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있는 어른들의 막장 불꽃 대결!
대학살의 신
★★★☆ 당신들의 빌어먹을 악몽이 나에게는 왜 이리 유쾌할까!!!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대학살의 신’을 영화화한 작품.
게다가 기존 필모그래피를 통해 영화계의 거장임을 입증한 로만 폴라스키 감독의 연출. 그렇다고 배우가 후지냐고? 할리우드 1급수 배우 네 명이 비명 지를만한 연기대결을 펼쳐댄다.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퍼 왈츠 그리고 존C.레일리까지... 알차게 구성된 80분의 싸움구경이랄까? 시대와 인종을 막론하고 불구경과 싸움구경은 여전히 재밌는 최고의 구경임이 증명됐다.
영화는 재커리 (코원 부부의 아들)가 이턴 (롱 스트리트 부부의 아들)의 치아 2개를 막대기를 쳐 부러뜨리는 것이 발단이 된다. 롱 스트리트 부부는 코원 부부를 불러 같이 모인자리에서 진술서를 작성, 이 진술서를 시작으로 작은 말다툼이 결국 빌어먹을 악몽을 불러 일으킨다. 갇힌 공간에서 80분을 이끌어가야 하는 설정이기에 다양한 구도의 비주얼이나 인상 깊은 장면을 고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로만 폴라스키가 각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구도를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증명할 수 있다. 그중 가장 구도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설명한 캐릭터는 크리스토퍼 왈츠가 분한 앨런 코원(이하 앨런)역.
앨런은 아이들의 싸움에 애초 관심이 없고, 가족이란 존재 자체에 무관심하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허세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그는 안 좋은 일로 그 집에 초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도때도 없이 회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무례를 범하고, 거실 화장대 테이블에 걸터 앉기도 하며, 음식이 담긴 접시를 아무 곳에서나 두고 먹는 등. 이 상황 자체가 불편한 인물로 비춰진다. 이런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로만 폴라스키의 연출이다.
이 외에도 구도의 미학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처음과 끝, 재커리와 이턴이 공원에서 싸우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친하게 지내는 장면. 익스트림 롱 쇼트에 가깝게 멀리서 찍은 이 앵글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애초에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 다른 하나는 아이들의 싸움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태도랄까. 이 사건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 영화는 별 설명없이 마지막 부분에 재커리와 이턴의 절친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보이는 것은 햄스터의 등장. 낸시(케이트 윈슬렛)와 마이클(존C.레일리)의 갈등에는 마이클이 바깥에 버린 햄스터가 있었다. 낸시와 페넬로피가 햄스터의 무사안일을 걱정하고 마이클의 행동을 책망하지만 이 또한 어떠한가. 햄스터는 뻔뻔하게 행복한 모습으로 공원 잔디밭을 누비고 있다. 모든 사건은 갈등을 만들어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연출의도로 해석된다.
전반의 싸움은 사소한 말꼬리 잡기에서 비롯된다. 각각이 한 가지 단어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서로의 의미를 비꼬거나 상대를 비아냥대기 위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뉴욕정서의 교양을 잊지 않기 위해 상반되는 노력을 보인다. 이 지점에서 가장 열심인 캐릭터는 페넬로피다. 페넬로피는 자신이 가장 공동체 의식을 가진 인물이라 자부하고, 가장 중요한 사건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감정적이기도 하여 술을 마시고는 주체할 수 없는 어떤 끓어오름(?)으로 인해 울고, 남편을 때리기도 하며 고성에 욕설을 서슴지 않는 주체로 변화해 간다.
다시 전반의 싸움으로 돌아가서 전반은 단체전이다. 잘 단합되진 않은 양쪽 부부의 모습이지만, 서로의 입장차이를 견고히 하여 상대를 설득시키려 하는 노력들이 부합된다. 반대로 후반의 싸움은 개인전이면서도 성별전이다. 각자는 서로를 물고 뜯고 아군이 되어야할 남편, 부인의 욕도 서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빛나는 캐릭터는 앨런과 낸시다. (낸시의 오바이트는 앨런의 바지의 묻고, 앨런의 휴대폰은 낸시가 화분에 담가버린다.)
어찌보면 큰 굴곡없는 동어반복의 어른 싸움으로 보이겠지만, 영화는 이들이 각 상황을 맞닥뜨릴때마다 인간 본연의 본성과 폭력성 등 절제된 내면이 표출되는 상황을 유려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연극 무대와도 같은 공간을 영화로 끌어와 이들이 갇힌 공간에서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흐름을 웬만하면 끊지 않는다. 배우와 관객은 긴 호흡을 함께 유지하며 이들 상황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사이사이 코미디까지 뽑아내고 있다. 굉장히 영리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리얼타임 80분. 짧은 시간동안 벌어지는 어른들의 싸움은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합의점은 찾지 못하고 우리의 4가지 인간군상의 감정폭발을 보여준다. 영화 속 대사처럼 잔인함과 웅장함 , 혼란과 균형을 번갈아 보여주는 어른들의 싸움. 물에 젖은 앨런의 휴대폰에 다시 걸려온 전화는 이 어른들의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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