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첫 장면, 죽은 안느,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꽃송이들>
우리는 바쁜 현실 속에서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죽음은 뭘까?' '죽음을 맞이할 때는 어떤 느낌일까?' '편안하게는 죽을 수 있을까?' '죽고난 다음은?' 등 아직 저 먼치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지만, 아직 '죽음'의 근처에 있지 않는 우리는 단지 누군가의 '죽음'이 굉장히 슬프다는 것만 알뿐이다. 30년의 오랜 기간 동안 부부의 연을 함께해온, 어느덧 72살의 나이로 이제는 죽음에 대해 깨닫게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아무르>를 통해 부부의 '죽음', 그리고 '사랑' (Amour) 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를 들려준다.
<점점 기억을 잃고 몸이 굳어버리는 병을 얻게된 안느>
영화의 이야기는 '죽음'과 밀접한 '병'으로 시작된다. 행복한 황혼기를 보내던 노부부 조르주 (장-루이 트린티냥 분) 와 안느 (엠마누엘 리바) 에게 어느 날 불행이 찾아오는데, 아내 안느가 몸이 점점 굳어져가는 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남편 조르주는 아내의 병수발을 들며 안느의 곁을 지키지만, 안느가 점점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병세가 악화될수록, 조르주의 마음도 병들어간다. 사실 영화의 70~80%는 아내 안느의 수발을 들어주는 조르주의 모습에 집중된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죽음'을 마주한 궂은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지만, 계속 악화되는 상황에 서로의 사랑을 약간은 힘을 잃은 듯 보인다.
<병이 지속될수록, 안느와 조르주의 마음도 힘들어진다>
결국, 힘겨운 상황에 지친 조르주는 자신의 아내를 베개로 질식사, 아니 안락사 시키고, 죽은 아내를 위해 꽃송이들을 가지런히 놓아준다. 도대체 왜 조르주는 자신의 아내에게 직접 '죽음'을 선사하는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그건 더 이상 말도 못하는, 고통에 잠겨 괴로워하는 아내를 위한 조르주의 현실에서의 마지막 사랑 표현이 아니었을까? 이쯤되면 관객들은 사랑이 없어진 현실 속에서 안느와 조르주의 사랑은 '끝'났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문뜩 잠에서 깨어 죽은 아내를 쫓아 문 밖으로 나가는 조르주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생각하는 '죽음'과 '사랑'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결국, 안느는 정상적인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렇다. 결국 '사랑은 죽음 후에도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 는 것이 바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면서 싸우고 다투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랑을 해나가면서 만나는 장애물을 만났을때, 그 장애물들은 어떤 이별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혹은 어떤 사랑을 더욱 더 견고하게 해주는 영양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조르주와 안느에게는 잠시동안, 현실에서 육체적인 이별의 원인이 되었지만, 오히려 사후에서는 조르주와 안느의 사랑을 영원토록 이어줄 영생의 문이 된 셈이다.
