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자락,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욕조(The BATHTUB) 섬은 남극의 빙하가 녹아 땅이 물에 잠기는 걸 막기 위해 쌓아놓은 제방 밖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왈리스)는 아버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문명화된 삶을 거부한 채, 자연의 소중함과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는 강인함 같은 무형의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섬사람들에겐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존재한다. 우주의 균형이 깨어지면, 선사시대 빙하기 단단한 얼음에 갇혀버린 오록스가 깨어난다는 것.
한편, 허쉬파피의 아버지 윈키(드와이트 헨리)는 희귀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자신 없이 홀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딸이 강인하게 성장하길 바라며 매일 혹독한 교육을 반복한다. 어느 날, 병을 숨기려는 아버지와 딸의 다툼으로 우주의 균형이 깨어지고 욕조섬은 쏟아지는 폭우로 침수될 운명에 처하는데...
* 출연진의 다른영화 :
미국 독립 영화계의 돌풍을 불러일으킨 벤 제틀린 감독의 <비스트>(Beasts of The Sourthen Wild) 의 위력은 참으로 놀라웠다. 최연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된 허쉬퍼피를 연기한 쿠벤자네 왈리스의 등장은 물론이고,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에 이어 시카고 비평가 협회, 그리고 LA 비평가 협회상을 받는, 독립 영화계에서는 드문 쾌거를 달성했다.
<365일 축제가 열리는 곳, 욕조섬>
<비스트>는 일종의 고향에 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남극의 빙하가 녹아 물에 잠기기 일보직전인 욕조섬에서 살아가는 어린 아이 허쉬퍼피와 그녀의 아버지 윙키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문명화 되길 거부한채,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를 거부하며 살아가고있다. 하지만 다른 여타의 사람들과는 달라보인다. 시종일관 욕조섬을 괴롭히는 폭풍우와 홍수에도 마을 사람들은 불평을 하지 않는다. 매번 폭풍우가 다가올때마다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욕조섬 사람들은 그것을 우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며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애통의 눈물이 아닌 기쁨으로써 그들만의 축제를 벌인다.
<욕조섬을 괴롭히는 홍수와 폭풍우>
그 중에서도 허쉬퍼피와 윙키의 존재는 더욱 더 선명하다. 엄마의 모습을 알지도 못하는 허쉬퍼피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인 아빠는, 일종의 마음의 고향인 셈이다. 그리고 태어난 고향인 욕조섬에,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마음의 고향 아빠와 사는 허쉬퍼피에게 폭풍우가 몰아쳐오게 된다. 욕조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강제이주를 당해야 할 위기에 놓이게 되고, 아빠는 희귀병에 걸려 시한부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아빠가 곧 죽는 것을 알게된 허쉬퍼피지만, 아빠의 죽음에 절망하거나 애통하지않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미 자연의 한 부분으로써 허쉬퍼피 자신도 보내주어야할 떄 를 알고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떠나간다>
아빠의 죽음 이후로도 허쉬퍼피는 욕조섬을 떠나지 않는다. 아빠의 죽음으로 더욱 더 단단해진 몸과 마음을 얻게된 허쉬퍼피는 이제 자신들의 고향, 욕조섬을 지키고자한다. 이미 한번 고향을 보내버린 경험에서 느낀 고향의 소중함을 느낀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 고향의 소중함을 바탕으로 한 허쉬퍼피의 이야기는 현재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정 반대로 보이기 떄문에 허쉬퍼피의 이야기는 더욱이 와닿는다. 아무리 같은 곳을 20년 살아도, 어릴적 놀던 기억을 추억하면서 현재 그 자리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 우리 집을 보더라도 말이다.
