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오
Cryo, 2022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 나비효과에선 주인공이 시간을 역행하며 자신의 과거를 수정해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실 평행우주, 멀티버스와 관련한 다양한 내용들을 접하다 보면 그것의 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 우리의 과거가 바뀐다고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의 세계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설정을 무시한 채로 모든 생각과 시공간의 형태, 감정 등을 함께 공유하게 만들며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야기의 반복을 통해 그들에게 주어진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영화 크라이오의 설정은 그래서 뭔가 억지스러우면서도 어설프다. 물론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이 그것이 반복된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그 시간을 마주하기 전까지 머릿속에 다양한 의문부호를 띄운 채로 비밀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자신들이 정답을 알려주기 전까지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마지막에 보여줄, 결말을 위해 깔아놓은 장치들에 불과할 뿐이다.

늙은 남자의 얼굴을 담은 비디오 영상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기억을 잃은 채 냉동 수면 장치에서 깨어나는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는 재미를 주고자 그들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기로 결심하며 그들이 어떤 관계로 모인 것인지, 그곳이 무엇을 위한 장소인지를 모르게 만든다. 이는 곧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최선의 조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조금은 더 친절하기를 바라며 영화를 봤던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어버린 이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차라리 그곳 어딘가에 지갑이나 신분증과 같은 것들을 숨겨두어 기억이 없는 그들이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그나마 호기심을 유지한 채로 영화를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런 방식을 철저히 배제하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몰라도 상관은 없지만, 반대로 그리 중요한 비밀도 아니기에 알려준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더욱 웃긴 사실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직업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인, 엔지니어, 의사, 정신과 의사 등등.. 그들이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선 부싯돌과 같은 무언가가 필요한데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다. 이름에 대한 기억은 없어도 직업에 대한 기억은 간직하고 있으니까! 이 개연성 부족한 설정 덕분에 영화는 초반부터 흥미를 떨어트리고 결국 남은 것은 그럼에도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숨겨진 관계의 발견이다. 그들이 왜 이곳에 갇히게 되었고 어떤 사이로 만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렇게 의문투성이인 채로 결말을 향해 달려가다가 군인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급기야는 그들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총알이 없는 총은 그들을 다시 냉동장치로 유인하는데 사용되고, 마지막 남은 여인은 비밀번호를 누르며 안으로 들어가 처음 동영상에 얼굴을 비췄던 늙은 남자를 깨우게 된다. 그리고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지난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들 행동 모두가 이미 지난 여러 번의 시간 동안 반복해서 일어난 상황이었으며 그렇게 설정된 행동은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성공적으로 이행된 것이다.

이 한심한 설정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래서 이는 나비효과보다 훨씬 불가능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만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로도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데 그들의 행동은 변수 하나 일으키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으니,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그들이 잠든 상태에서 꾸는 꿈이었다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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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찾는 사람.
개연성 부족한 영화라도 참고 볼 자신이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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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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