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횡단밴드
Basilicata Coast To Coast , 2010

생계를 꾸리기 위해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새 그저 좋아서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본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라는 수상한 제목의 영화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마라테아라는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사는 청춘을 지난 네 명의 주인공들은, 각자 직업도 있고 사는 데는 딱히 부족함이 없지만 반짝이는 열정을 잃어버린 채로 무덤덤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수학교사인 니콜라가 다른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스칸자노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결심하면서 그들의 빛 바랜 듯 심심하던 일상이 바뀌어간다. 영화는 이 친구들과 이들을 영상에 담게 된 여기자가 뮤직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까지 걸어서 떠나는 여정을 추적한다. 이 독특한 여정에 함께 참여하며 관객들 또한 삶의 열정을 되찾고 쉼표를 찍는 기회를 갖게 된다.
자발적인 ‘집 떠나 개고생’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마라테아에서 예술학교의 수학교사인 니콜라와 왕년의 잘나가던 배우 로코, 로코의 사촌이자 가게 점원인 살바토레, 자발적 벙어리 목수인 프랑코는 어느 결혼식에서 밴드로서 연주를 하기 위해 모인다. 이렇게 취미 삼아 세 친구들과 가끔씩 밴드연주를 하던 니콜라는 어느 날 ‘스칸자노 뮤직 페스티발’이라는 지역 음악 축제에 참가신청서를 내고 이 축제에 ‘걸어서’ 참가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은 ‘삶은 너무 짧은 여행이다. 그러니 길게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무언가’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며 기자회견까지 하지만, 회견장에는 기자 딱 두 명이 등장한다. 이 프로젝트에 감명받은 한 기자가 트로페아라는 여기자에게 이들을 쫓아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어 오라며 동행하게 만들면서 이들의 이탈리아 해안을 횡단하는 ‘사서고생’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행의 방식은 말 한 필과 달구지에 짐을 가득 싣고, 차로는 1시간 반 거리를 10일 동안 걸어가면서 그 와중에 간간이 음악을 연주하겠다는 것이다. 또 외부와의 접촉은 최대한 차단하고 음식도 스스로 만들어 먹는다는 규칙도 정한다. 자질구레한 현실적인 일들에서 떠나 삶에 열정을 탐구할 여유를 부여하고 매일 반복되어 당연하게 여기게 된 일상을 새롭게 보고자 하는 의도이리라.

완벽하진 않지만 괜찮아
이렇게 이탈리아 야생의 자연과 하나되어 최대한 내추럴한 모습으로 떠나는 여행방식과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 또한 닮아있다. 네 친구들은 엄마의 오믈렛 샌드위치에 대해서 쓴, 혹은 길에서 만난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쓴 권위와 겉멋을 내려놓은 생활밀착형 가사로 제멋대로 악기를 뚱땅 거리면서 노래를 한다. 결코 완벽한 연주나 노래는 아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음악은 관객들에게 위안을 준다.
탁트인 이탈리아 자연을 배경으로 마음속 깊이 우러나온 열정과 자유를 원동력으로 음악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열정을 느끼고 마냥 좋아서 하고 싶은 어떤 일이 있다면 그걸 꼭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그저 즐기면서 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래는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프로들의 멋진 음악은 아니지만 여행 내내 관객들에게 내가 열정을 느끼는 일을 잘 하는 것보다 일단 즐기는 게 중요하며 그걸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서
여행이 점점 무르익어 가면서 등장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사연들도 하나 둘씩 밝혀진다. 먼저 니콜라의 경우 고등학교 총장자리를 마다하는 등 인생에서 뭔가를 끝까지 추진해본 역사가 별로 없다. 살바토레는 의대에 진학했지만 여자친구가 로코와 바람이 나는 바람에 학업에 소홀하게 되어 의대를 중퇴한 채 후회를 남기고 있다.
프랑코는 사랑에 빠진 연인이 갑자기 사고로 죽는 바람에 말을 잃고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 박혀있고, 로코는 왕년엔 잘나갔지만 이제는 찾아주는 이 없는 한 물간 배우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또 마지못해 이들의 여행에 따라나선 기자 트로페아는 유명한 아버지의 그늘 속에서 숨막혀 한다.

이들 모두는 인생을 진정으로 만족스럽게 해주거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중하게 만드는 대상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니콜라의 경우 삶을 생기 있게 만들어줄 특별한 경험을 끝까지 추진하지 못해왔고, 살바토레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프랑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채로 살아왔다.
로코는 과거와 작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고, 트로페아는 열정을 느낄 직업적 대상이 없어 방황한다. 하지만 이런 인생의 구멍을 일상의 한가운데에서는 깨닫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이들은 스칸자노로 향하는 여행을 통해 일상으로부터의 떠남과 거리두기를 시작하고, 이로써 그저 먹고 살기 바빴던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거기에 뭐가 부족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들은 여행을 하며 겪은 여러 사건사고, 갈등과 이해 속에서 부족함을 느꼈던 부분을 메우는 작업을 해나간다.
예를 들어 니콜라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여행을 추진하면서 인생에 특별한 경험을 더하겠다는 열정을 되찾고, 살바토레는 우연히 사람을 구하면서 의대진학의 꿈을 다시 좇기로 결심하는 등 등장인물들 모두가 자신의 삶을 더 반짝거리게 만들어줄 대상을 얻고 전환점을 맞는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독특한 음악과 등장인물들의 인간적 매력, 이탈리아의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 노골적이지 않은 소소한 로맨스와 위트가 맛깔나게 버무려져 있다.
한편 관객에게 지루한 무채색의 삶을 바꿔줄 열정과 사랑, 꿈의 대상을 찾게 만들며 또한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어차피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인생은 짧으니.”라는 위로도 전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 속에서 인생을 돌아볼 여유와 자유, 앞으로 나아갈 치유의 순간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