<나를 돌볼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고향 은 단순히 머무는 곳, 언젠가는 떠나 보내야할 곳이라고만 생각하지만, 고향은 단순히 장소와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고향, 자신의 여자친구라든지 부인, 혹은 친구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리고 고향에 대한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갈증은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들통난다. 예를 들어, 주위의 친구들을 보자, 모두 한결같이 여자친구를 가지고 있거나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들을 하곤 한다. 그리고 결국 여자친구와 교제하고, 결혼하거나 (극히 드물다) 이별을 향해 나아간다.
<마음의 고향인 아빠와 욕조섬, 모두 지키고 싶다>
애인, 즉 고향 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은 일종의 물 마시기와 같다. 갈증을 느끼고, 물을 마시고, 다시 물통을 냉장고에 집어넣듯,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고향을 찾아서 지키고, 아끼기는 커녕 물 마시기를 반복한다. 그러한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러한 일련의 물 마시기를 통해서 남는 것을 무엇일까? 지속적인 갈증을 느끼고 해소하는 것과, 단 한번의 목춤임으로 다시는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는 분명히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당신, 당신은 갈증을 느끼고 있나요 ?
안식처에 대해 생각해보고싶은 사람
글: 시네박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제방 너머 욕조 섬에는 6살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왈리스)와 아빠 윙크(드와이트 헨리)가 살고 있다. 이들에게는 녹슨 컨테이너박스가 아늑한 보금자리다.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차오르는 물을 막기 위해 건설된 제방, 그 너머에는 흉물스럽게도 길쭉한 기둥 위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허쉬파피는 제방 너머의 연기 가득한 세상보다 욕조 섬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어린 소녀 허쉬파피의 눈과 입으로 그려지는 가상의 세계는 놀랍도록 현실과 닮아 있다. 점점 무너져가는 생태계,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고민하고 싸우는 사람들 말이다. 태풍이 삶의 터전을 할퀴고 홍수가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는 와중에도 윙크는 허쉬파피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다. 언뜻 보기에도 미래가 없는 디스토피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는다.감독 벤 제틀린은 첫 장편 <비스트>를 친구의 연극 <달콤하고 맛있는>에서 출발시켰다. 연극 원작이라는 점을 간과하더라도 영화는 시적이면서 기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심장 박동 소리에 천착하는 소녀는 배운 적 없지만 생명이 갖는 무게를 알고 있다. 문명사회의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배제한 욕조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항목이다. 소녀는 생명이 태어나고 언젠가는 소멸한다는 우주의 순환 법칙을 본능적으로 습득한다.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아버지가 딸에게 고기 잡는 법과 날것으로 먹는 법을 윽박지르는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영화는 헤어짐을 연습해야하는 아버지와 딸의 드라마와 모든 생명이 무너져가는 땅의 서사를 공존시킨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깨어난 원시동물 오록스가 그나마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달려오는 모습은 무서운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의 죽음, 딸의 삶, 파괴되는 생명, 이로 인해 살아남는 동물, 모든 죽음은 곧 또 다른 삶으로 귀결된다. 이 작은 철학을 영화는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관통한다. 판타지와 우화에 가까운 영화가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현실을 뒤흔드는 힘은 영화 속 대지에서 기인된다. 영화는 태풍 카트리나가 할퀴고 지나간 진짜 루이지애나 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허에서 삶을 시작하는 지역 주민들을 모아 만들어졌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본 적 없는 얼굴인 것은 이 때문이다. 폐허가 된 도시에 세워진 가상의 섬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역사는 그래서 강력한 현실 비판을 동반한다. 죽어가는 욕조 섬, 사라져가는 대지는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의 미래다. 하지만 작은 체격으로 죽음과 공포 앞에 두 눈 부릅뜨고 맞서는 소녀 허쉬파피는 또 다른 미래다. 이 소녀가 갖는 의미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넘어 혁명적이다. 그래서 디스토피아에 둥지를 튼 영화는 놀랍도록 아름다울 수 있다. 시적이면서도 동시에 시의성 강한 우화는 조용히 차오르다 성난 파도처럼 폭발시킨다. 떨림, 희망, 뭉클함이라는 단어로 대체되는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