<죽음 후에 다시 만난 아내, 죽음의 슬픔이 영겁의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
그리고 동시에, 하네케 감독은 자신의 아들, 딸도 그런 사랑을 하기를 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조르주와 안느의 딸 에바 (이자벨 위페르 분)가 텅 빈 부모님의 집을 거닐고 오래된 소파에 앉았을때, 우리는 에바와 그녀와 '지금은' 사이가 안 좋은 남편 지오프 역시 지금의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을 이어갈 것을 예감한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비둘기를 항상 밖으로 쫓아냈고 창문을 잠그던 조르주는, 아내의 육신이 잠든 방의 창문을 열어놓는다. 다시 말하자면, 조르주와 안느의 집은 사랑이 지속되는 공간이고, 에바는 그런 공간을 물려받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 사랑은 계속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르>는 영화 내내 아무런 음악 없이 노부부의 마지막을 그려낸다. 아직 늙음과 동시에 죽음에 근접하지 못한 어린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생각과 느낌이 담긴 <아무르>를 통해 죽음의 슬픔과 영겁의 사랑을 토해낸다. 그리고 거기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평생을 같이 해온 아내에게 속삭이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영화 속 조르주와 안느가 그러하듯, 앞으로 죽기 전까지 숱한 장애물들이 사랑을 방해할지도 모르지만, 죽어서라도 영원히 사랑을 이어가자고... 그리고 다른 사랑들도 그 영원함을 지속하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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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맞이하는 죽음에 대해 궁금한 사람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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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시네박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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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죽는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이야기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은 모두 청춘의 전유물이라는 부지불식의 견해다. 나의 늙음은 얼마나 초라할 지 내 죽음은 또 얼마나 추악할 지 누구도 미루어 짐작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과 늙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진실은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삼키기도 버거운 법이다.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는 저만치 비켜나있던 노년과 죽음을 목도하게 한다. 폭력의 대가가 말하는 낯선 성찰은 죽음을 초체험하는 두 배우의 연기로 영화가 만들 수 있는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퍼니 게임> <히든> <하얀 리본>까지, 폭력의 본질에 대해 천착해온 미하엘 하네케가 일흔에 접어들어 선택한 주인공은 또래의 부부다. <아무르>는 음악가인 조르주(장 루이 트랭티냥)와 안느(에마뉘엘 리바) 부부의 종말에서 시작된다. 싸늘한 시체가 누워있고 공기 중에는 고약한 썩은 내가 진동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곤혹스러운 결말을 공개하고는 과거의 평온한 일상으로 태연하게 돌아간다. 소담하고 고풍스러운 가구들, 응접실 한 켠에 놓여 있는 그랜드 피아노, 따스하게 내리쬐는 채광까지, 집안 구석구석에는 부부가 함께 해온 시간들이 먼지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죽음의 전조를 연주한다. 단란한 아침식사 테이블에서 아내 안느는 평온한 얼굴로 정지해 있다. 정지 화면이 아니라 홀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멈춘 채로 몇 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남편 조르쥬가 안절부절 못 하는 상황에서 거짓말처럼 안느는 다시 돌아온다. 눈앞에 있지만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두려운 순간이 반복되고 안느의 마비 증세는 일상에 균열을 가져온다. <아무르>는 건조하고 스산하다. 단 한 번도 집안을 벗어나지 않는 카메라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년의 일상과 닮아 있다. 그들이 쌓아온 작은 성에서 맞는 파국은 조용하고도 천천히 숨통을 조여 온다.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 음식을 잘라주는 것은 먹여주는 것으로, 옷을 입혀주는 것은 벗겨주고 용변을 처리해주는 것으로. 안느의 신체는 온전히 타인에게 맡겨져야 한다. 회한과 절망, 적막이 교차하는 조르쥬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문득 오프닝이 떠오른다. 이 이야기에 희망이나 반전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서서히 죽어 가는가를 고개 돌리지 못 하고 지켜보게 된다. 관객은 이들이 어떻게 만나 사랑을 하고 일상을 쌓아왔는지 알지 못 한다. 시작은 개별적이었을지 언정 죽음이라는 끝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래서 이 조용한 고통은 광범위한 보편성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조르쥬는 소멸해가는 아내를 돌보며 점점 짧아져가는 자신의 생명선을 미리보기한다. 이 스산한 죽음을 보고 있자니 동일한 선택을 했던 사상가 앙드레 고르가 떠올랐다.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 일컬었던 노동이론가 앙드레 고르는 죽기 전 아내에게 편지를 남긴다. 60년 전 첫 만남부터 아내가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현재까지를 기록한 90페이지 분량의 편지다. 'D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은 이렇게 기록된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아무르>의 것과 동일한 무늬의 파고가 그려진다.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던지는 것, <아무르>의 태도는 문학성에 가깝다. 심장에 일어난 파문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 글_양현주 (siwoorain@movist.co.kr)