성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는 현실과 괴리되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 하지만 이를 상쇄하는 인간적인 매력을 확보한 덕분에 애정어린 시선으로 줄곧 지켜보고 응원하게 한다. 초반, 더위에 지친 인물들이 뻘뻘 흘리는 땀에서 강한 습기가 감지됐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어느새 안습(안구에 습기차다)의 경지에 다다라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될 연민과 위로를 나누게 한다.
2021년 8월 31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