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여자
2022
손님은 결코 왕이 아니다. 서비스업을 직종으로 가진 이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진 절대적인 입력값은 사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목적에 불과할 뿐이며 직원을 두지 않은 개인사업자를 제외하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업주에게로 돌아간다. 대기업 오너가 서비스 품질을 강조한다고 그가 하루 8시간씩 고객을 응대하는 것도 아니며 각종 자잘한 컴플레인에 직접 대응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직원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손님을 왕처럼 모시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빚어지는 문제는 바로 손님들 스스로가 자신을 왕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필요로 인해 물건을 사러 온 고객일 뿐이다. 물건을 찾고 계산을 하는 모든 과정은 고객과 직원의 입장으로 행해지는 거래일 뿐, 그들 사이에 왕과 하인의 신분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님을 왕처럼 대하라는 구시대적 인식이 박혀있기에 몰상식한 손님들, 진상이라 불리는 이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큰 착각인지 깨닫지 못한 채로..
연극무대를 그대로 영화로 옮긴 불멸의 여자는 단순한 구조, 평범한 내용과는 별개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실제 매장이 아닌 연극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조명과 클로즈업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그 차이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비록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연극적이지만 오히려 연극의 느낌은 사라진다. 특히 배우들이 뭔가를 상상하는 장면에서 화면의 절반을 다른 장면(상상하는 구체적인 사물)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독특하면서도 과거의 일본 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일 얼굴에 미소를 달고 살아야 하는 희경(이음)과 승아(이정경)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서비스업 직종의 직원들과 매우 닮아있다. 그래서 그 미소에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며, 그 얼굴 뒤편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지 의심하게 된다. 실제로 그녀들의 웃음이 가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짜 미소라면, 그들을 의심했던 모든 순간 자체가 부끄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전화기로 흘러 들어간 완전 웃기는 짬뽕이라는 승아의 목소리는 적어도 이 영화에선 거짓이 아니었다.
각각의 이유로 매장을 찾은 두 여인 정란(윤가현)과 지은(윤재진)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며 차이를 드러낸다. 어떻게든 희경과 승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정란은 본인이 받은 상처(화장품에 의한 부작용과 모욕적인 언행)를 강조하며 그녀들을 압박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제품을 몇 차례나 교환하는 지은은 끝까지 교양있는 모습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선택과 결과는 모두 유사하게 나타나며 이는 희경이 무릎을 꿇는 것으로 종결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일반적인 고객이 아니기에 그 상황이 더 웃프게 느껴진다. 희경처럼 고객을 대하지 못한 이유로 잘린 정란과 남편인 상필(안내상)의 불륜에 그녀들을 만나러 온 지은은 그들이 진짜로 분풀이해야 할 대상이 아닌 희경과 승아를 향해 울분을 쏟아낸다. 가장 만만한 존재이면서도 마치 그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이들처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곧 직원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과 대비된다. 우리 또한 그들을 만만하게 여기며 하대할 수 있는 위치의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으면서.
연극무대에서 끝나버릴 것처럼 보였던 이야기는 다행스럽게도 희경을 자유롭게 무대 밖으로 풀어주며 마무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 마지막 장면이 무척 기억에 남고, 이 마지막 영상이 존재하기에 이 영화는 보다 확실하게 영화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가면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 미소가 아닌, 바닷가에서 뛰놀며 행복해하는 희경의 진짜 미소를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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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대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은 작품이 궁금한 사람.
진상 고객과 서비스업 직원의 싸움이 보고 싶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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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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